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웨이브 리더십] 중국 저가공세에 흔들리는 SK그룹, 최태원 리밸런싱으로 배터리 사업 키우기
신재희 기자 JaeheeShin@businesspost.co.kr2024-09-09 16: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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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우리 기업은 성장엔진이 둔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CEO의 판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경제위기의 분수령에서 주요 기업을 이끄는 CEO들의 리더십과 경영전략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삼성전자 ‘이건희 시대’ 성장세 끝?, 이재용 AI·파운드리·로봇에서 새 돌파구 ②LG 구광모 6년 ‘가성비 중국’의 위협, HVAC·XR·AI 신사업 초격차가 관건 ③중국 저가공세에 흔들리는 SK그룹, 최태원 리밸런싱으로 배터리 사업 키우기
④현대차그룹 전기차 미래 후퇴는 없다, 정의선 뚝심 투자로 유연전략 가동
⑤네이버 성장률 둔화 본격화, 최수연 AI로 사업 돌파구 찾기 분주
⑥국내 부진한 넥슨 이정헌, 해외 확장과 저수익 게임 정리로 ‘연매출 4조’ 겨냥
⑦강해진 금융권 내부통제 개선 압박, KB금융 양종희 지배구조 ‘리딩’ 과제 무겁다
⑧‘거인’ 미래에셋 박현주의 혜안, 글로벌IB 향해 쉼없이 달린다
⑨생보업황 악화에 지주사 전환까지 앞둔 교보생명, 신창재 무기는 ‘디지털’
⑩현대카드 정태영 업황 악화 속 '침착한 전진', 건전성 수익성 혁신성 모두 챙긴다
⑪갈림길에 선 롯데, 승부사 신동빈 '선택과 집중' 강도 높인다
⑫DL이앤씨 비우호적 환경에 악화한 수익성, 이해욱 건설명가 재건 기반 다지기
⑬신세계그룹 정용진, 재계순위 10위권 도약시킨 이명희처럼 위상 키울 무기는?
⑭대우건설 건설경기 부진에 수익성 악화, 정원주 ‘글로벌 대우’ DNA 회복 절실
⑮인텔 반도체 ‘부동의 1위’ 무너뜨린 CEO 3인, 경영전략 실패가 삼성에 기회 열었다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산 저가 배터리의 점유율 확대와 전기차 시장 성장둔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SK그룹의 배터리 사업이 크게 흔들고 있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배터리 밸류체인 사업을 그룹의 미래 핵심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알짜 계열사들을 SK온에 합병시켜 수익 창출력을 보강하는 한편 모기업 SK이노베이션에 SK E&S를 흡수 합병시킴으로써 향후 배터리 사업 투자를 위한 지원 여력을 확충하는 등 그룹 리밸런싱 작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중국 저가 배터리의 점유율 확대와 전기차 시장 성장둔화라는 거대한 흐름에도 배터리 사업을 그룹의 미래 핵심 축으로 키우기 위해 관련 사업을 재정비하고 있다. < SK >
더불어 배터리 소재인 동박, 분리막, 실리콘 음극재 등과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 분야에선 그룹 내 '옥석 가리기' 재편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SK그룹이 사세 확대를 위해 추진한 다수의 인수합병으로 악화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중복된 사업을 정리해 내실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9일 재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AI, 반도체, 에너지 등 핵심 사업으로의 SK그룹 리밸런싱의 성공 여부는 향후 배터리 밸류체인 사업의 성패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의 배터리 밸류체인을 보면 △배터리 제조사 SK온 △실리콘 음극재와 동박 제조사 SK넥실리스 △분리막 제조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 △실리콘 음극재 SK머티리얼즈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SK에코플랜트 등이다.
배터리 사업 부진이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으로 번지자 최 회장은 배터리 가치사슬의 정점에 있는 SK온에 그룹의 지원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주사 SK는 현금창출력이 뛰어난 에너지·발전사업 자회사 SK E&S를 SK이노베이션에 흡수시키며 배터리 사업 투자 여력을 보강키로 했다.
