[비즈니스포스트] 건설업황 부진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롯데건설이 도시정비사업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롯데건설은 공사비 갈등과 정책 리스크 등에 노출되며 사업에 차질이 우려됐지만 서울시가 여러 차례 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위기를 넘어가는 모습이다.
▲ 서울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단지 '르엘 이촌'의 조감도. <롯데건설> |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건설이 시공을 맡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단지 ‘르엘 이촌’이 공사중단 위기에 빠졌다.
롯데건설은 올해 4월 이촌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에 공사비 인상과 함께 2025년 2월로 예정됐던 준공 일자를 2027년 5월까지 미뤄달라고 요구했다.
애초 이촌 현대아파트 리모델링의 도급계약 공사비는 3.3㎡당 542만 원이 책정됐다. 그러나 롯데건설이 원자잿값 인상을 반영해 이를 926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총공사비는 2727억 원에서 4981억 원으로 증가했다.
롯데건설과 이촌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연대 보증 여부를 두고도 갈등하고 있다.
조합은 약정금 3천억 원의 대출을 연장하기 위한 롯데건설의 지급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롯데건설은 공사비와 공사 기간이 현실적으로 수정돼 확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3천억 원에 이르는 자금의 지급보장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건설은 조합과 갈등이 깊어지고 해결책을 쉽사리 찾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자 이촌 르엘 공사 현장에 ‘공사 중지 예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사태가 악화하자 서울시가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는 7일 공사 중지 위기에 놓인 용산구 이촌동의 첫 리모델링 단지인 '이촌 르엘' 현장에 사건 중재를 위한 코디네이터를 파견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현재 서울시 코디네이터 중재 하에 합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회의를 한 차례 했기 때문에 진행상황을 지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디네이터는 도시정비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 당사자 사이의 갈등을 조정·조율하기 위해 파견되는 건축·도시계획·도시행정·도시 정비 등 정비사업 관련 분야 전문가로 기존에는 재건축·재개발 현장에만 파견됐다.
서울시가 재건축 또는 재개발 현장에만 파견해 왔던 코디네이터를 리모델링 현장에 파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택법에 따르면 서울시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 조합을 지도‧감독할 수 있는 직접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서울시가 리모델링 현장에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중재에 나선 것은 최근 1~2년 사이에 공사비가 급격히 상승하는 상황에서 리모델링 현장은 공사비 검증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리모델링 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공사비 검증 제도를 통한 공사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21대 국회 기간이던 2023년 11월 일정 비율 이상의 공사비 증액이 발생할 시 리모델링 공사비 검증을 요구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는 현재까지는 관련 내용을 다룬 법안이 아직 발의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롯데건설의 도시정비사업에 해결사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6월에도 청담 삼익아파트 재건축단지 ‘청담 르엘’ 공사비 인상을 놓고 롯데건설과 청담삼익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조합 새 집행부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코디네이터 3명을 파견했다.
롯데건설과 청담삼익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조합은 2017년 3726억 원 규모의 첫 도급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사비 증액이 필요해지자 2023년 5월 총공사비를 5909억 원으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갑작스럽게 오른 공사비에 조합에서는 내분이 발생했다. 결국 전임 조합장이 사퇴하면서 집행부가 새로 꾸려졌는데 새 집행부는 롯데건설과 합의가 무효라는 주장을 펼치며 전면 재검토 입장을 내세웠다.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롯데건설이 ‘9월 공사 중지’라는 카드까지 꺼내 드는 등 갈등이 심화했고 결국 서울시가 중재에 나선 뒤에야 해결됐다.
서울시의 중재에 따라 조합 새 집행부는 기존의 공사비 증액 원안을 준수하기로 했다. 그 대신에 롯데건설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공사비 청구를 최소화하고 일반분양 지연으로 발생한 금융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이 서울시 덕분에 극적으로 봉합하면서 청담 르엘 아파트는 9월 일반분양을 진행할 수 있었다.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적용 단지 기준으로 가장 높은 3.3㎡당 7209만 원의 평균 분양가가 적용된 청담 르엘은 1순위 청약 85가구 모집에 5만6717명이 몰리며 평균 경쟁률 667.26대 1을 기록했다.
롯데건설은 생활형 숙박시설로 조성됐던 마곡 롯데캐슬 르웨스트과 관련한 부채 폭탄 위기에서도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최초로 ‘생활형 숙박시설→오피스텔’ 용도 변경을 허가하며 롯데건설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해줬다.
마곡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정부가 2021년 생활형 숙박시설을 주거시설로 사용하면 이행강제금을 부여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이후 애물단지가 됐다. 금융권이 생활형 숙박시설의 잔금 대출에 인색해지면서 계약자들의 잔금 납부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급 보증을 했던 시행사 마곡마이스피에프브이(PFV)의 최대 주주이자 시공사인 롯데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서울시가 8월20일 개최한 제3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수권소위원회에서 마곡 롯데캐슬 르웨스트의 오피스텔 용도 변경을 허용하면서 롯데건설은 유동성 위기 해결의 돌파구를 찾았다.
현재 마곡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용도 변경을 위한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2024년 10월 안으로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 절차가 마무리된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