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화는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을 지냈다. 시스템 경영을 강조하는 재무 전문가다.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격인 경영지원실장을 맡아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53년 2월26일 경기도 수원 출생이다. 성균관대 통계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전자에서 주로 가전분야에 근무하다가 경영지원실 재경팀 경영지원그룹장을 맡으며 재무를 담당하게 됐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경원지원팀장 전무를 거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감사팀장 사장을 맡았다가 최고재무책임자(CFO) 격인 경영지원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그룹 계열회사인 제일모직 패션부문장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한 뒤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가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삼성에버랜드로 이동했다.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을 맡다가 2017년 연말인사에서 삼성전자의 세대교체 흐름에 맞춰 다른 60대 사장들과 함께 물러났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1988년 이후 계속 재무와 관리 부분에서 경험을 쌓은 재무통이다. IMF시절 사업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을 담당해 위기극복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주화는 이를 인정받아 2000년 상무에서 2002년 전무, 2004년 부사장까지 고속 승진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진 뒤 경영지원총괄본부가 해체되면서 2009년 1월 사장급인 감사팀장으로 승진해 자리를 옮겼는데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고강도의 내부감사를 벌였다.
2009년 12월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경영지원실장에 올라 삼성전자의 재무를 '초일류'로 만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관리의 삼성’에서도 특히 시스템 경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제일모직 사장 취임 뒤 첫 신년사에서 “시스템이 견고한 회사는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다”며 “일하는 수준과 프로세스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앞선 시스템을 갖춘 글로벌 회사로 도약하자”고 말했다.
원칙주의자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타입으로 알려졌다. 과거 SCM 구축 뒤 이를 지키지 않은 임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감사팀장에 오른 것도 룰을 중요시하는 성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매일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운동을 할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직원들과 등산도 즐겨 다닌다.
과거 CFO 시절 언론에 잘 나서지 않고 입이 무거워 ‘재봉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삼성 오너 일가의 측근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과 보조를 맞춘 경영관리팀 출신으로 이건희 회장이 2008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2009년 감사팀장으로 사내이사에 올랐다.
2009년 이재용 부사장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승진으로 최지성 사장(CEO)와 함께 CFO로서 손발을 맞췄다.
2012년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로 이동해 이서현 부사장을 보좌했다. 윤주화의 제일모직 이동이 이서현 부사장의 입지와 경영능력을 다져주기 위한 것과 동시에 제일모직 경영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8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1988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재경그룹장을 맡았다.
2002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경영지원팀장 전무, 2004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9년 1월 삼성전자 감사팀장(사장)에 올랐다.
2009년 12월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이 됐다.
2012년 제일모직 패션부문장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윤주화는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전무로 근무하던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공급망관리(SCM) 시스템을 구축했다. 통계학과 출신으로 숫자에 밝은 데다 자재관리 등 경영지원 업무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간 삼성전자 생산과 영업부문 체질을 개선하는 데 주력한 공을 인정받아 2004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부사장 시절 3명뿐인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기도 했다.
제일모직으로 자리를 옮긴 뒤 제일모직에도 SCM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춘하/추동 연 2회 상품을 기획한 뒤 생산하던 구조에서 2주에 한 번씩 상품을 기획해 내놓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또 ‘데레쿠니’ ‘후부’ 등 부진한 브랜드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제일모직에서 패션사업부 분할을 주도했다. 삼성에버랜드로 옮긴 뒤에도 2014년 상장작업과 2015년 삼성물산과 합병작업을 주도하면서 그룹 계열사 재편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삼성물산 합병 후 패션부문 사장에 올랐다.
2015년 12월1일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7년 연말인사에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 학력
1971년 수원고등학교(20회)를 졸업했다.
