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큐리티히어로의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 국적 조사 결과. <시큐리티히어로 보고서 갈무리> |
[비즈니스포스트] 인물의 얼굴을 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여야가 입법에 분주하다.
여야는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하거나 보유한 사람에 관한 처벌조항을 강화하고 영상물에 딥페이크가 활용됐음을 표시하는(워터마크) 방안 등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까지 법안을 쏟아내는 등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딥페이크 대책 입법 논의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글로벌 사이버보안업체 ‘시큐리티히어로’(Secutiryhero)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연예인이 전세계적인 딥페이크 음란물의 주요 표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국적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53%로 2위인 미국(20%)과 3위 일본(10%)과 비교해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에서 가장 많이 표적이 되는 나라"라며 "딥페이크는 엔터테인먼트·정치·허위조작정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지만 어떤 국가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딥페이크 콘텐츠, 특히 노골적인 콘텐츠에 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딥페이크 포르노의 표적이 된 개인별 제작편수 조사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가수 8명이 상위 10위권 안에 포함됐다. 우리나라 가수들은 1위~7위, 그리고 9위에 올랐다. 이들 8명의 딥페이크 포르노 누적 조회 수는 무려 2491만6500회에 달했다.
외신들도 우리나라가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주목하고 있다.
영국 BBC는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 비상사태에 직면했다’는 기사를 통해 딥페이크 성착취물 유포 현황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주문한 내용을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딥페이크 성착취물 단속 강화에 나선 정부의 움직임을 보도하면서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가짜 성착취물의 생성·유포 네트워크 적발은 한국이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임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딥페이크 성범죄는 청소년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으로 파악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높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경찰에 신고된 허위영상물(딥페이크 범죄를 통해 편집된 합성음란물) 사건의 피해자 527명 가운데 315명(59.8%)이 10대였다. 이는 20대(32.1%), 30대(5.3%), 40대(1.1%) 등 성인들보다 월등히 높은 비중이다.
▲ 평화나비네트워크 회원 등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대응 긴급 대학생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처럼 우리나라가 딥페이크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현실이 밝혀지면서 정치권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법안을 발의하며 대책마련에 나섰다.
정치권의 딥페이크 범죄 관련 법안들을 살펴보면 크게 ‘처벌 강화’와 ‘예방 및 수사지원’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타인의 의사에 반해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또는 음성물과 이를 편집·합성·가공한 정보의 유통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이해식·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 등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포한 사람만 처벌하는 처벌조항의 한계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한정애 의원은 "현행 성폭력처벌법상 딥페이크 성범죄물 이용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부재해 딥페이크가 일상화되고 있지만 법과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입법 공백을 해소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한 의원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불법 합성 영상물 유포 행위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교육부는 교육자료를 통해 심각성을 알리는 등 예방 교육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처벌강화와 동시에 정부 차원의 예방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텔레그램 등 플랫폼 서비스 제공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을 반영한 법안도 나왔다. 2019년에 발생했던 'n번방 사건' 당시에도 텔레그램은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불법촬영물을 수사하는 기관장의 요청이 있으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불법촬영물을 유통한 자에 관한 정보를 보존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정부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단체의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에 대한 개선·보완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인공지능(AI) 생성 콘텐츠에 ‘꼬리표’를 다는 방안을 제시해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법안들도 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AI로 만든 음향·영상·이미지 등의 콘텐츠에 ‘가상정보’임을 명확하게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가상정보 표시 의무를 위반하면 정보제공자에게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고 플랫폼 기업에도 표시 없는 AI 생성물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게 뼈대다. AI 워터마크 도입을 의무화하면 인터넷 이용자들이 가짜 콘텐츠에 속아 발생하는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거짓 영상에 대한 식별표시를 의무화할 경우 건전한 인공지능 기술 활용 문화의 정착과 피해 감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도 일정 규모 이상의 포털·플랫폼은 영상을 게시하기 전 이용자에게 AI를 활용해 생성된 영상인지 등 딥페이크 여부를 표시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의 정치지도자들이 직접 딥페이크 대책마련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관련 입법 논의는 탄력을 받을 공산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이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당에 딥페이크 대책을 주문했다.
다만 딥페이크와 관련된 법안들이 여성가족위원회(성폭력처벌법),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정보통신망법), 행정안전위원회(경찰 수사) 등 국회 개별 상임위원회 소관으로 분산돼있다는 점은 법안 통과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정부와 국회가 논의를 거쳐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28일 YTN사이언스에서 "입법이 미흡한 부분 때문에 현장에서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등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행정부와 입법부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해야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도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 성착취물 대책은) 과방위, 법사위, 여가위, 행안위 등 여러 상임위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며 “각 상임위에서 현안 질의와 법안심사를 통해 전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