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2024년 7월27일(현지시각)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미국 암호화폐 업계 큰손들이 잇달아 트럼프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숨어있는 변수는 비트코인이다.
“나의 일은 여러분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지난 7월27일 미국 테네시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연례 총회에서 미국의 주요 정당 대선 후보로는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참석해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트럼프의 등장과 연설에 참석자들은 열광과 환호를 보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한 “탄압”을 끝장내겠다고 하면서 관련 규칙들은 “여러분의 산업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의 환호에 트럼프는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 의장을 겨냥해 “그가 이렇게 인기가 없는지 몰랐다”며 “다시 말하는데, (내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첫날에 게리 겐슬러를 해임하겠다”고 말했다. 겐슬러 의장은 최근 금융시장에서 암호화폐 규제를 주도해왔다.
트럼프의 이날 회의 참석 직후 열린 29일 시장에서 비트코인은 6주 만에 최고치인 7만 달러에 도달해, 역대 최고 수준인 7만3천 달러에 근접했다. 암호화폐 업계와 그 거물들은 트럼프라는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업계와 시장은 2022년 5월 이후 주요 거래소인 FTX의 파산과 그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의 도주와 체포 등 일련의 거래소 및 암호화폐 관련 거품이 붕괴되며 파산한 사태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에 증권거래위원회 등 금융 당국은 암호화폐 및 그 시장 규제에 나섰고,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트럼프를 구세주로 모신 것이다. 특히, 이 구세주가 암호화폐의 허망함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규제를 주장한 선지자에서 전향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트럼프는 FTX 파산 사태가 나기 1년 전인 2021년에 암호화폐는 “돈이 아니고” 그 가치는 “희박한 공기에 기초한다”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비트코인이 “사기같은 것”이라며 암호화폐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비트코인들은 아주, 아주 강하게” 규제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트럼프가 이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와 그 지지자들의 해방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업계와 거물들이 트럼프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기부하고, 표를 몰아주겠다고 줄을 섰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돈뿐만 아니라 표가 굴러들어올 것으로 보이자, 갑자기 암호화폐 해방자로 급변했다.
지난 6월4일 트럼프의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 자택에서 열린 비트코인 업계의 관계자 모임에서 비트코인 관련 미디어 기업인 비티티(BTC)의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베일리는 “우리 산업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를 2024년 선거에서 결정적 이슈로 만들고자 한다”며 “산업으로서 우리는 트럼프의 재선 노력에 1억 달러 이상을 모금하고, 500만 명 이상을 투표하고자 다짐한다”고 밝혔다.
돈 앞에 장사없다. 미국에는 약 5천만 명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있다. 이들 모두가 트럼프에 투표하지는 않겠지만, 베일 리가 밝힌데로 500만 명 정도가 적극적 지지자로 돌아서면, 2%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번 대선에서 영향을 상당할 것이다.
지난 6월27일 대선토론회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고령에 따른 쇠약함을 완연히 드러내, 후보교체론이 나오고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암호화폐 업계는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표밭인 실리콘밸리에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암호화폐 지지자들도 트럼프 쪽으로 공개적 베팅에 나섰다.
암호화폐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자신이 만든 전기 자동차 테슬라를 비트코인으로 거래하겠다고 밝힌 일론 머스크는 그 대선 토론회 뒤에 트럼프에 매달 45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페이팔 등의 공동창업자로 벤처자본가 1세대를 대표하는 실리콘밸리의 거물인 피털 틸, 초기 인터넷 브라우져인 넷스케이프 등을 개발한 마크 앤드리슨,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캐피탈 회사 중 하나인 ‘앤드리슨 호로비츠’를 앤드리슨과 공동 창업한 벤 호로비츠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들도 차례로 트럼프 지지로 커밍아웃했다.
이들 모두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철학적으로도 지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터 틸은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제이디 밴스의 상원의원 선거에 이미 1500만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밴스는 월스트리트가 백인 노동자 계층이 고혈을 착취한다는 우파 포퓰리즘의 기수이기도 하다. 백인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밴스는 실리콘밸리의 벤쳐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암호화폐 업계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는 암호화폐에 대한 탈규제화 입법을 지지했고, 겐슬러 증권거래위 의장을 자산 계급을 감독하는 “최악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업계 거물들은 일찍이 트럼프에 줄을 섰다. 암호화폐 거래소인 제미니 공동창업자인 쌍둥이 형제인 타일러 윙클레보스와 캐머런 윙클레보스는 트럼프 선거운동본부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들 쌍둥이 형제는 트럼프 쪽의 ‘페어셰이크’라는 암호화폐 슈퍼팩에 490만 달러를 내기도 했다.
슈퍼팩은 독립적인 정치자금 모금 위원회로 개인이나 회사 등으로부터 무한정 기부를 받을 수 있다. 암호화폐 업계를 상대로 하는 페어셰이크는 무려 1억7700만 달러나 모금해, 트럼프 쪽의 최대 슈퍼팩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1억7800만 달러에 버금갔다.
페어셰이크에는 암호화폐 회사인 리플이 4500만 달러, 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4500만 달러, 앤드리슨 호로비츠가 4700만 달러나 기부했다.
머스크나 틸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는 암호화폐 때문이다. 이들에게 비트코인은 자신들이 믿는 기술적, 정치적 표현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지능이 낮은 정부에 의해 묶인 걸리버라고 믿는다. 틸은 심지어 민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연준은 가장 해로운 형태의 ‘딥스테이트’(심층 국가, 막후 엘리트들에 의해 운영되는 장막 뒤의 국가)이다. 국가가 발행하는 달러 등 공식화폐에 의해 자신들의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부가 규제되고 있다는 믿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선출한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에는 “공화당은 민주당의 불법적이고 비미국적인 암호화폐 탄압을 종식할 것이다”라고 구절이 들어갔다. 트럼프는 미국을 “비트코인 슈퍼파워”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정부에 의해 압수된 약 130억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연준의 재산 목록에 올려놓겠다고 약속했다. 비트코인이 미국 중앙은행과 달러를 담보하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미국으로서는 중국 등이 추진하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에 대응할 선택지가 없어질 수 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업계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가 개인들의 금융활동을 감시하는 빅브라더가 될 것이라며 명목으로 반대한다. 실상은 자신들의 암호화폐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그런데 비트코인 등이 연준의 자산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연준은 이 암호화폐 가치를 유지할 수 밖에 없고, 디지털 화폐 발행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비트코인 등의 경제적 가치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비트코인 등은 투기나 돈세탁의 수단으로서 역할만 커지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로비가 트럼프의 당선에 기여한다면, 미국의 달러 파워는 더욱 축소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암호화폐 업계의 로비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5천만 명의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미 정부가 추진하는 암호화폐 규제는 개미 투자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거품을 일으켜서 개미투자자들을 상대로 수억 달러의 이익을 취하고 먹튀하려는 암호화폐 회사 및 그 업주들을 규제하려는 것이다.
암호화폐 업계와 거물들은 지금 트럼프를 지지해서 그런 자신들에 대한 규제를 막으려 하고 있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