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카드업계의 앞날은 올해 남은 기간은 물론 내년 역시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카드사 본업 수익성을 결정하는 가맹점수수료의 인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고 카드론 잔액은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며 카드사의 건전성을 압박하고 있다.
 
금리인하 전망에 조달비용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 한줄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체감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내 카드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인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은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로 ‘침착한 전진’을 내세웠다. 위기를 차분히 대응하면서도 멈춰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실제 지난해 리스크관리에 방점을 찍고 대출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동시에 애플페이를 전격 도입하는 등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역시 새로운 카드체계를 도입하고 상업자전용신용카드(PLCC) 생태계를 강화하는 등 현대카드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면서 새로운 성장을 이끌고 있다.

15일 신용평가사 분석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향후 가맹점수수료율 인하가 현실화하면 국내 카드사 가운데 수익성에 악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곳으로 꼽힌다.

2024년 6월 말 기준 영업자산 내 결제서비스자산(일시불·할부·결제성리볼빙) 비중이 73.3%, 2024년 상반기 카드이용실적 내 결제서비스 비중은 91.7%로 모두 업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카드와 자산 규모가 비슷한 롯데카드의 영업자산 내 결제서비스자산 비중은 41.3%, 상반기 카드이용실적 내 결제서비스 비중은 86.9%로 현대카드보다 크게 낮다.

가맹점수수료율 인하는 모든 카드사에 공통된 악재로 여겨지지만 현대카드에 더욱 아프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동시에 건전성 압박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2024년 들어 카드론 취급을 확대하고 있어 대손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현대카드의 카드론 잔액은 5조4436억 원으로 2023년 말 4조7762억 원보다 14.0% 늘었다. 

같은 기간 전업카드사 8곳(신한·삼성·현대·KB·롯데·우리·하나·BC)의 카드론 잔액 증가율이 6.6%임을 고려하면 현대카드가 올해 들어 비교적 카드론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부진한 업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에 ‘침착한 전진’의 자세를 요구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누군가는 위기를 맞아 웅크리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웅크리고만 있으면 결국은 소멸한다”며 “현대카드·현대커머셜은 위기에 맞서 침착하고 정밀하게 집중력을 잃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업황이 악화한 상황에서 무리한 움직임도 악영향을 주지만 멈춰서는 것 역시 도태되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현대카드는 여신업권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리스크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카드사로서 본업인 결제서비스, 카드상품의 확장·개편 등에서는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현대카드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0.71%에 그친다. 지난해 말(0.63%) 보다는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0%대 연체율을 유지하고 있다.

전업카드사 8곳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전업카드사 8곳 가운데 유일하게 0%대 연체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카드상품 부문에서는 올해 상당한 변화를 꾀했다.

현대카드는 ‘3바디-A 현대카드’를 내놓으며 한 단계 진화한 PLCC를 선보였다. 3바디-A 현대카드는 카드업계 최초로 파트너사 3곳과 제휴한 카드다.

4월에는 새 슬로건 ‘아키텍트오브체인지(변화의 설계자)’를 내놓고 상품체계를 전면 재정립했다. 이에 따라 현대카드 대표 상품 시리즈인 M시리즈, X시리즈 등도 리뉴얼됐다.

정 부회장은 비우호적 업황이 펼쳐지던 지난해에도 애플페이를 도입하며 결제서비스 혁신에 대해서는 결정을 늦추지 않았다.

다른 카드사들은 이미 크게 낮아진 가맹점수수료에 애플페이 수수료까지 더해지면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애플페이 도입을 두고 장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현대카드의 차별화한 움직임은 호실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카드는 상반기 순이익 1538억 원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늘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에도 순이익 2651억 원을 거뒀다. 2022년보다 4.3% 증가했다. 자회사 매각에 따른 일회성이익을 반영한 롯데카드를 제외하면 8개 전업카드사 가운데 유일한 실적 개선이었다.

정 부회장은 4일 PLCC 파트너사 협의회에서 “현대카드는 남들이 하는 것을 조금 더 잘하기보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사위로 카드업계에서 유일한 오너 일가 CEO다.

정 부회장은 현대종합상사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다 현대정공 미주 법인장과 멕시코 법인장을 거쳐 현대모비스 기획재정본부장, 기아자동차 구매본부장을 지냈다. 2023년 현대카드 부사장에 오르며 현대카드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대표이사에 선임돼 20년 넘게 현대카드를 이끌고 있다. 조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