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이 맏언니 구미현씨를 설득해 아워홈 사내이사 임기를 연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사진은 구 부회장이 최근 아버지인 구자학 명예회장의 2주기를 맞이해 선영을 참배한 모습. <구지은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
[비즈니스포스트] “아버지 어느덧 2주기가 되었네요. 아버지가 아끼시던 막내, 아워홈! 저희가 잘 보살피고 있어요.”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이 최근 고(故) 구자학 아워홈 명예회장의 선영을 찾은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구 부회장의 옆에는 둘째 언니인 구명진 전 캘리스코 대표가 함께 있었다. 구명진 전 대표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아워홈의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항상
구지은 부회장 편에 선 인물이다. 구명진 전 대표의 남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도 구자학 명예회장의 선영에 참배하고 술을 올렸다.
구자학 명예회장의 제사상 위에는 책 ‘최초는 두렵지 않다’도 올려져 있었다. 이 책은
구지은 부회장이 직접 아버지를 돌이켜보며 지난해 8월 출간한 회고록이다. ‘
구지은, 아버지 구자학을 기록하다’라는 부제도 달려 있다.
구지은 부회장이 아워홈 대표이사에서 물러날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구자학 명예회장의 2주기 행사를 지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구자학 명예회장은 자녀 1남3녀 가운데 막내딸인 구 부회장을 특히 아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부회장을 직접 불러 아워홈 경영에 참여하도록 한 것은 구 명예회장의 막내딸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버지의 부름 덕분에 구 부회장은 2004년부터 아워홈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삼성인력개발원과 왓슨와야트코리아에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아워홈에 상무로 입사해 구매와 물류, 글로벌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
구자학 명예회장의 네 자녀 가운데 아워홈 경영수업을 제대로 받은 인물은
구지은 부회장이 유일하다.
구 부회장에 따르면 구자학 명예회장은 자녀들을 잘 칭찬하는 편이 아니었다. 구 부회장이 맡았던 사업부의 매출이 40% 늘어난 뒤 한참 지난 후에야 ‘그건 좀 괜찮다’며 ‘이젠 됐다’라는 소리를 한 것이 구 부회장이 아버지에게 들었던 가장 큰 칭찬이었다.
구 부회장이 아워홈에 입사한 뒤 10년 동안 이 회사의 매출은 5천억 원대에서 1조3천억 원대까지 늘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 구 부회장의 오너경영인으로서 삶은 순탄치 않았다.
구매식재사업본부장으로 오른 뒤 5개월 만에 보직이 해임됐다. 이듬해 원래 보직으로 복귀했지만 이후 2개월 여만에 사내이사 자리에서 돌연 물러났다. 구 부회장이 아워홈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것은 아워홈 입사 이후 12년1개월 만이었다.
구자학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본성 부회장이 ‘LG그룹의 장자승계 전통’을 명분으로 삼아 아워홈 경영권을 쥐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구본성 부회장은 아워홈 등기이사조차 맡지 않고 있다가 2016년 3월에서야 기타비상무이사로 아워홈에 등장했고 3달 만인 6월 아워홈 대표이사에 올랐다. 아워홈에서 12년을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오빠에게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장면이다.
구지은 부회장은 어쩔 수 없이 아워홈 변방을 떠돌았다. 아워홈의 여러 외식 브랜드를 총괄하는 관계사 캘리스코 대표이사를 5년 동안 지냈다.
아워홈 복귀 기회는 우연치 않게 찾아왔다. 구본성 전 부회장이 보복운전을 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이를 명분으로 삼아 2021년 6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오빠를 해임하고
구지은 부회장 본인이 대표이사에 복귀했다.
구지은 부회장의 복귀에 도움을 준 인물은 언니들이다. 아워홈 지분을 살펴보면 구본성(장남) 38.6%, 구미현(첫째딸) 19.3%, 구명진(둘째딸) 19.6%,
구지은(셋째딸) 20.7% 등이다. 큰오빠를 해임하려면 언니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구 부회장은 3년 만에 아워홈에서 쫓겨날 위기에 몰려 있다. 그의 복귀에 협력했던 맏언니 구미현씨가 돌연 구본성 전 부회장과 손을 잡으면서 4월17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구지은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31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반전이 없으면
구지은 부회장은 하는 수 없이 짐을 싸야만 한다. 그의 임기는 6월3일까지다.
구지은 부회장은 현재 자신의 경영권을 사수하기 위해 최후의 카드를 던진 상태다. 아워홈의 배당가능이익 5331억 원을 활용해 자사주 61%를 매입하는 방안을 임시 주총 안건으로 올렸다. 동시에 지난 정기 주총에서 부결됐던 자신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맏언니인 구미현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쓰겠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구미현씨는 아워홈 경영권 분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핵심 인물로 꼽힌다. 보유하고 있는 지분 20%가량에서 나오는 의결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아워홈 경영권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뀐다.
구미현씨가 오빠 편을 들었을 때는 구본성 전 부회장이 아워홈의 수장에 올랐다. 반대로 동생 편을 들었을 때는
구지은 부회장이 아워홈을 맡았다. 구미현씨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서는 아워홈의 지휘봉을 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구지은 부회장의 곁을 떠난 구미현씨의 마음을 돌려세우려면 구미현씨가 원하는 것을 줘야만 한다.
▲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구자학 명예회장의 선영을 참배하며 제사상에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 '최초는 두렵지 않다'를 올렸다. <구지은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
구미현씨는 애초부터 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본인의 지분을 현금화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 것으로 알려진다. 구미현씨가 자신의 지분 매각을 약속했던
구지은 부회장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 것도 구 부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아워홈의 배당도
구지은 부회장 체제에서 급감했다. 구미현씨로서는 더 이상
구지은 부회장 체제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지은 부회장이 조만간 열리는 임시 주총에 아워홈의 자사주 대규모 매입을 안건으로 올리는 것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맏언니의 지분을 현금화해주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구미현씨로서도 이런 제안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구미현씨 지분을 단독으로 매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독 과반의 지분율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지분 약 38%와 구미현씨 보유 지분 약 20%를 합쳐 통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구미현씨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아워홈의 덩치와 위상 등을 감안했을 때 이를 사들이겠다는 매수자를 단번에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파악된다.
구미현씨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데 이 빈틈을 현재
구지은 부회장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워홈을 통해 언니 주식을 사줄테니 내가 사내이사 임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뜻이다.
구미현씨의 마음도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구지은 부회장을 사실상 벼랑 끝으로 몰아내면서 자신이 직접 아워홈 사내이사에 올랐지만 아워홈 노조가 집 앞에 찾아와 항의시위를 할 정도로 구미현씨의 결정은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구미현씨가 힘을 실어준 큰오빠 구본성 전 부회장은 현재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도 받고 있다. 구미현씨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명분이 없는 처지다.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 한복판에 놓이는 것보다 서둘러 실리만 챙기고 손을 빼는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지일 수 있는데 현재 막내동생인
구지은 부회장이 이런 길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나 다름없다.
구미현씨는 과거부터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이례적 결정들을 한 적이 많다. 지난해에는 아워홈의 배당을 놓고
구지은 부회장 측과 충돌했지만 막판에는 자신이 주주제안한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대신 아워홈의 결정에 따랐다. 다가올 주총에서도 구미현씨가
구지은 부회장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다.
아워홈 관계자는 “임시 주주총회 안건 상정 내용과 아워홈 주주들의 표심과 관련해서 회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