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
“더디 가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처음부터 다시 세우겠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박 위원장은 쇄신의 기치를 내걸고 재출발을 다짐했다. 박 위원장이 파산지경에 이른 당을 구해내 수권야당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 실천하겠다”
박 위원장은 5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향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운영방향 등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새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여망을 안고 창당한 저희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 4개월여 만에 파산지경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선거참패를 통해 저희 안의 낡은 생각과 관행, 무능할 정도의 미숙함과 안이함도 깨닫게 되었다"고 사과했다.
그는 또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 국민의 눈으로 국민의 마음으로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를 실천하겠다"면서 "더 낮은 자세로 국민과 함께하며 변화와 혁신의 화려한 겉치레가 아닌 근본에서부터 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이 투쟁정당 이미지를 벗고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근간을 둔 생활정치를 실현하는 데 힘쓸 것을 약속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내 파벌주의, 밀실주의, 온정주의, 연고주의 등 낡은 관행을 깨겠다는 다짐도 내놓았다.
박 위원장은 "당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무당무사의 정신에 무민무당, 국민이 없으면 당도 없다는 정신으로 임하겠다"면서 국민공감혁신위에 "당 내외 인사를 망라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널리 구하고 모시겠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이번 재보선에서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된 전략공천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공정성과 민주성의 원칙에 입각한 예측가능한 정치, 공직 후보자 선출방식에서 당내 문화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공감하는 원칙과 기율이 바로 선 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략공천을 배제하고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선거제도를 개혁할 뜻도 내비쳤다.
박 위원장은 올해 54세로 MBC기자 출신의 3선 의원이다. 그는 지난 5월 헌정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로 선출된 데 이어 제1야당 첫 여성비대위원장이란 기록을 남기게 됐다.
새정치연합은 비대위 공식명칭을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정했다. 박 위원장이 이끌 비대위체제는 내년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약 5개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박영선 과연 독배 들었나
박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바게트빵’에 비유된다. 겉으로 강해보이나 속으로 부드럽고 여린 면도 있다는 뜻이다.
그는 전날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되자 눈물을 보였다. 박 위원장은 “피하고 싶었던 심정도 있었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안다”며 고뇌의 일단을 내비쳤다.
정치권에서 그가 ‘독배’를 들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새정치연합이 처한 상황이 그만큼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박 위원장이 파산지경에 처한 당을 건져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당을 혁신하고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서 당 내분을 수습하는 일이 시급하다. 새정치연합은 전략공천 과정에서 심각한 계파갈등을 드러냈다.
박 위원장의 임무가 차기 당권주자 선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내년 전당대회까지 계파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당의 단합을 이뤄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박 위원장이 위원장 추대 직후 무당무사를 강조한 것도 당권주자 경쟁과정에서 계파갈등이 재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위원장은 이와 함께 지역위원회, 중앙위원회, 당무위원회 등 당내 조직을 재건하고 나아가 구체적 개혁플랜과 정책대안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재보선에서 새누리당과 프레임싸움에서 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새누리당이 경제활성화를 내걸고 유권자 공략에 성공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의 발목을 부여잡고 정권심판을 요구하는 데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후에도 대안세력으로서 면모를 보이지 못할 경우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 인적쇄신 갈등 어떻게 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내부기류가 심상치 않은 점도 박 위원장의 험로를 예상케한다. 특히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과 맞물려 비대위 출범과 동시에 인적 쇄신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당내 중진인 정세균 상임고문은 4일 “필요한 사람은 남아야 하고 신진도 불필요한 사람은 교체해야 된다"고 밝혔다. 정 고문의 이런 발언은 안철수 전 공동대표까지 교체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지원 의원도 의총 직전 기자들과 만나 “노장층과 조화를 이루어서 나가는 게 좋지 무조건 세대교체를 이뤄서 혁신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비대위체제 아래 앞으로 정부여당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관심사다. 특히 26일부터 10일 동안 세월호 국정감사와 다음달 1일 정기국회가 예정돼 있다.
그동안 박 위원장은 새누리당 지도부가 협상을 꺼려하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강성인사로 꼽혀왔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박 위원장에 대해 ‘우리는 선, 너희는 악’으로 보는 구도가 너무 뚜렷해 힘들다고 하소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채택 문제 등을 놓고 여야간 대치정국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또 정부가 중점 추진중인 의료법과 관광산업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개정 등 정책입법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박 위원장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왔던 만큼 여야간 팽팽한 기싸움이 펼쳐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