1979년 성균관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10년 IMF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사업구조 조정, 재무구조 개선 등으로 경영위기 돌파, 견실경영 정착, 세계 최고수준의 글로벌 ERP(전자적자원관리) 시스템 도입 등으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 상훈
2010년 IMF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사업구조 조정, 재무구조 개선 등으로 경영위기 돌파, 견실경영 정착, 세계 최고수준의 글로벌 ERP(전자적자원관리) 시스템 도입 등으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어록
“태풍 ‘차바’로 피해를 본 이재민들에게 삼성의 정성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16/10/12, 태풍 ‘차바’ 피해 복구를 위한 성금 80억 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탁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 (2016/06/01,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합병 반대 주주들에게 제시된 주식매수 청구가격이 너무 낮다는 법원 판결에 대해)
패션업체의 경우 생산업체들의 생산거점이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공급리스크가 있다. 행사 시기가 정해지면 이에 맞춰서 좀 더 파격적인 할인이나 행사에 적절한 상품 출시를 할 수 있을 것 (2015/10/04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업계 간담회에서)
“쇼핑이 기부가 되는 차별화된 생각으로 하티스트가 탄생했다. 이번 1주년을 계기로 신진디자이너, 이웃, 고객은 물론 임직원 모두가 즐겁게 나눌 수 있는 CSR(기업사회적책임) 대표 사례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2015/09/15, CSR매장인 하티스트 하우스의 1주년을 맞아)
“삼성은 앞으로 웨어러블 시장에서 글로벌 리더로 도약할 것이다.” (2015/09/05,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IFA) 2015에 참가해)
“단기적으로 여러 요인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갈 것이다.” (2015/07/22,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가 두 회사의 합병안 통과 이후 급락하자)
“주주들이 원하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해서 회사를 잘 만들어 나가겠다. 회사가치도 많이 올려서 주주 여러분께 보답하겠다.” (2015/07/17, 제일모직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된 후)
“합병법인은 핵심경쟁력 결합과 시너지에 따른 성장 기대감과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로서 기존에 보유 중인 글로벌 사업역량과 다각화된 사업 플랫폼을 기반으로 헬스케어, 에너지 등 미래사업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2015/06/30, 제일모직 긴급 기업설명회)
“합병과 관련해 경영진들은 회사와 주주들이 득이 되는 방향으로 경영하고 있다. 한 증권사가 합병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자 주가가 내려갔다. 무엇이 정답이고 대세인지, 경영진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시장을 보면 다 나온다.” (2015/06/17, 시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지지한다며)
“이번 합병은 회사의 핵심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해 글로벌 리딩 컴퍼니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인간의 삶 전반에 걸친 토탈 프리미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 (2015/05/26,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발표하며)
“제일모직 상장은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으로서 패션, 식음료 서비스, 건설, 레저분야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고객에게 최상의 라이프 스타일 솔루션을 제공하겠다.” (2014/12/18, 제일모직 유가증권 상장기념식)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고 패션 트렌드의 변화는 고객의 마음속에 있다. 작은 배려가 고객감동의 시작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상품기획·소싱·제조·유통·판매에까지 현장의 상황과 고객의 욕구가 반영돼야 한다.” (2014/02/06, 2014년 우수매장 대표자 신년 교류회)
“CFO 역할은 과거와 다른 차원의 패러다임으로 진화할 것이다. 과거엔 회계와 관리 등 그야말로 순수 재무적 업무를 총괄하는 것이 CFO의 주요 임무였지만 이제 회사 전체의 전략적인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위상이 바뀌고 있다. 새로운 CFO 임무에 회사의 나아갈 방향 모색, 기업 인수합병(M&A) 등 신성장 전략 수립이 포함된다.” (2011/01/10, CFO 역할에 대해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의료기기는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제품이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절대 품질이다. 10년 뒤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으로 성장시키겠다.” (2010/09/01, 의료기기 제조사 레이를 인수하면서)
“세계 해외법인에 이미 구축된 ERP시스템을 인터넷 플랫폼 기반의 단일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WTN을 통해 삼성전자는 e비즈니스에 대응하는 체제로 전환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2002/07/25, 삼성전자 거래자동화시스템 WTN을 구축 완료한 뒤)
◆ 평가
1988년 이후 계속 재무와 관리 부분에서 경험을 쌓은 재무통이다. IMF시절 사업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을 담당해 위기극복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주화는 이를 인정받아 2000년 상무에서 2002년 전무, 2004년 부사장까지 고속 승진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진 뒤 경영지원총괄본부가 해체되면서 2009년 1월 사장급인 감사팀장으로 승진해 자리를 옮겼는데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고강도의 내부감사를 벌였다.
2009년 12월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경영지원실장에 올라 삼성전자의 재무를 '초일류'로 만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관리의 삼성’에서도 특히 시스템 경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제일모직 사장 취임 뒤 첫 신년사에서 “시스템이 견고한 회사는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다”며 “일하는 수준과 프로세스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앞선 시스템을 갖춘 글로벌 회사로 도약하자”고 말했다.
원칙주의자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타입으로 알려졌다. 과거 SCM 구축 뒤 이를 지키지 않은 임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감사팀장에 오른 것도 룰을 중요시하는 성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매일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운동을 할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직원들과 등산도 즐겨 다닌다.
과거 CFO 시절 언론에 잘 나서지 않고 입이 무거워 ‘재봉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삼성 오너 일가의 측근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과 보조를 맞춘 경영관리팀 출신으로 이건희 회장이 2008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2009년 감사팀장으로 사내이사에 올랐다.
2009년 이재용 부사장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승진으로 최지성 사장(CEO)와 함께 CFO로서 손발을 맞췄다.
2012년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로 이동해 이서현 부사장을 보좌했다. 윤주화의 제일모직 이동이 이서현 부사장의 입지와 경영능력을 다져주기 위한 것과 동시에 제일모직 경영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 기타
2012년 12월7일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지인들에게 감사편지를 보내 축의금을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고 알렸다.
감사편지에서 “축원에 감사하며 건강하고 모든 일이 번창하기를 기원한다”며 “마음을 담아주신 축의금은 귀하의 존함으로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에 기부하였습니다”고 밝혔다.
최신원 SKC 회장,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과 수원고 동문이다.
2014년 보수로 16억2천만 원을 받았다. 이는 유통·식품업계 전문경영인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이었다.
2015년 보수로 20억6800만 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6억2700만 원은 퇴직 소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