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속재산분할과 관련한 분쟁은 해결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면에 상속세 신고·납부 기한은 6개월에서 9개월로 비교적 짧다. 국세청은 상속인 개개인의 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 상속인들 사이에 상속재산분할 협의가 진행되든 법정 공방이 진행되든 상관 없이 기간 내에 상속세의 신고와 납부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속인들에게 제재를 가한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상속재산분할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된다. 상속재산분할이 법원에서 진행된다면 그 기간은 다른 종류의 사건들보다 상당히 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금융 거래 내역을 비롯한 각종 재산을 조회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조회된 사실을 정리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송 당사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기간은 늘어난다. 필자가 최근에 진행했던 상속재산분할 사건은 종결될 때까지 3년이 걸렸다.
문제는 상속세의 신고 기간이다.
기본적으로 피상속인이 거주자인지 비거주자인지 등에 따라 6개월에서 9개월 내에는 상속세를 신고하고 납부해야 한다. 필자가 상속과 관련한 상담을 할 때 상속세 신고 이야기를 하면 의뢰인이 “무슨 신고요? 세금은 나라가 부과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세금을 국가에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세금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상속세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상속인이 자기가 받은 상속재산과 관련해서 국가에 내야 할 상속세를 계산해서 국세청에 신고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그리고 국세청은 상속인이 신고한 자료를 보고 이것이 합당한지 아닌지를 심사하게 된다. 신고된 상속세가 너무 적다고 판단하면 추가로 상속세를 부과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상속재산분할과 관련한 분쟁은 해결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면에 상속세 신고·납부 기한은 6개월에서 9개월로 비교적 짧다.
국세청은 상속인 개개인의 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 상속인들 사이에 상속재산분할 협의가 진행되든 법정 공방이 진행되든 상관 없이 기간 내에 상속세의 신고와 납부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속인들에게 제재를 가한다.
국세청의 입장으로선 어쩔 수 없다. 다른 경우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상속세를 늦게 납부하기 위해서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서 일률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인들의 상속세 연대납부 의무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속인들은 상속세를 연대 납세할 의무가 있는데 연대채무란 “수인의 채무자가 각각 독립해 채무 전부를 변제할 의무를 가지며 그 가운데 채무자 1인이 채무의 이행을 하면 다른 채무자의 채무도 소멸하는 다수당사자의 채무”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여러 명의 채무자가 함께 빚을 졌을 때 각자가 빚 전체를 놓고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한다. 가령 친한 친구 셋이 1천만 원을 빌렸다면 이 경우 세 친구 각자는 1천만 원 전부에 대해 갚을 의무가 있다.
혼자서 1천만 원 다 갚아도 되고 셋이 나눠서 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누군가 1천만 원을 다 갚는 순간 나머지 친구들은 더 이상 빚을 갚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연대채무란 여러 채무자가 마치 한 팀처럼 똘똘 뭉쳐서 빚을 진 것과 같다. 누가 대신 빚을 갚아주면 모두가 빚에서 해방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모두가 빚을 떠안게 된다.
다만 이 사례에서 한 친구가 1천만 원 전액을 혼자 갚았다면 나머지 친구들에게 각자 부담해야 할 금액을 요구할 수 있는 구상권이 발생한다.
상속세가 바로 이런 연대납부 구조를 띠고 있다. 각 상속인은 세법에 따라 부과된 상속세를 놓고 각자가 받았거나 받을 재산(=자산총액-부채총액-상속세액)을 한도로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상속세 납세의무자 등 일부가 상속세를 납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다른 상속세 납부 의무자가 미납된 상속세를 연대납부할 책임을 지게 된다.
문제는 우리 세법이 피상속인이 사망할 때 존재했던 재산 외에도 일정 기간에 일어난 사전증여나 사용처를 알 수 없는 자금 등에 상속세를 부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만약 한 공동상속인이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미리 물려받아 탕진한 뒤 상속세마저 못 낸다면 남은 상속인이 그 세금을 떠안아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예전에 필자가 경험했던 사례를 들어보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상속재산분할을 법정에서 다투게 되었다. 아버지에게는 3남매가 있었는데 막내아들은 이미 사망해서 상속인으로는 부인과 손자 2명이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막내아들의 부인과 손자 2명이 이미 사망한 막내아들 대신 상속인이 되는데 당시에 손자들은 이제 막 취업하고 결혼해서 사회생활을 참이었다.
소송이 1년을 넘게 진행되고 있을 때쯤 국세청에서는 이 손자들의 급여에 체납처분을 진행했다. 이는 손자들이 상속세를 연대 납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손자들로서는 억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들은 아직 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는데도 갑작스럽게 급여가 압류된 것이다.
가정생활에 큰 타격을 입었고 회사에 해명도 쉽지 않았다. 상속세 연대납부 책임을 면할 방법도 없었다. 다만 이 사건은 오히려 이런 압박 때문에 상속재산분할이 극적으로 타결되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속세 연대납부 의무를 폐지하는 것이 옳을까?
일각에서는 사전증여 재산 합산 과세 시 수증자 과세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거나 공동상속인 사이 재산 분할 비율에 따라 세금 부담을 안분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증자 과세 원칙을 도입하면 사전증여를 받은 자가 그에 따른 세금을 직접 부담하게 되므로 나머지 상속인의 부당한 세 부담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속재산 분할 비율에 따른 세금 안분은 상속인들 사이 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개선안들이 실제 도입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상속의 경우 너무나 많은 편법이 난무하고 있어서 특별한 방지 장치 없이 연대납세 의무를 폐지하면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수증자 과세나 세금 안분 제도를 시행하려면 관련 세법 개정이 필요한데 이해관계자들의 반발과 조세 행정상 혼란 등 부작용도 예상된다.
무엇보다 상속세 제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폭넓은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제도 변화로 인한 혜택과 부담이 특정 계층에 편중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상속세 개편 논의가 활발하다. 오랫동안 있었던 제도인 만큼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일이 절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세제 개편 노력과 국민의 상속세에 대한 이해도 제고, 전문가 집단의 지속적 문제 제기 등이 선행된다면 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상속세 제도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야말로 고질적인 상속세 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