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부동산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사진은 미국 연방준비제도 청사.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갑자기 시장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던 시장은 이제 경기침체의 구체적인 데이터들이 속속 등장하자 경기침체(recession)의 습격 우려에 당황하고 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만 내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침체의 도래를 확증한다는 분석이 부쩍 힘을 얻는 상황이다. 거기에 일본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부터 촉발된 엔 케리 트레이드 청산, AI혁명에 대한 의구심 등이 더해져 시장을 미궁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외부환경도 악화일로인데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자영업 시장이 붕괴하는 등 국내 경제지표들도 최악이다. 기준금리 인하라는 이벤트에 현혹되어 감당할 수 없는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투자를 극력 회피해야 할 때다.
마침내 경기침체의 습격이 시작되는가?
불과 얼마 전까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 둔화된 경기지표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미국은 이제 도리어 경기침체를 나타내는 지표들의 출현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7월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46.8로, 시장 예상치(48.8)를 크게 밑돌면서 경기 침체 공포감이 커진 데 이어 고용시장이 결정적으로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미 노동부는 7월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1만4천 명 늘었다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직전 12개월 동안 평균 증가폭(21만5천 명)의 거의 ‘반 토막’ 수준이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8만5천 명)도 크게 밑돌았다.
지난 5월 고용 증가 폭은 21만8천 명에서 21만 6천 명으로 2천 명 줄었고 6월에도 20만 6천 명에서 17만9천 명으로 2만7천 명으로 하향 조정됐다. 5∼6월을 합산한 하향 조정 폭은 2만9천명에 달했다.
7월 실업률은 4.3%로 6월(4.1%) 대비 0.2%p 상승했으며 4.1%를 예상한 전문가 전망치를 상회했다. 7월 실업률은 2021년 10월(4.5%) 이후 2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한 시간당 평균임금 상승률은 전월 대비 0.2%, 전년 대비 3.6%로, 모두 시장 전망치에 0.1%p씩 밑돌았다.
평균 수준을 크게 밑도는 7월 고용 증가세, 기존 지표의 하향 조정, 예상 밖 실업률 증가, 평균임금 상승률의 둔화 등의 지표는 미국 고용시장이 빠르게 식고 있음을 방증한다. 또한 고용시장의 냉각은 미국 경제의 엔진인 민간소비의 냉각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며, 이는 미국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실업률이 4.3%까지 오르면서 미국 경기침체를 가늠하는 '샴의 법칙' 지표가 발동됐다. 샴의 법칙은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이동평균치가 앞선 12개월 중 기록했던 최저치보다 0.5%p 이상 높으면 경기침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한다.
7월 실업률 결과로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이동평균치와 앞선 12개월 중 기록했던 최저치의 괴리를 산출한 결과 0.53%p로 나타났다. 최소한 샴의 법칙 기준으로는 미국 경기가 침체 진입을 알린 것이다.
‘엔 케리 트레이트 청산’과 AI혁명에 대한 회의감이 동시에 시장을 타격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이 있다.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 경제의 엔진이라 할 미국이 경기침체 국면에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시장에 확산되는 마당에 일본 중앙은행이 7월에 단행한 기습적 기준금리 인상 결정이 시장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주지하다시피 ‘엔 케리 드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으로부터 돈을 빌려 각국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걸 일컫는다. 그런데 일본중앙은행의 예상치 못한 기준금리 인상에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자 이른바 ‘엔 케리 트레이드 청산’(환차손 등을 우려하는 자금이 보유자산을 매각해 일본으로 환류하는 현상)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일본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각국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한 금액이 최대 20조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미국 주식시장을 사상 최고점으로 밀어 올렸던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AI(인공지능)혁명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 확산에 속절없이 폭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AI혁명에 열광하던 시장은 돌연 AI혁명이 실적과 성장성이 뒷받침되는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엔비디아 등의 빅테크 기업들을 투매 중이다. AI혁명이 닷컴 혁명의 전철을 밟을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사면초가 상태의 한국경제
외부에서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국내 경제상황도 첩첩산중이다.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급락한데다 자영업 시장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직전분기대비·속보치)이 -0.2%로 집계됐다고 지난 달 25일 발표했다. 분기 기준 역(-)성장은 2022년 4분기(-0.5%)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2023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다섯 분기 연속 이어진 플러스(+) 성장 기조가 깨졌다. 심지어 2분기 실질 국내총소득(GDI) 증가율은 -1.3%로 실질 GDP 성장률(-0.2%)보다도 낮았다.
민간소비의 바로미터라 할 자영업 시장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으로 전년(86만7292명) 대비 13.7% 증가했다. 증가폭은 11만 9195명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폭을 기록했다.
폐업 사유를 보면 '사업 부진'이 48만218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7년(48만8792명)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지난해 폐업률은 9.0%로 2016년(11.7%) 이후 줄곧 하락하다 8년 만에 상승 전환했다.
더 충격적인 건 자영업자 폐업 증가폭이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의 실업급여 지급액 보다 올해 듫어 5월까지 자영업자 실업급여 지급액이 10.6% 가량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사실이다. 올해 역시 자영업 시장에는 통곡소리만이 가득한 것이다.
연준의 9월 기준금리 인하에 환호작약은 경솔
이제 시장은 미 연준의 9월 기준금리 인하 폭을 0.25%가 아니라 0.5%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연준이 9월 FOMC(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내리고 연내에 총 1.0%가량 인하할 가능성이 대두될 만큼 미국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엔 케리 트레이드 청산’의 후폭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어느 선까지 내려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국내 경제는 수출, 민간소비, 투자, 재정의 모든 부면에서 어둡기만 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이벤트에 현혹돼 '빚투'와 '영끌'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숙고해야 할 것이다. 경기침체에 장사는 없으며 서울 아파트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땅을 둘러싼 욕망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토지정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투기공화국의 풍경’을 썼고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함께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