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는 10월1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현지 금융감독청(OJK) 고위 당국자들을 모시고 ‘인도네시아의 K-금융: 생산적 현지화 전략’을 주제로 포럼을 연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중심국가로 국내 금융회사들도 글로벌 진출의 창구로 삼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포럼에 앞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의 활약상을 짚어보고 현지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시선으로 인도네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① K금융 글로벌 확장 교두보 인도네시아, 많은 기회만큼 접근법도 다르다
② 4대 금융 인구 2억7천 금융시장 성장엔진 잡아라, 4대 은행 현지화 전략으로 두각
③ 산은 기은 수은 국책은행의 공략 3색, K-금융 확장 기반 다진다
④ 신흥국 증권시장 격전지 인니, 맏형 미래에셋증권 필두로 증권사 진출 이어진다
⑤ 국내보험시장 대안은 인니, 삼성화재 KB손보 한화생명 사업 확장 활발
⑥ 인니 진출 여전사는 멀티플레이어, 할부금융 기반 사업 다각화로 활로 모색
⑦ 금감원-OJK 역사 깊은 스킨십, 10년 인연 속 금융사 진출 지원사격도 든든
⑧ [인터뷰] 박번순 고려대학교 아세안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⑨ [인터뷰] 서정인 동남아 친선그룹 대사
|
|
▲ 인도네시아는 거대한 인구와 풍부한 천연자원, 낮은 금융침투율로 인해 국내 금융회사들의 글로벌 교두보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1973년 경주 황남동 신라 미추왕릉에서 출토 돼 보물 제634호로 지정된 신라시대 목걸이를 살펴보면 특이한 문양을 가진 구슬 하나를 볼 수 있다.
흰 얼굴에 푸른 눈과 짙은 눈썹, 빨간 입술을 지닌 사람의 모습이 작고 매끈한 유리구슬에 상감기법으로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다.
구슬의 제작기법이 지금도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구슬과 같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구슬은 고대 신라인들이 머나먼 바다 건너에 있는 인도네시아인들과 긴밀한 교류를 했다는 증거가 됐다.
천 년 전에도 진행됐던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교류는 시간이 흘러 경제 규모가 커지고 활발해지면서 두 나라 사이 직접 진출도 확대되고 있다.
7일 금융감독원 금융중심지지원센터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금융사 27곳이 인도네시아에 32곳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의 점포 숫자가 6곳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30년 만에 5배 이상 점포 수가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인도네시아를 향한 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인도네시아가 국내 금융사들의 글로벌 진출을 확장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2억8천만 명에 이르는 인구와 석유와 가스, 니켈 등의 풍부한 천연자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토대로 아세안 지역의 리딩 국가로 자리잡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5%대 수준이 높은 경제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인도네시아가 2050년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다만 경제성장 잠재력과 달리 금융서비스의 침투율은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인접 국가들보다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GDP)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2%로 태국(9.4%), 한국(6.4%), 말레이시아(4.6%)보다 낮다. 은행 증권계좌 보유 비중도 각각 52.8%와 4.3%에 그친다.
국내 금융사들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 금융시장에서 이미 기반을 다지고 있는 금융사들과 경쟁을 벌이기 쉽지 않지만 성장 잠재력 대비 낮은 금융 침투율을 보이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많은 편으로 볼 수 있다.
KB경영연구소는 비즈니스포스트에 “인도네시아는 제조업 발전에 따른 중산층 확대와 금융당국의 자본시장 육성 의지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인도네시아는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믿고 있는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구축한 이슬람 특화 금융 서비스는 인도네시아를 넘어 중동 지역으로 진출할 때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거대한 인구 규모에 걸맞게 세계 최대의 이슬람 신자를 보유한 나라로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슬람 율법에 부합하는 금융 서비스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19년 세계 이슬람 경제를 선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인도네시아 샤리아 경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2021년에는 국유은행 3곳을 합병해 자산규모 170억 달러의 인도네시아 샤리아은행(BSI)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말까지 이슬람 금융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올리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어 인도네시아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금융사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 인도네시아 신 정부 출범은 국내 금융사들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진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왼쪽)과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인(오른쪽).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스타그램> |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기회만큼 불확실성도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신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20일부터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인이 정책에 변화를 준다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프라보워 당선인은 정부 부채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무상급식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는데 이 같은 발언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관계자들이 급히 진화에 나선 적이 있다.
KB경영연구소는 “프라보워 당선자가 조코위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공약해 정책 연속성이 예상되고는 있으나 차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실제로 어떠한 정책을 펼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오자까’라 부르는 금융감독청(OJK)의 강한 규제는 국내 금융사가 현지에 진출해 맞닥뜨리게 되는 최대 과제이기도 하다.
OJK는 한국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을 합쳐 놓은 것과 같은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쥐고 금융사들을 관리 감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OJK의 금융산업 발전 밑그림과 규제 방향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은 국내 금융사의 숙제이기도 하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1500여 곳의 은행, 150곳의 여신전문회사, 130여 곳의 보험회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자본적정성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금융업권의 통합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규제 강화는 국내 금융사 같은 해외 금융기관에게 사업 불확실성을 키우는 위기이면서도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KB경영연구소는 “자본적정성 규제 강화가 해외 금융사들에게 새로운 진출 기회가 될지 금융당국의 입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금융당국이 디지털 혁신을 장려하는 동시에 소비자보호와 정보보호 등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