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금투세를 기존에 예정된 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진행 중인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 연임이 유력한 이재명 후보가 지속적으로 금투세 시행 유예 및 완화를 주장해 확실한 당론을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이재명 후보를 향해 금투세 폐지를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여야를 이끄는 두 사람이 만나 금투세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11일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은 2025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에 관해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투세는 주식·채권 등 금융투자로 얻은 소득에 포괄적으로 과세하는 세금이다. 국내 상장주식은 연 5천만 원, 그 외 금융상품은 연 250만원 공제하고 과세표준 3억원 이하에 20%, 3억 원 초과분에 25%의 세율을 적용한다. 여야 합의로 2020년 국회를 통과했으며 당초 2023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가 2년 유예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금투세 폐지를 ‘부자감세’로 규정하면서 유예하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특히 당의 정책방향과 추진을 총괄하는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금투세는 예정대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진성준 의장은 지난 7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금투세와 관련해 당내 여러 의견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예정대로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 당내 컨센서스(일치된 의견)”라고 말했다.
▲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7일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의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5일 국내 증시가 미국발(發)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금투세를 폐지하라는 개인투자자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민주당은 7일 국회에서 열기로 했던 금투세 관련 토론회를 연기했는데 주식시장 폭락 사태로 금투세에 예민해진 여론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진 의원 블로그에는 5일과 6일 사이에 금투세 폐지를 요구하는 댓글이 1400개 이상 달리기도 했다.
개미투자자들의 ‘댓글 폭격’을 받은 뒤에도 진 의원은 금투세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서민지원’을 통한 내수경제 회복이라는 민주당의 경제정책 방향성과 금투세 폐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 의원은 7일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고액 자산가의 세금을 깎아주면 우리 경제가 살아나는지 정부여당에 묻고 싶다”며 “주식 투자자의 1%에 불과한 초거대 주식부자의 금투세를 폐지하면 내수 경제가 살아나나”라고 반문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금투세 시행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대통령실의 주장에도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7일 공지에서 국회를 향해 금투세 폐지 논의를 촉구하며 주가 하락의 원인인 금투세가 도입되면 개미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진 의원은 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거의 모든 투자자가 세금을 가지고 투자를 결정하는 게 아니고 수익이 발생하느냐를 가지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지 않느냐"며 대통령실의 주장을 두고 "나중에 주식시장이 살아나지 못하고 영 주저앉을 때를 대비해 핑곗거리를 찾고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당대표 연임이 유력한 이재명 후보가 금투세와 관련해 유예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비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후보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이 후보는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금투세 완화’를 언급한데 이어 지난 6일 토론회에서 “조세는 징벌이 아니다”며 “주식시장은 꿈을 먹고 사는데 5000만 원 과세에 많은 분들이 저항한다”고 말해 자신이 당대표가 된다면 금투세 유예나 완화를 추진할 의사를 나타냈다.
이 후보의 발언이 나오자 친명(친이재명)계 이연희 의원은 7월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세금 걷는 정당은 집권할 수 없다”고 지원사격에 나섰고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김병주 의원도 “국민이 편하면 그런 정책도 받아들이는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 의원도 "당의 총의가 그렇게 모인다면 당인의 한 사람으로서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구성된 뒤 당론으로 금투세 유예나 완화 등이 결정되면 따르겠다는 뜻을 보였다.
차기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이재명 당대표 후보 관점에서는 1400만 여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클리앙’, ‘딴지’ 등 민주당 지지 성향의 이용자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도 ‘금투세 만큼은 폐지하는 것이 맞다’는 글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민주당이 금투세와 관련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국내증시 하락을 계기로 이재명 당대표 후보를 향해 금투세 폐지 논의를 제안하면서 향후 금투세 시행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한 대표는 6일 당정협의회에서 이 후보를 향해 금투세 폐지에 관한 토론을 제안한데 이어 7일 페이스북에 "연임이 확정적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나오면 더 좋겠지만 어렵다면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과 공개토론을 하겠다"며 거듭 압박했다.
이 후보가 당대표에 취임하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는 상견례 등의 형식으로 만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금투세가 두 사람의 첫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법이나 민생지원금 25만원, 방송4법, 노조법 개정안 등과 달리 ‘금투세 유예·폐지’는 거대 양당이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안건으로 여겨진다.
특히 ‘확대명’(당대표는 확실히 이재명)이란 평가를 받는 이 후보는 민주당 내부의 엇갈린 의견을 정리해 자신의 견해대로 금투세 유예·완화를 당론으로 밀고나갈 공산이 크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주식 투자하는 분들 가운데 민주당 지지자들도 많을 거고 이재명 후보도 중도층을 의식하고 있다”며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버티기는 하지만 지금 경제 상황도 안 좋고 하니까 이재명 후보가 (당 대표에 오른 뒤)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