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때로 누군가가 나를 협박하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녹록지 않은 상황에 놓인 것이 분명해도 여전히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Pexels > |
[비즈니스포스트] ‘누칼협’이라는 유행어를 들어보았는가?
2년 전쯤 탄생한 유행어인 누칼협은 ‘누가 칼로 협박했나’의 줄임말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에게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해놓고서는 왜 불만이냐’는 의도로 던지는 표현이다. ‘네가 선택했으니 그것으로 인한 모든 결과는 네 책임’이라는 것이다.
누칼협은 자기 직업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호소하는 이에게도, 주식·코인·부동산에 전재산을 올인했다가 하락장이 와서 절망한 이에게도, 배우자를 비난하는 이에게도 날아든다. 누가 칼들고 협박해서 공무원을 하라고, 영끌해서 집을 사라고, 그 사람과 결혼하라고 했느냐며 냉소한다.
많은 이들은 누칼협이 각자 도생이라는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며 개탄한다. 누칼협에 담긴 생각, 즉 내가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따라오는 모든 결과를 군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 폭력적이다.
그러나 누칼협은 이대로 그냥 버려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표현이다. 사실 누칼협이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하기 싫은 일을 할지 말지 고민할 때마다 “지금 누가 나를 협박하고 있기라도 한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종종 했으며, 이는 내가 그 일을 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큰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진료실에서도, 나의 말을 오해없이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경우에 한해 비슷한 말을 건네곤 했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가 나를 협박하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 놓인 것은 분명하지만, 당신에게는 여전히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세요.”
유행어로서의 누칼협은 냉소에 오염되었지만, 그것을 박박 씻어 때를 제거하고 나면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메시지만 남아 반짝인다. “나에게는 자율성(autonomy)이 있다.”
자기결정이론을 만든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과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는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그리고 관계성(social relatedness)이 충족되는지 여부는 내적동기와 행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자율성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한 또다른 사람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다.
그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는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잇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자기 자신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자율성을 간과하거나 축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어떤 길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무력감을 느낀다.
실제로 그만큼의 크기가 아닌 데도 그만큼의 크기를 지닌 위협으로 생각하며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여긴다. ‘모두들 이런 길을 가니까’, ‘이렇게 안 하면 나락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안 하면 사회에서 매장될지 모르니까’ 같은 감정에 젖어버린다.
그러나 자율성의 감각을 부정하는 순간 책임은 가벼워진다고 느낄지 모르나 진정한 행복감은 결국 저해된다. 내가 나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더 큰 분노와 공허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럴 때 “누가 나를 협박이라도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순간은, 자신에게 아예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자율성이 일깨워지는 순간이다.
“내가 이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말 나는 끝장이 나고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 되나?” “그게 아니라면 나는 이것을 지금 왜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이득과 손해를 보게 될까?” “그 손해는 정말 내가 감수하기 어려운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선택은 선명해진다.
부조리에 대한 이의제기를 무력화하고 무한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행위로서의 누칼협, 즉 나를 죽이기 위한 누칼협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율성을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누칼협, 즉 나를 살리기 위한 누칼협은 우리의 삶에 분명히 유효하고 가치있는 질문이 되어줄 것이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