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2024-08-16 00:00:00
확대축소
공유하기
[K스마트시티 지피지기 백전불태] UN해비타트의 2022 세계 도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인 56.2%는 도시에 살고 있다. 이 수치는 2050년 68.4%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사람 세 명 중 두 명이 도시에 살게 된다는 의미다.
도시는 이제 인구가 많은 정착지로서 여러 기능이 결합된 생활공간에 그치지 않고 구성원들에게 안전, 이동성, 효율성 등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될 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인구감소 등 다양한 문제의 솔루션으로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도 여겨진다.
이러한 도시의 가능성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IT기술과 결합한 스마트시티로 구체화된다.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스마트시티 구축이 진행되고 있고 시민들의 삶에 그 효과가 녹아들어가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과 도시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스마트시티 산업 경쟁력을 높이 쌓아올렸다. 최근에는 민관이 힘을 모아 K스마트시티를 해외건설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수출 상품이자 한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국내외 스마트시티 현장부터 스마트시티 도입이 예상되는 수출후보지역까지 탐사하고 스마트시티 산업의 현실 경쟁력과 잠재력을 분석 취재했다.
1부 이미 펼쳐진 미래 스마트시티, 인류의 고민을 푼다
2부 한국의 스마트시티, 어디까지 와 있나 3부 도시개발도 이제는 콘텐츠, 뻗어나가는 K도시
4부 한국의 새 경쟁력이자 도약대, K스마트시티
▲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의 중심지인 수흐바타르 광장의 징기스칸 동상. <울란바토르=비즈니스포스트>
[울란바토르(몽골)=비즈니스포스트]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 균형발전.
한국이 고도 경제성장을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오랜 기간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는 주제다. 1971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의 대전 행정수도 공약, 1977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 건설 발표처럼 1970년대 들어서는 구체적 구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설치되는 등 지방 분산 노력은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담은 8·8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수도권 과밀화 논란에 불이 붙는 상황을 보면 국토 균형발전을 둘러싼 한국 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보인다.
도시 및 국토 개발에서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나라는 적지 않다. 특히 몽골은 수도권 과밀화에 고민하는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한국의 경험이 몽골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 몽골의 울란바토르 집중, 한국의 서울공화국 못지않아
몽골의 수도권 과밀화 수준은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한국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다.
몽골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말 기준으로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는 약 173만 명이 거주한다.
▲ 바야라 아리온자르갈란 몽골 과학기술대학 교수.
몽골 전체 인구 약 350만 명 가운데 49% 이상이 한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는 의미다.
바야라 아리온자르갈란 몽골 과학기술대학 교수는 “몽골에서는 목축업에 종사하는 인구 비중이 여전히 적지 않은 상황인데 ‘조드(Dzud)’와 같은 자연재해로 가축을 잃으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울란바토르로 인구가 이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문제 외에도 교육, 의료 등 몽골의 주요 인프라가 대부분 울란바토르에 몰려 있는 만큼 울란바토르로의 인구 이동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울란바토르는 1924년 몽골 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부터 줄곧 수도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도시개발이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독립이 완전히 확정되고 난 1950년대 이후부터다.
당시 몽골은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기에 울란바토르 개발에도 소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소련은 울란바토르를 인구 50만 규모의 도시로 계획했다.
울란바토르 인구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60만 명을 밑돌았다.
하지만 몽골이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 민주화 체제로 전환한 이후 경제 구조에도 급격한 변화가 뒤따르면서 울란바토르 인구는 불과 30년 사이 3배 가까이 뛸 정도로 급증했다.
▲ 울란바토르 북쪽에 들어선 게르 지역의 모습. <울란바토르=비즈니스포스트>
◆ 과밀화된 울란바토르, 인구 절반 이상이 도시 인프라 누리지 못해
50만 명 인구를 수용할 계획으로 만들어진 도시에 170만 명이 살고 있으니 도시 문제 발생은 필연적이다.
울란바토르의 가장 큰 도시 문제로는 주거 부족이 꼽힌다.
울란바토르로 이동해 온 이주민들은 대체로 도시 내에 주거를 마련하기 어려우니 외곽 지역에 전통 가옥형태인 게르(Ger)를 설치해 살다가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 간단한 건물을 올려 거주한다. 비어있는 땅에 거주지를 마련한 것이다 보니 도로, 상하수도, 난방 등 기본적 도시 인프라도 이용할 수 없다.
아리온자르갈란 교수는 “이주민들이 도시 인프라가 없는 지역에서 게르를 짓고 사는 경우가 많아 이들 지역을 통상적으로 게르 지역이라 부른다”며 “울란바토르 인구 가운데 55%가 게르 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교통 문제 역시 울란바토르의 주요 도시 문제로 꼽힌다.
울란바토르에는 도시계획에 비해 과도한 인구가 몰려 있는 데다 인구의 50% 이상이 자가용을 이용한다. 게다가 도로 면적까지 적어 울란바토르 시내 도로는 언제나 차로 가득 메워져 있다.
