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SK바이오사이언스에 이어 SK바이오팜도 신약 개발을 이어가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면서 SK그룹에서 바이오사업이 미래 먹거리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계열사 전반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있는 것과 결이 다른 행보다.
▲ SK바이오팜이 홍콩 방사성치료제 회사와 지난해 전체 매출의 3배 규모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이사 사장.
최 회장이 바이오사업과 관련해 질적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강조한 만큼 그 존재감이 SK바이오팜과 같은 바이오 계열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SK바이오팜에 따르면 이날 홍콩 방사성치료제 회사인 풀라이프테크놀로지스(풀라이프)와 신약 후보물질 도입을 위해 체결한 약 7291억 원 규모의 계약은 SK바이오팜이 2023년 별도기준으로 낸 매출 3107억 원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단계별 수수료인 마일스톤을 제외한 돌려받지 못하는 계약금만 약 118억 원짜리인 이번 계약은 SK바이오팜에게 의미가 남다른 사업이다.
SK바이오팜이 1분기 말 별도기준으로 보유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1701억 원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의 약 7%를 단번에 지불한 셈이다.
SK바이오팜이 보유하고 있는 1분기 말 별도기준 유동자산 4467억 원을 모두 투입해도 전체 계약 규모를 크게 밑돈다. 기술 개발 단계에 따라 단계별 수수료를 지급한다는 조건이 달려있긴 하지만 향후 그룹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바이오팜은 최근에야 분기 단위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지난해까지 상황이 좋지 않았다.
SK바이오팜은 2022년 별도기준으로 영업손실 1456억 원을 낸 뒤 2023년에도 영업손실 181억 원을 거두며 2년 연속 영업손실을 봤다.
올해 1분기에는 그나마 별도기준으로 영업이익 249억 원을 거두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올해 연간 흑자 전환을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SK그룹이 현재 계열사 전방위적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SK바이오팜이나 SK바이오사이언스와 같은 바이오 계열사를 밀어주는 투자 행보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6월27일 독일 클로케그룹 자회사인 IDT바이오로지카 지분 60%를 3390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IDT바이오로지카는 백신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및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그룹 차원에서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거나 알짜 공장을 매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수합병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SK그룹은 사업 리밸런싱(구조조정) 일환으로 사업 영역이 비슷한 에너지 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E&S의 합병을 논의하거나 각 계열사별로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이오 계열사라고 해서 구조조정의 완전한 무풍지대는 아니다. SK팜테코는 미국 원료의약품 공장의 매각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SK팜테코는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SK그룹의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다른 산업보다도 훨씬 위험성이 높은 바이오 계열사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은 SK그룹 차원의 투자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미국 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0년대 들어 신약 개발 성공률은 7.9%에 그친다. 이번에 SK바이오팜이 도입한 기술은 방사성의약품(RPT) 분야의 차세대 항암제로 기대감은 높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이 개척단계인 만큼 상용화까지는 만만치 않은 기술이라 수년내 수익원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보기 쉽지 않다.
▲ SK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독일 기업의 지분 60%를 3390억 원에 인수했다.
방사성의약품은 ADC(약물-항체 의약품)와 비슷하게 약물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붙여 환자 몸속에 투여하면 암세포에 도달한 동위원소가 방사선을 내보내 암 조직을 파괴하는 기전을 보유하고 있다.
약물-항체 의약품이 약물과 항체를 링커로 결합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반면 방사성의약품은 악티늄 등 방사성 물질과 이를 감싸는 킬레이터가 저분자화합물과 링커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를 받은 방사성의약품은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와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루타테라’ 등 단 2종에 그친다.
그럼에도 SK그룹이 바이오 계열사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뜻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최 회장은 6월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그린‧화학‧바이오 사업 부문은 시장 변화와 기술 경쟁력 등을 면밀히 따져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내실 경영을 통해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구조조정을 의미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보다 궁극적으로 질적 성장에 방점을 찍은 만큼 SK그룹의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해 바이오 계열사에게 더욱 힘을 싣는 행보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방사성의약품 치료제 분야 진출을 선언한 이후 가장 구체적인 성과가 이번 라이선스 계약”이라며 “앞으로 방사성의약품 사업 전반(Full Value Chain)에 대한 보다 구체화된 사업계획을 올해 안에 공개하고 임상 개발 및 사업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