또 SK온은 오는 11월1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합병을 앞두고 있다. 내년 2월에도 SK엔텀과 합병할 예정이다. 알짜 회사로 꼽히는 두 회사를 붙여줘 이익창출력을 높이고, 대규모 배터리 설비 증설을 위한 차입으로 악화된 SK온의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에서 2021년 10월 분사한 SK온은 올해 2분기까지 11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냈다. 경쟁사 대비 한발 늦게 배터리사업에 뛰어든 SK그룹은 격차를 메우기 위해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대규모 투자에 나섰지만, 최근 전기차 수요가 침체에 빠지면서 경영 악화 위기를 맞았다.
장수명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이번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을 통한 현금흐름 강화, 재무부담 상승 속도 완화 가능성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SK온의 성공적 기업공개와 신용도 하향 압력해소를 위해서는 배터리 사업의 수익성 개선과 기업가치 제고가 필수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고 분석했다.
전기차와 2차전지 시장에서 중국의 약진은 SK그룹의 배터리 사업에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확대로 유럽 내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 비중이 상승하고, 완성차 기업들의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채택이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시장 장악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SK그룹이 배터리 소재, 재활용 사업 등 나머지 배터리 가치사슬의 ‘옥석가리기’에 나선 것도 현재 맞닥뜨린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분리막을 제조하는 계열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통째 매각 또는 일부 지분 일부 매각 검토도 그런 차원에서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상반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1078억 원, 영업손실 1261억 원을 냈다. 지난해보다 매출은 절반이하로 떨어지고 영업손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분리막 제조사업이 고정비 비중이 높은 비용구조를 지니고 있어 고객사 가동률 하락에 따른 타격이 컸다.
회사는 현재 증설을 진행 중인 폴란드 공장의 생산라인의 가동시점을 재검토하고, 당초 계획한 북미 설비투자 확정시점을 내년 1월로 연기했다. 또 청주공장은 연내 매각을 목표로 유동화를 추진 중이다.
배터리 소재인 동박사업은 살리기로 방향을 잡았다. 중간 지주사 SKC는 최근 동박 제조사 SK넥실리스의 인수금융 상환을 위해 7천억 원을 투입, 이자비용 부담을 감소시켰다. 또 SK넥실리스를 완전 자회사로 두며 지배구조를 단순화시켰다.
노우호 메리츠 증권 연구원은 “4분기 전후 SK온의 현대기아차 납품을 위한 생산라인 구축에 동박 구매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삼성SDI의 소형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일본의 원통형 배터리셀 제조사에 대한 판매가 개시돼 올해 3분기가 판매량 저점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SK넥실리스는 전기료와 인건비가 저렴한 말레이시아 공장과 폴란드 공장 등 해외 생산비중을 늘리고, 원가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공장은 제품 설계와 연구개발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한편 SK에코플랜트는 전기차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분야에서 그동안 축적한 북미 지역 인프라를 통한 새로운 사업 방향을 모색하고, 유럽 및 아시아 지역 설비 활용도를 높이기로 했다. 또 미국의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어센드 엘리먼츠’의 지분 13.09%를 1316억 원에 매각해 투자금을 마련했다.
이는 폐배터리에서 나오는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핵심 광물 회수율을 끌어올리는 핵심기술 내재화에 성공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 SK그룹은 사세 확장을 위해 진행한 다수의 인수합병과 투자로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올해부터 사업 '리밸런싱'을 추진하고 있다. < SK >
최태원 회장은 올해부터 그룹의 사업구조를 AI, 반도체, 에너지 등으로 크게 재편키로 하고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 명확하다. 미래 성장성이 높은 산업에 집중하고 그동안 다각화한 사업을 정리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SK그룹 지주사 SK의 총차입금 규모는 2024년 상반기 말 연결기준 86조6955억 원으로, 2020년 48조3천억 원에서 약 80% 증가한 수준이다.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도 각각 158.8, 40.3%로 높아졌다.
최 회장은 지난 7일 글로벌 경영환경 점검회의에서 “글로벌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인공지능(AI), 반도체, 에너지솔루션 등 미래 핵심 사업에 대한 국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촉을 높이 세우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