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쓰나미] 한국 경제 '착시 주의보', 노출되는 한계 신호에 재계 리밸런싱 본격화
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4-07-08 15: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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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고금리 고환율. 이른바 '3고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수출기업은 물론 내수기업까지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산업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무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비주력사업을 매각하고, 인력을 전환 배치하는 등 대대적 구조조정을 통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기존 자원투입 중심 산업에서 생산성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며 '역동경제 로드맵'을 공개하고 기업들의 체질개선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업재편으로 탈출구를 찾으려는 기업들의 대응 상황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1. 한국 경제 '착시 주의보', 노출되는 한계 신호에 재계 리밸런싱 본격화
2. 'AI발' 새 흐름에 산업은행 커지는 역할론, 강석훈 선택과 집중 고심 깊다
3. 신사업 투자 갈 길 바쁜 신동빈, 롯데그룹 본진 구조조정으로 물 샐 틈 막는다
4. 하반기 본격화하는 부동산PF 구조조정, 커지는 건설업계 긴장감
5. 롯데케미칼 전지소재·수소에너지 중심 사업전환 대수술, 이훈기 구조적 석화불황 속 매스 들어
6. 저축은행업계 허리띠 졸라매도 구조조정 본격화? 인수합병 주인 찾기도 난망
7. 신세계그룹 인적쇄신 이어 구조조정도 꺼낼까, 정용진의 선택에 시선 집중
8. KT 김영섭 7월 구조조정 미디어에 방점, 콘텐츠 부담 해결될까
9. 공기업 구조조정은 후퇴 중? 에너지 위기 부동산 정책사업에 공공기관 부채는 증가
10. 뉴 엔씨소프트 핵심경쟁력에 집중, 박병무 사람 조직 덜어내기 속도
11. 빅테크 인공지능 ‘열풍’의 이면, 대규모 구조조정 ‘한파’는 끝나지 않았다
▲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한국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기업들은 2024년 하반기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경제의 위기감이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부가 기업 재도약을 위한 구조개혁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현재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기존 자원 투입 중심에서 생산성 중심 성장구조로 전환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업들도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며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축소하고, 성장사업에 투자를 확대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8일 정치권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지난 7월3일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며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10가지 세부과제 제시하면서 생산성 높은 경제시스템 구축하기 위한 정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노동·자본 등 자원 투입 중심의 성장구조였으나, 인구감소 가속화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990년대 평균 7%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던 우리나라는 올해 성장률이 2.6%로 떨어지고 2030년대가 되면 1.4%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상반기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9.1% 증가한 3348억 달러로, 2022년 상반기 3505억 달러에 이후 역대 반기 2위 실적을 기록했다. 이를 일각에서는 경제회복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주요 수출 15개 품목 중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품목 수출은 전월 대비 감소하며 반도체와 자동차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석유화학, 철강, 섬유, 가전 등 대부분의 주력 산업은 여전히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국내 산업구조를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양자 등 성장잠재력이 높고, 다른 산업과 융합을 통해 생산성을 혁신할 수 있는 분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18조1천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AI 기반 바이오혁신 전략’ 등 바이오산업 육성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에는 인력 양성·연구 인프라 확충 위한 퀀텀(양자) 플랫폼도 구축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역동경제 로드맵을 공개하며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구조개혁에 착수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산업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던 SK그룹은 AI과 반도체에 집중하는 대신 바이오·에너지·화학 분야에서 군살을 빼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SK그룹의 체질을 개선하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약‧바이오 계열사들을 교통정리하는 것과 함께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SK온·SK엔무브 합병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AI와 반도체에는 2026년까지 8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6월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지금 미국에선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며 그룹의 역량을 AI와 반도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삼성과 LG도 경영효율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LG그룹은 LG디스플레이 등 적자를 내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인력감축을 포함한 사업재편을 시작했다. 구미·파주 사업장에서 ‘만 28세 이상 및 근속 3년 이상’ 생산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접수를 받고 있으며, 올해 안에는 중국 광저우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매각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업체들이 장악한 LCD에서 올레드(OLED)로의 체질개선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통신장비 사업을 하는 네트워크사업부의 인력 700여 명을 다른 사업부로 전환 배치하고, 설비기술연구소의 개발 인력 상당수를 반도체연구소와 평택 메모리제조기술센터(MTC)로 이동시키며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근 반도체와 모바일, 가전 사업에서 모두 선두지위를 지키는 데 어려움이 커지자, 인력과 조직 개편을 통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하반기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롯데케미칼 울산 화학공장. <롯데케미칼>
특히 중국업체와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석유화학 기업은 하반기 사업재편을 통한 기존 수익구조 탈피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2차전지, 태양광 같은 비석유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장을 시도하고 있으며, 첨단소재와 정밀화학 등의 신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김서연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지난 5월 '2024 크레딧 세미나'에서 SK, LG, 롯데, 한화 등 주요그룹의 신용 리스크를 진단하며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일본과 유사한 방향인 유휴설비 통합, 매각 등으로 구조 재편될 것”이라며 “다만 신규 사업의 이익창출은 중단기적으로 제한적이어서, 과중한 설비투자 부담이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부진 장기화를 맞이한 CJ나 신세계그룹도 체질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윤성국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반도체 수출이 개선되면 실물경기는 회복되는 흐름이지만, 실질임금 하락, 가계부채 누중 등으로 민간소비 부진은 장기화될 것”이라며 “소비위축, 쿠팡의 공격적 투자 기조, C커머스(알리, 테무)의 시장 잠식 등 모객경쟁 심화 추이를 감안하면 부정적 환경 아래 내수기업의 투자부담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