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 lilie@businesspost.co.kr2024-05-2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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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서울시가 사업성 개선과 공공지원 확대를 골자로 한 도시정비사업 지원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대만큼 사업 진척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부진할 뿐 아니라 주민 사이 의견 차이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기획 단계부터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 최근 서울에서는 사업 추진이 무산된 서대문구 연희동 28번지 일대(사진) 등을 포함해 주민 반대에 부딪히며 신속통합기획 진행이 난항을 겪고 있다. <네이버부동산 갈무리>
26일 서울시와 도시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가 낙후한 주거여건을 개선하고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신통기획에 속도를 내고자 하나 1차 후보지 중 정비구역 지정을 통과한 비율을 절반까지 끌어올리는 것조차 버거운 모양새다.
서울시의 신통기획 총괄 추진 현황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으로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곳이 모두 합쳐 124곳인데 정비구역 지정이 완료된 후보지는 단 4곳에 그친다.
신통기획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5월 정비사업 정상화를 목적으로 발표한 6대 재개발 규제 완화책 가운데 하나로 정비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기간을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는 등 개발에 드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서울시가 1차 신통기획 후보지 선정을 완료한 건 2021년 12월28일이다. 1차 후보지 선정으로부터 약 2년 반이 지난 현재 21곳 가운데 정비구역 지정까지 완료된 곳은 20% 수준이다.
정비구역 지정이 지체된다는 의견에 서울시는 8일 해명 자료에서 “현재 마포구 공덕동 A구역도 2024년 3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구역지정을 앞두고 있으며 추가 5곳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예정으로 정비사업 추진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역지정이 완료된 4곳에 서울시가 말한 곳들을 포함해도 구역지정은 10곳으로 여전히 1차 후보지 21곳 가운데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은 됐으나 정비구역 지정 완료까지 이어진 사례가 적은 건 대부분 주민 갈등으로 진행이 더뎌진 까닭이다. 일부 지역에선 선정 철회 요구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신통기획 후보지로 신청할 때부터 잡음이 많다. 도시정비 사업에 주민 의사가 중요한 만큼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추진 단계부터 어려움이 따른다.
가장 최근엔 17일 주민 반대로 서대문구 연희동 28번지 일대 신통기획 추진이 무산된 사례가 있다.
서울시가 2월22일 변경 고시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비사업 수립단계에서 토지등소유자 반대가 25% 이상이거나 토지면적의 2분의 1 이상이면 진행을 취소할 수 있다. 서대문구 연희동 28번지 신통기획 사업면적 안에서 주민 반대 비율은 28%로 집계됐다.
서대문구 연희동 28번지 일대 재개발 추진 준비위원회 측은 반대 비율이 높은 지역을 제외하고 구역을 축소해서라도 재추진하려 했으나 줄인 구역에서도 반대하는 주민이 15% 가량으로 집계돼 사실상 사업 추진 동력을 잃었다.
연세대 인근인 서대문구 연희동 28번지 일대는 대학가라는 특성상 고시원이나 원룸 임대업을 진행하는 주민이 많아 재개발 추진 반대 비율이 높다.
신통기획 대상지 지정을 추진하는 단계에서 추진위원회와 주민들 사이 투기 의혹이 불거지며 주민들이 반대에 나서기도 한다.
서초구 반포1동 3구역 주민 64명은 10일 서울시에 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 선정에서 제외해 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들은 대부분 주택 소유주인 재개발 추진 세력이 단순히 투기 수익을 목적으로 일방적 사업 추진을 한다고 주장했다. 생업 종사자인 대다수의 일반 가구는 재개발에 따라 갑자기 타지로 이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더 크다고 말했다.
지역이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 완료된 뒤에도 재산권상 불이익을 문제 삼아 주민들이 진행 취소를 요청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신통기획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17일 오후 3시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서대문구청 앞 우측 인도에서 후보지 해제를 요구하는 행진을 진행한 뒤 신통기획 해제신청서를 구청에 접수했다. 서대문구 남가좌2동 337-8 일대는 2022년 12월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됐다.
