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전국 주택시장에서 5년 이하 신축 아파트를 향한 선호도가 크게 높아졌다. 날씨와 관계없이 차가운 음료를 선호하는 현상을 뜻하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라는 말에서 파생돼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재건축과 재개발 등에 따른 가격 상승을 노리는 ‘몸테크’가 유행어로 떠돌던 시기와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만큼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향한 기대가 낮아지고 거주 편의성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해진 것으로 파악된다.
▲ 서울 지역 신축 아파트가 같은 입지 구축 아파트보다 최대 50% 이상 높은 프리미엄에 거래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18일 부동산업계 취재와 국토교통부 자료 등을 종합하면 현재 서울 등지 신축 아파트의 구축 대비 가격 프리미엄은 최대 5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부동산원이 매주 집계하는 ‘연령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에 따르면 8월5일 기준 수도권 준공 5년 이하 아파트의 매매가격지수는 올해 1월 첫째 주와 비교해 1.39% 올랐다.
같은 기간 ‘5∼10년 이하’(1.15%), ‘10∼15년 이하’(0.95%), ‘15년∼20년 이하’(0.63%)보다 월등히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반면 20년이 넘은 아파트는 상승률이 0.16%에 그쳤다. 5년 이하 신축 아파트의 매매가격지수 상승률이 20년 이상 구축의 8배를 웃도는 셈이다.
준공 이후 17년 이상 지난 아파트는 재건축 기대감으로 가격이 뛰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이런 사례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최근 공사비 갈등과 분담금 문제 등으로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 수요 기대감이 상당 부문 감소한 한편 최근 실수요자로 떠오른 30~40 세대들이 최신 설계와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는 데 따른 영향으로 해석한다.
신축 선호현상은 서울 최상급지로 꼽히는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포레센트는 평당(3.3㎡) 매매가가 평균 7556만 원으로 나타났다.
도로 맞은편에 위치한 현대4차(1987년 입주)가 평균 평당 매매가가 5672만 원으로 집계됐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30%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이다.
서초센트럴아이파크와 인근에 위치한 서초아트자이는 입주연도가 2020년과 2009년으로 10년 넘게 차이난다. 불과 4분 거리지만 평당 매매가는 각각 5497만 원, 3666만 원으로 약 50%가량 차이가 났다.
▲ 서울 강남 디에이치포레센트 아파트 전경. <현대건설>
경기 신도시에서도 신축 아파트 선호가 드러났다.
2020년 입주된 과천푸르지오써밋은 평당 평균 매매가 6332만 원으로 인근 래미안에코팰리스(2007년 입주) 4950만 원보다 28% 정도 비쌌다.
비슷하게 평택 e편한세상지제역(2022년 입주) 매매가는 평당 평균 1744만 원으로 큰길 하나를 두고 옆에 있는 힐스테이트평택1차(평균 1328만 원)보다 31%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지방 주요 광역시도 신축 우위 현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2020년 입주한 부산 해운대 e편한세상오션테라스1~4단지는 평당 평균 매매가가 약 2500만 원으로 집계됐다. 한 블록 옆에 떨어진 2016년 입주 e편한세상광안비치(2162만 원)보다 16%가량 높게 시세가 형성됐다.
대전에서도 서구 도안동 트리풀시티레이크포레(2021년 입주)가 평당 평균 2309만 원으로 도로 맞은편 대전도안아이파크(2013년 입주) 1732만 원보다 33% 정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대구에서는 남구 봉덕동 힐스테이트앞산센트럴(2024년 입주)이 평당 평균 1649만 원에 거래돼 바로 옆에 위치한 2008년 입주 앞산힐스테이트(1049만 원)보다 60% 웃도는 가격대를 보였다.
광주는 인근 지역에 있으면서 두 배에 이르는 가격 차이를 나타낸 아파트가 다수 관측됐다. 2022년 완공된 광주화정동골드클래스는 평당 평균 매매가 1688만 원으로 중흥파크(1988년 입주) 평균 843만 원의 두 배를 웃돌았다.
다만 신축 아파트 선호는 현재 절정기에 이르렀으며 시간이 지나면 한풀 꺾일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찮다.
특히 정부가 ‘8·8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뒤 재건축·재개발 단지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얼죽신' 현상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8·8 부동산 대책에는 서울 도심권 주택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건축·재개발 촉진법'(특례법)을 제정해 현재 진행 중인 37만 호 규모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정부 방침이 담겼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부동산 공급확대 대책을 내놓은 뒤 재건축·재개발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재건축·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면 구축 아파트 가격이 신축에 가까운 수준까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