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외국인 매도세에 맞서 TSMC 주식을 매수하는 대만판 '동학개미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TSMC 사옥 내부. |
[비즈니스포스트] 과거 한국 증시에 나타났던 ‘동학개미운동’과 비슷한 현상이 대만 증시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우려한 외국계 투자자들이 TSMC 주식을 매도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개인 소액주주들이 ‘애국 투자’를 앞세워 매수를 늘리며 주가 방어에 힘쓰고 있다.
블룸버그는 1일 “외국계 투자자들의 TSMC 주식 매도세가 7월에 역대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에 상장된 TSMC 주식의 해외 펀드 순매도 자금은 7월 한 달 동안 58억 달러(약 7조9천억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 집계 기준으로 2008년 이래 월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투자기관 올스프링글로벌은 블룸버그를 통해 “미국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TSMC 투자자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더 주목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을 전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갔다며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TSMC를 겨냥해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또 미국이 대만에 방위비 분담을 요구해야 한다며 군사적 지원을 축소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는 대만에서 첨단 반도체 공장을 모두 운영하는 TSMC에 중국의 침공 등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외국계 투자자의 매도세가 힘을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올스프링글로벌은 인공지능(AI) 관련주에 전 세계 투자자들의 낙관적 심리가 다소 약화하고 있는 점도 외국계 투자 자금이 빠져나간 원인일 수 있다고 바라봤다.
다만 외국계 투자자들이 TSMC 주식을 매도하는 동시에 대만의 개인 투자자들이 이를 매수하는 흐름도 뚜렷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별도 기사에서 “TSMC가 대만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국하고 있다”며 현재 TSMC 주식을 보유한 개인 투자자 수가 올해 들어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대만의 소액 주주들이 중국의 침공 위협에 대항하는 의미로 자국의 대표 기업인 TSMC 주식을 매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외국계 투자자 자금이 빠져나가는 반면 개인 투자자들의 TSMC 매수세는 점차 힘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TSMC는 종종 대만에서 ‘국가를 수호하는 신성한 산’을 의미하는 별칭으로 불린다. 그만큼 대만의 대표 기업으로 자리잡아 애국심을 상징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다수의 소액 투자자들이 “TSMC가 무너지면 대만이 무너진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다며 회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력하다고 전했다.
따라서 TSMC 주가가 떨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식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TSMC는 2022년 기준 대만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8%를 책임졌다. 관련 협력사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경제 전반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현재 TSMC 주가수익률(P/E)이 20배 안팎으로 역사상 평균인 18.8배에 가까워져 투자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개인 투자자들이 매수를 늘리는 배경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은 2020년 한국 증시에 나타났던 동학개미운동 사례와 비슷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2020년부터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외국계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빠르게 이탈하며 주가 하락을 이끌자 서둘러 주식 매수에 나서며 주가 방어에 힘썼다.
조선 후기 농민들이 주도해 외세에 맞서 싸웠던 동학농민운동과 소액 개인 투자자를 의미하는 개미를 합쳐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한때는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수 규모가 외국계 투자자 매도 규모와 맞먹는 수준에 가까워질 정도로 증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만도 지금과 같은 흐름이 이어져 개인 투자자들이 외국계 투자자의 이탈 영향을 효과적으로 만회한다면 증시 하락을 어느 정도 방어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현재 TSMC 주식의 외국계 투자자 보유 비중은 74%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국인 매도세가 가속화되면 개인 투자자들이 이를 모두 감당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을 28세의 교사라고 소개한 한 대만 주주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TSMC는 대만의 자존심이자 국가를 수호하는 신성한 산”이라며 “주가가 2천 대만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1일 대만 증시에서 TSMC 주가는 직전 거래일보다 2.78% 상승한 960대만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7월 중순에 기록했던 고점 대비 약 11% 하락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