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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공공기관 최장수 CEO 기록, 기획력 뛰어나 [2016년]
백설희 김디모데 기자 ssul20@businesspost.co.kr 2016-10-26 01: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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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재수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39년 공공기관 근무중 34년을 농업관련직에 있으면서 기획, 예산, 유통, 외교 등 농업에 관해 거의 모든 요직을 거친 농업정책 전문가다.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결의하는 등 박근혜 정권 말기 여야 정쟁의 촉발제가 됐다.

1957년 2월20일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났다.

행정고시로 공직에 들어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농업정책과장, 농산물유통국장, 주미 대사관 농무관,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농촌진흥청장과 농식품부 제1차관을 역임했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에 취임해 공공기관 최장수 CEO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2014년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을 1년 연임한 데 이어 2015년 재연임에 성공했다. 2007년 공공기관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래 최초로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한 최장수 CEO에 이름을 올렸다.

농식품부에서 유통 및 식품 관련 분야에 주로 근무하면서 수차례 걸쳐 농산물 유통개선대책을 수립·추진하면서 기획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파동과 한중 마늘협상, 광우병과 구제역 파동 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위기관리 대응능력과 전문성이 뛰어나고 현장감각도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여성인력 발탁과 여성 지원정책도 활발히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6 대한민국 여성인재경영대상’ 시상식에서 개인부문 대상을 받았다.

직원들 사이에서 겉보다는 속이 훨씬 부드럽다는 평판을 얻었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 사장 시절 언론에 노출을 꺼리지 않으며 홍보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 사장으로 농수산물 사이버거래소 거래액 2조 원을 달성하고 유통비용 절감 및 농산물 수급안정 등 주요사업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농수산부에서 29년간 농정기획, 농식품 유통, 식량정책, 농촌정책 등 농식품 분야 전반에 걸친 정책경험과 다양한 농정현안에 대한 업무경력을 쌓았고 정책 조정능력과 조직관리 능력을 발휘한 점을 인정받아 2010년 차관에 올랐다. 차관 시절 기관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일하는 문화 개선, 직원 사기진작을 통해 조직 활력을 재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관으로 재직하던 2011년 국회와 유관기관 등을 설득해 20년 가까이 끌어오던 농협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농협중앙회의 금융사업과 유통·판매사업을 분리해 두 개의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김재수는 정부 각 부처와 의원들을 만나 입법 과정을 독려했고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에는 현장설명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1년 수의과학검역원, 식물검역원, 수산물품질검역원을 통합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해 수입 농축산물 안전관리 및 가축질병 방역기관을 일원화했다. 농림정책 수요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여겨진다.

OECD 파견과 통상협력담당관, 국제협력과장, 주미 참사관 등으로 풍부한 통상과 국제협력 경험을 쌓았다. 2010년에는 경주에서 제30차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아태지역총회를 통해 식량안보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논의를 주도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7년 제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78년 경상북도 청도군 부군수실에서 행정사무관 시보로 공직에 첫 발을 디뎠다.

1979년 5월 국세청 부산지방국세청 서부산세무서 조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한달만에 병역 휴직하고 1981년 10월 세무공무원교육원 교수부로 복직했다.

1982년 8월 농수산부 농수산통계관실로 전입했다. 기획관리실 기획예산관리관실을 거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1988년 7월 농림수산부 농산물유통국 유통과로 복귀했다.

1990년 12월 서기관으로 승진해 농업구조정책과 농어촌복지담당관, 농업협력통상관실 통상협력1담당관, 경제협력개발기구 파견서기관, 기획관리실 행정관리담당관, 농산물유통국 시장과장, 국제농업국 국제협력과장을 차례로 지냈다.

1996년 7월 부이사관에 올랐고 1997년 농림부 유통정책국 유통정책과장, 1998년 식량정책국 식량정책과장, 1999년 농업정책국 농업정책과장을 역임했다.

1999년 농촌진흥청으로 자리를 옮겨 종자관리소 소장을 맡았으며 중앙공무원교육원에 파견근무를 나가기도 했다.

2000년 다시 농림부로 돌아온 뒤 기획관리실 농업정보통계관, 농산물유통국 국장으로 근무했다. 2002년 12월 이사관으로 승진했다.