비상대책위는 사업 추진 기간 동안 재산권 행사 권리를 잃어 불이익을 얻는 데다 재개발 관련 각종 고소·고발 등으로 손해가 크다고 목소리를 냈다.
재산권 관련해서 주로 신통기획 대상지의 권리산정 기준일이 문제가 됐다.
권리산정 기준일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77조에 따라 정비구역 지정일 혹은 시·도지사가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따로 정한 날짜를 기준으로 건축물을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권리산정 기준일 뒤에 취득한 주택은 입주권이 없어 현금청산 등 대상이 된다.
신통기획 후보지의 권리산정 기준일은 후보지 선정 발표일이 아닌 공모일로 정해진다. 지분쪼개기와 세대수 증가 등으로 사업비 부담이 느는 걸 막기 위해서다.
2022년 12월30일 서울시가 발표한 2차 후보지의 권리산정기준일은 공모일인 2021년 12월28일이다. 후보지 지정과 권리산정기준일이 1년이나 벌어져 그 사이 준공이나 착공에 들어간 주택에선 입주권을 얻지 못하고 현금청산하는 대상이 생겼다.
용적률이 늘어나 생긴 기부채납 관련 갈등도 신통기획 추진을 더디게 하는 데 한몫 했다.
3월 여의도 신통기획 1호 단지인 시범아파트에서 서울시의 공공기여 요구에 반발하는 주민 의견이 나왔다. 신통기획 선정 뒤 서울시에서 용적률과 최고 층수 혜택을 주는 대신 공공기여 노인 주간 보호시설 설치를 요구한 데에 불만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신속한 추진에 방점을 둔 신통기획에서는 주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기존 도시정비사업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신통기획 당초 정책 목표인 속도감 있는 진행을 달성하려면 현재보다 이른 시기에 주민 사이 의견을 모아 정당성을 갖춘 주민대표를 구성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또한 “시가 정책 취지 가운데 하나인 공익성 추구를 위해 선정지에 공공기여를 요구한다면 주민들에게 단순 원가 기준으로 산정한 게 아닌 적절한 수준의 대가를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다른 도시정비사업인 모아타운 진행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투기 세력 유입과 이를 둘러싼 주민 갈등이 문제가 돼 곳곳에서 몸살을 겪는다.
모아타운은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 노후 저층 주거지를 모아 하나의 아파트 단지처럼 만드는 제도다. 최근 몇 년 사이 재개발 요건을 맞추지 못한 곳에서 모아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10일 제4차 모아타운 대상지 선정위원회에서 공모에 신청한 서초구 양재2동 280 일대와 양재2동 335 일대를 모아타운 대상지 선정에서 제외했다. 해당 모아타운 구역 주민 반대 의견이 토지면적의 30~50% 안팎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올해 첫 모아타운 대상지로 선정된 도봉구 창3동 1~5구역 역시 조합이 설립된 1구역을 제외하고 주민 간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모아타운 대상지 진행 현황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 선정지 85곳 가운데 관리계획 수립까지 완료된 건 34곳으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4년 신년사에서 시민 행복 최우선 도시 혁신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서울시는 2021년 ‘6대 재개발 규제완화’를 시작으로 신속통합기획 전면도입과 재건축 3대 규제 철폐 등 노후 주거지 개선을 위한 정책을 내놨다.
서울시는 3월27일 ‘재개발‧재건축 2대 사업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정비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더 원활한 진행이 될 수 있게 돕고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 받거나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했던 지역은 정비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업지원 방안은 ‘통합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인허가에 걸리는 기간을 줄이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공공지원 강화와 용적률·접도율 제한을 풀어주고 공공주택과 같은 건축물 기부채납에 혜택을 제공하며 공공기여 부담을 줄이는 등의 사업성 향상을 두 가지 큰 축으로 삼는다.
유창수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지원방안을 발표하며 “도시정비사업 지원으로 침체된 건설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4월19일 도심개발 전반에 적용되는 ‘서울시 지구단위계획 용적률 체계 개편 방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구역에 공개공지를 조성하면 조례상 용적률의 120%까지 부여하기로 했다.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