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간 협상의 ‘마지막 회의’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한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세계 각 국의 목표는 플라스틱 사용 규제와 관련해 2024년 하반기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은 식음료는 물론 화학, 건설, 섬유, 자동차, 전기전자 등 많은 업종에 걸쳐 사용되고 있어 국제규제가 시작되면 거의 모든 산업이 규제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플라스틱 생산이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4%를 차지하며 향후 기후변화 대응 비용의 13%나 점유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플라스틱 줄이기가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한 요소가 됐습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현실화하고 있는 플라스틱 규제에 대한 기업의 대응 방안 등을 모색하는 ‘2024 기후경쟁력포럼’(https://bpforum.net)을 개최합니다. 환경부와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후원하는 이번 포럼은 ‘국제플라스틱협약이 온다, 순환경제를 준비하라’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펼쳐집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 김상협 2050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 데이빗 앳킨 유엔 책임투자원칙(PRI) 대표, 김소희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자,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 서왕진 조국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자 등 22대 국회 기후변화 전문 의원 3인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 해외 주요인사들이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견해를 전달합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포럼 개최에 앞서 '플라스틱 순환경제'가 왜 필요한지, 세계 각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우리 정부의 정책 추진 계획, 기업의 규제 대응책 등에 대한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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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 플라스틱 사용 및 재활용 규제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국제 플라스틱 규제협약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은 협약 합의에 앞서 자국 내 플라스틱 규제를 먼저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집행위원회(EC)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 전략을 내세워 규제 마련에 나서는 한편 미국은 각 주로 대표되는 지방 정부들이 규제 마련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도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규제를 확대하고 있어, 사실상 세계 주요국이 모두 플라스틱 줄이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내놓은 정책의 중심이 되는 것은 플라스틱 생산자에 폐기물과 관련된 책임을 묻는 '생산자 책임 제도'(EPR)다.
27일 외신과 각국 정부 보도자료를 종합하면 주요국은 모두 플라스틱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25일(현지시각) EU는 유럽의회에서 일부 일회용품 사용을 2030년부터 전면 금지하는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제'(PPWR)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포함되는 폐기물은 과일용 플라스틱 포장, 숙소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편의용품 용기 등 각종 플라스틱 제품이다.
추가로 EU 회원국들은 2030년까지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 수거율도 90%까지 올려야 한다.
▲ 지난달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4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회장 앞에서 진행된 플라스틱 폐기물 관련 퍼포먼스 모습. <연합뉴스> |
유럽으로 수출되는 플라스틱 제품에도 '거울 조항'(mirror clause)이 적용돼 EU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한 제품마저도 수입이 금지된다.
앞서 2021년 1월 EU는 플라스틱 생산자에 직접 책임을 묻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플라스틱세'를 도입하기도 했다. 관련 법안에 따르면 EU 회원국 정부는 기업들이 신고한 내용에 따라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1kg당 80유로센트(약 1186원)를 세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국가별로 세율은 자국 사정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한 예로 스페인은 기준치보다 낮은 45유로센트를 매기고 있으나, 플라스틱 재활용 규제를 위반하면 최대 1.5배 가산금을 부과한다.
EU의 행정부 격인 EC가 규제를 주도하는 유럽과 달리 미국은 지방정부에 해당하는 주 정부들을 중심으로 규제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2024년 현재 미국 모든 주 가운데 가장 강력한 규제를 도입한 것은 매사추세츠주다. 메사추세츠주 의회는 지난해 3월 용량 21온스(약 600밀리리터) 이하 일회용 플라스틱병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달 유타주는 미국 주 가운데 22번째로 ‘고급 재활용 법안'(Advanced Recycling Legislation)을 채택했다.
고급 재활용 법안이란 화학적 재활용 방식을 적극 도입해 기존 재활용이 어려웠던 필름과 일회용 비닐 등까지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이다.
유타에 이어 인디애나주, 캔자스주도 지난해 같은 법안을 채택했다. 올해 3월에 와이오밍주도 동참하면서 과반이 넘는 미국 주들이 고급 재활용 법을 시행하게 됐다.
또 생산자 책임제도 도입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워싱턴주에서는 플라스틱 생산 기업이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부서를 의무적으로 둬야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같은 달 뉴욕주에서는 케이시 호철 주지사가 '폐기물 감축과 재활용 인프라 구축법'(WRRIA)을 제안했다.
2026년 1월 시행을 목표로 하는 이 법안에 따르면 플라스틱 생산과 유통 기업들에 기업 규모에 따라 최소 500달러에서 최대 2만5천 달러(약 3406만 원)까지 생산 면허 발급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또 10년 내 강성 플라스틱(rigid plastic)의 50%, 연성 플라스틱(non-rigid plastic)을 40% 재활용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직접 시행하기보다는 주 정부의 플라스틱 재활용 정책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 3월 미 의회는 '재활용 인프라와 접근성 법'(RIAA)과 '재활용 및 퇴비화 책임법'(RCAA)을 각각 하위 법안으로 하는 '재활용 및 퇴비화 법안'(RCL)을 통과시켰다.
RIAA는 반경 75마일 내 재활용 센터가 없는 지역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하는 법으로, 재활용 센터 건설에 5천만~1억5천만 달러(약 2049억 원)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RCAA는 생분해 플라스틱 활성화를 지원하는 법으로, 연방정부가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것을 명시했다. 연방기관 가운데 환경보호청(EPA)이 이를 주도하며, 콜로라도주는 이미 퇴비화가 가능한 플라스틱 제품 사용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환경보호청은 최종적으로 RIAA와 RCAA를 통해 미국 전체의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 수준을 현재 32.1%에서 2030년까지 50%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 올해 3월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톰 카퍼 미국 상원의원이 '플라스틱 재활용 및 퇴비화 법안'(RCL) 통과를 축하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카퍼 의원은 이 법안을 공동발의한 의원 3인 가운데 한 명이다. <미국 상원 환경 및 공공정책 위원회 공식 채널> |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에선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에 반대한 중국도 자국 내에서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일 목적으로 규제 시행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1년부터 강화된 플라스틱 금지령에 따라 일회용 비닐, 플라스틱 빨대, 식기 등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을 사용한 제품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내년부터는 전면 사용을 금지키로 했다. 예외적으로 생분해가 가능한 플라스틱을 적용한 제품은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추가로 중국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폐기물 수준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환경보호세를 생산자에 부과하고 있다. 위험 폐기물에 속하지 않는 플라스틱 등은 1톤당 25위안(약 4700원)이 부과된다.
금액은 적으나 세계 주요국 가운데 전국적 생산자 책임 제도를 미국보다도 일찍 채택했다.
이처럼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에 참여한 주요국은 모두 각자가 내세운 입장 차이와 별개로 플라스틱 규제를 확대하는 추세다.
올해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마지막 플라스틱 협약 협상에서 국제 플라스틱 규제협약 체결이 성상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 주요국이 플라스틱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재활용 의무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이에 준하는 규제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