2003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주미국대사관 참사관을 역임했다.

2007년 농림부 농업연수원 원장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장,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실 실장, 2009년 농촌진흥청 청장을 맡았다.

2010년 8월부터 2011년 7월까지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을 지냈다.

2011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구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을 지냈다.

2016년 9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됐다.

2011년 7월부터 2013년 6월까지 한국농수산대학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2012년 4월부터 2014년 4월까지 경상북도 농식품정책자문관을 역임했다. 2014년 1월부터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감사를 맡고 있다.

◆ 학력

1974년 경북고등학교를, 1978년 경북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8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6월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1월 중앙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상훈

1989년 11월 대통령표창과 1998년 12월 근정포장을 받았다.

2002년 11월 홍조근정훈장을, 2011년 12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6년 7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정부 3.0 핵심가치를 전사적으로 구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상훈

1989년 11월 대통령표창과 1998년 12월 근정포장을 받았다.

2002년 11월 홍조근정훈장을, 2011년 12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6년 7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정부 3.0 핵심가치를 전사적으로 구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어록


“쌀 문제에 대한 각계 관심이 높은 지금이 우리나라 양정 패러다임을 바꿀 중대한 시점이다. 쌀에 대한 획기적 발상전환을 통해 쌀이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겠다.” (2016/10/14, 쌀 수급안정 유관기관 토론회에서)

“농업의 영역과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농산물 생산 위주의 전통산업에서 벗어나 농업인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농업은 국민소득을 높이고 일자리도 만드는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2016/09/05,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취임사)

“국내 시장은 사실 포화상태다. 이란을 시작으로 신(新)실크로드를 통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는 것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사업전략이다. 앞으로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에 한국의 먹을거리와 문화 교류를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 음식문화 교류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건설과 에너지 등의 경제협력보다 더 오래가는 튼튼한 교류 기반이 될 것이다.” (2016/05/3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내가 맡은 기관에서 기관의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그 외에 현재 우리 국민들이 바라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나름대로 성과도 내고 고객들한테 감동을 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농업인이나 식품산업 종사자들 또 우리 국민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앞으로 더 보안해야 될 과제가 많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다.” (2016/05/21, 한 매체와 인터뷰 중 한국농수산식품공사 사장으로 부임한 후 성과에 대한 질문에)

“창조경제 기반 위에 우리 농수산 시장이 우뚝 서는 과정 중에는 IT를 접목한 기술도약이 반드시 필요한 명제다. 이를 기반으로 효율적 운영을 위한 과감한 창의와 혁신, 변화에 나서겠다. 올해는 FTA 시장개방, IT 정보기술의 발달, 소비자의 눈높이 증가 등 환경 변화에 발맞추는 세 가지 신사업전략을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2016/05/1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 농식품은 양적 물량 공세가 아니라 질적인 품질과 안전성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 ‘한국에서 생산하면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4계절이 뚜렷하고 산과 강과 들이 균형 잡힌 나라에서 나는 자생식품이 몸에 좋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기능성을 강조해야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양적 물량과 가격 경쟁력이 기본적으로 갖기 어려운 구조에서는 품질경쟁력 밖에 답이 없다. 지금 우리 농촌업계에 고질적인 칸막이를 무너뜨리고 기능성과 건강을 보완하는 연구와 협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2016/04/2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에이토랑(aTorang)을 지난해 말 만들었다. 서울 aT센터 내 40평 빈공간을 젊은이들에게 무료로 빌려줬다. 임대료 6000만원을 포기했다.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이 직접 개발한 메뉴를 조리부터 서빙까지 해보며 창업 경험을 미리 해보는 것이다. 임차료 부담 없이 공과금과 재료비만 부담하면 된다." (2016/03/1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승진이 늦어 농림부에서 과장만 아홉 번 맡으면서 실무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고, 해외에서 농업 관련 다양한 협상을 주도하면서 국제 농업의 큰 흐름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2016/03/1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FTA를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된다. FTA가 체결되면 값싼 농산물이 많이 수입돼 국내 농가들이 경쟁력을 잃어 망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버려야 한다. 과거 한-칠레 FTA 때 포도농가들이 다 망할 것이라고 반대했었지만 현재 국내 포도농가들의 수출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품질을 개량하고 경쟁력을 높인 덕분이다. 우리 농업도 생산, 가공, 유통 등을 통해 수출주도형 농업정책으로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2012/02/2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FTA체결에 따라 농식품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며)