서울대 한몽도시협력센터의 이인근 특임교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울란바토르 시가화 지역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 비중은 8~9% 정도로 추정된다”며 “선진국 도시의 도로 면적 비중을 보면 미국, 유럽 주요 도시는 30% 이상이고 서울은 23% 정도지만 지하도로, 지하철 등으로 두세 겹 교통 인프라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전력, 수자원 등 부족은 과밀화된 울란바토르가 겪는 주요 도시 문제로 꼽힌다.
▲ 몽골 울란바토르 인근 도로가 이동하는 차량으로 가득 찬 모습. <울란바토르=비즈니스포스트>
◆ 몽골 정부는 울란바토르 인구 분산과 지방 균형발전에 진심
몽골 정부는 울란바토르 과밀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 분산을 진행하고 있다.
몽골 정부가 수립한 장기개발계획 '비전 2050'을 보면 9대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로 '울란바토르 및 위성도시 건설'을 설정하고 주요 내용으로 "살기 편하고 환경친화적인 사람 중심의 스마트시티 육성"을 제시하고 있다.
몽골 정부는 2006년부터는 울란바토르 남서쪽 야르막(Yarmag) 지역에 신도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야르막에 울란바토르 신시청이 지어지는 등 도시 기능 분산이 진행되고 있다.
▲ 에르데네밧 바트볼드 몽골 건설도시개발부 도시계획국장.
‘쿠시그 밸리(Khushig Valley) 프로젝트’를 통해 울란바토르 남쪽 50km 거리에 위치한 준모드(Zuunmod)에 300㎢ 규모의 신도시를 짓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2040년을 목표로 진행 중인 쿠시그 밸리 프로젝트 종합계획에는 준모드 신도시를 환경친화적 인프라를 갖춘 현대적 스마트시티로 조성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울란바토르로 인구 집중은 도시 내 문제뿐 아니라 몽골 전체 국토개발 측면에서도 불균형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울란바토르는 몽골 국토에서 동편에 치우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몽골 내에는 러시아, 중국을 오가는 철도가 울란바토르를 지나가도록 건설돼 있고 주요 산업시설도 대체로 철도 인근에 위치한다.
몽골 정부는 균형 개발을 위해 국토 중앙에 위치한 하르호린(카라코룸)에 정부 행정기관을 옮겨 인구 50만 명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하는 ‘오르혼 밸리(Orkhon Valley)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 부산, 울산, 경상남도 등이 뭉쳐 광역경제권 형성을 추진하는 것처럼 몽골 내 행정구역 몇 개를 묶어 지역 단위로 개발도 추진한다.
에르데네밧 바트볼드 몽골 건설도시개발부 도시계획국장은 “몽골 내 21개 아이막(Aimag, 한국의 ‘도’와 같은 행정구역 단위)이 있지만 각 아이막은 울란바토르와 경쟁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아이막 3~4개 정도를 뭉쳐 지역별로 중심이 될 만한 도시를 건설해 지방 인구가 일자리 등을 찾기 위해 울란바토르로 오지 않고 지역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게끔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 몽골 하르호린에 위치한 에르덴 조 사원(사진 가운데)의 모습. 사진에서 에르덴 조 사원 위쪽 초원이 오르혼 밸리 프로젝트에 따라 신도시가 건설될 지역이다. <하르호린=비즈니스포스트>
◆ 예견된 인구 증가와 도시 수요, 몽골에는 도시개발 전문가가 필요하다
몽골의 인구 상황을 보면 한동안 인구 증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몽골 인구는 2003년 249만 명에서 2023년 350만 명으로 최근 20년 동안 매년 평균 5만 명 이상 늘고 있다.
몽골은 인구 구조를 봐도 전체 인구 350만 명 가운데 30세 미만 인구 비중이 50% 이상이며 중위 연령(전체 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이 27세일 정도로 젊은 나라다. 출산율 역시 2022년 기준 2.90일 정도로 높다.
인구 증가에 대응하고 울란바토르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려면 도시 건설 수요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몽골 정부는 울란바토르 개발 과정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 신도시 건설에서는 철저한 계획과 미래 기술 적용을 통해 제대로 된 도시개발을 진행하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하르호린 신도시 개발을 위한 오르혼 밸리 프로젝트와 관련해 세계 각국 연구팀이 참가하는 도시개발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공모전에는 최신 스마트시티 기술 등이 다수 적용된 도시개발 계획안이 다수 제출됐다.
하지만 몽골 내에는 도시개발을 이끌 전문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몽골은 국가적으로 도시를 건설해 본 경험이 없다. 따라서 몽골 내 대학에 도시개발 관련 과정이 전무했을 정도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제반 사정이 매우 열악했다.
몽골이 도시개발 전문인력 확보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국과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
서울대 한몽도시협력센터 임다혜 박사는 “몽골의 도시개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코이카를 통한 한국 정부의 공적 지원으로 몽골 과기대에 도시계획공학과 설립 등을 위한 ‘에쓰 쿼드(S-Quad)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몽골 과기대에 도시계획공학과 석사과정이 시작돼는 등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 (다음 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