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각)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철강노동자들과 만나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3배를 인상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중국정부가 조선산업에서 불공정한 행위를 계속하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도 보였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중국을 향한 경제제재의 칼날을 조선 산업에도 들이밀기 시작했다.
국내 대형 조선3사(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가 신 조선가 상승기에 이미 4년 치 이상의 일감을 쌓으며 실적 개선이 본격화하는 호황 국면에 최대 경쟁국인 중국을 향한 제재까지 예상되면서 세계 조선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기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 사이 긴장 고조는 K-조선 업체들이 상선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 외에도 미국 해양 방산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조선업계와 증권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미국 정부가 중국의 조선업 분야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해 조사하기로 하며, 세계 해운 선사들의 선박 발주 수요가 국내 조선사로 일정 부분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피츠버그에서 철강노조 측을 만나 “조선은 해군력을 포함하는 국가 안보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중국 정부가 조선산업에서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불공정한 관행을 취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해운업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경쟁을 저해하는 불공정한 전략을 계속한다면 미국 정부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앞서 노조 측 청원에 대한 답으로 풀이된다. 미국 철강 노조는 지난 달 중국이 조선·해운 분야에서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중국산 선박과 관련해 조사와 제재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청원서를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했다.
현재 미국 무역대표부는 중국 조선업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조선업의 불공정 관행이라는 것은 중국 정부가 자국 조선 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 자국 조선 업체들이 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가격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를 일컫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등 주요국가는 정부의 부당 보조금을 받고 생산한 제품을 수출할 경우, 불공정 무역으로 간주해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이 앞으로 중국 선박에 높은 관세를 부가할 경우, 중국과 경쟁 강도가 높은 한국 조선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조선 시장은 한국과 중국 조선사들이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같이 기술력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앞서고 있지만, 수주 물량만 따지면 중국 업체들이 훨씬 더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선박 수주물량은 2446만 CGT(표준선 환산톤수)로 점유율이 59%에 이른다. 반면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량 점유율은 24%(1001만 CGT)다. 과거 세계 조선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은 점유율이 10% 안팎으로 축소됐다.
물론 미국이 세계 해운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미국 제재가 세계 조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시각도 있다. 현재 해운시장은 유럽계 선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가 검토하는 중국 조선업 제재 방안에는 해운 선사들에게 실효적 비용부담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노조 측이 제출한 청원서에는 중국산 해운 선박이 미국 항구에 정박할 때 100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앞줄 왼쪽에서 두번째)이 2월28일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를 방문한 카를로스 델 토로 장관(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에게 특수선 야드와 건조 중인 함정을 소개하고 있다. < HD현대 > |
배기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해운동맹 개편으로 컨테이너선 시황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국제 해운 선사들의 중국산 선박 운용 부담이 커질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4년치 일감을 쌓아둔 상태다. 과거 저가 수주한 물량은 거의 털어내고, 신 조선가 상승기에 수주했던 선박을 건조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실적 호조 흐름이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해운업에 대한 환경규제 강화 추세로 국내 조선사들에게 강점이 있는 친환경 선박 분야 수주에서도 한국이 앞서가고 있다. 국내 조선 3사는 친환경 선박을 중심으로 올해 1분기에만 25조 원 안팎의 신규 수주를 추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함정 유지·보수·정비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 조선사들이 미국 전함의 유지·보수·정비 이력(레퍼런스)를 확보한 뒤 미국 내 조선소 인수를 통해 미국 함정 건조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