“농식품 수출 100억달러 시대를 주도하겠다. 농수산식품기업지원센터를 통해 식품산업을 육성하고, 주요 농수산물 수급 안정 기능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번 출범을 '제2의 창업'이라 여기고 더욱 힘차게 도약해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공기업으로 자리매김 하겠다.” (2012/01/31, 공사명칭 변경과 기능 확대에 따른 출범식 및 비전 선포식에서)

“임기 3년 동안 aT가 물가조정 역할을 강화하고 농수산물 유통관리 분야에서 국민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공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와 생산자의 중간단계에 있는 본사가 물가조정 역할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국민의 먹거리 전체에 대한 유통망 확충과 함께 해외진출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2011/11/16,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농산물 유통개선 및 가격안정의 필요성이 나날이 증대되고 있고 FTA, DDA 등 세계 농업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aT의 사업과 기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무관 시절부터 aT의 업무를 담당해온 경험을 살려 애정과 사명감을 갖고 aT의 기능을 발전시켜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기업이 되도록 하겠다.” (2011/10/23,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에 임명된 뒤)

“청와대, 총리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여러 부처에서 농식품부 법을 가지고 이렇게 많은 회의를 진행한 건 30년 넘게 공직생활하면서 처음이다. 지역 농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꼭 통과시켜야 겠다는 판단을 내린 여야 의원들 덕분에 큰 성과를 거두게 됐다.” (2011/03/11, 농협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 평가

2014년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을 1년 연임한 데 이어 2015년 재연임에 성공했다. 2007년 공공기관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래 최초로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한 최장수 CEO에 이름을 올렸다.

농식품부에서 유통 및 식품 관련 분야에 주로 근무하면서 수차례 걸쳐 농산물 유통개선대책을 수립·추진하면서 기획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파동과 한중 마늘협상, 광우병과 구제역 파동 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위기관리 대응능력과 전문성이 뛰어나고 현장감각도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여성인력 발탁과 여성 지원정책도 활발히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6 대한민국 여성인재경영대상’ 시상식에서 개인부문 대상을 받았다.

직원들 사이에서 겉보다는 속이 훨씬 부드럽다는 평판을 얻었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 사장 시절 언론에 노출을 꺼리지 않으며 홍보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 사장으로 농수산물 사이버거래소 거래액 2조 원을 달성하고 유통비용 절감 및 농산물 수급안정 등 주요사업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농수산부에서 29년간 농정기획, 농식품 유통, 식량정책, 농촌정책 등 농식품 분야 전반에 걸친 정책경험과 다양한 농정현안에 대한 업무경력을 쌓았고 정책 조정능력과 조직관리 능력을 발휘한 점을 인정받아 2010년 차관에 올랐다. 차관 시절 기관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일하는 문화 개선, 직원 사기진작을 통해 조직 활력을 재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관으로 재직하던 2011년 국회와 유관기관 등을 설득해 20년 가까이 끌어오던 농협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농협중앙회의 금융사업과 유통·판매사업을 분리해 두 개의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김재수는 정부 각 부처와 의원들을 만나 입법 과정을 독려했고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에는 현장설명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1년 수의과학검역원, 식물검역원, 수산물품질검역원을 통합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해 수입 농축산물 안전관리 및 가축질병 방역기관을 일원화했다. 농림정책 수요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여겨진다.

OECD 파견과 통상협력담당관, 국제협력과장, 주미 참사관 등으로 풍부한 통상과 국제협력 경험을 쌓았다. 2010년에는 경주에서 제30차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아태지역총회를 통해 식량안보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논의를 주도했다.

◆ 기타

'농업의 대반격: 새로운 농업이 시작되다’(2014), ‘식품산업의 현재와 미래’(2007), ‘한국음식 세계인의 식탁으로’(2006) 등의 책을 냈고 다수의 학술논문도 발표했다.

1979년 6월부터 1981년 9월까지 육군병으로 복무하고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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