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엔비디아가 저희보다 훨씬 더 잘하지만, 인공지능(AI) 추론용 반도체만큼은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17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규모 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 ‘월드IT쇼’ 기조연설에서 향후 AI 반도체 사업 전략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RK 17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규모 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 ‘월드IT쇼’ 기조연설에서 '생성형 AI(인공지능)와 AI 반도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현재 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엔비디아가 점유율 90% 이상으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를 대체할 만한 성능을 갖춘 제품을 찾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국내 AI 반도체 개발사인 리벨리온은 AI 반도체 가운데에서도 데이터 학습을 위한 반도체 외에 AI가 내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론해 결과물을 내놓는 추론용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추론 반도체는 데이터를 학습한 AI 모델이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예측이나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말한다.
박 대표는 “엔비디아 칩은 할 수 있는 메뉴가 10가지 정도 되는 맛집이라면, 리벨리온은 10가지는 못하고 한 두 가지, 예컨대 돈가스만큼은 진짜 잘하는 맛집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는 인공지능 모델 훈련, 추론, 비트코인 채굴, 그래픽 랜더링 등 다방면에 활용된다. 특히 인공지능 모델 훈련 학습에 쓰이는 AI 반도체는 엔비디아 제품을 대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그는 “AI 업체가 AI 학습 모델을 구축할 때는 엔비디아 제품을 쓰도록 하고, 추론용으로는 리벨리온 제품을 채택하도록 이원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사 AI 추론용 반도체 ‘아톰’이 구글이 진행한 성능 테스트에서 엔비디아의 ‘A100’보다 전력효율 측면에서 더 낫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A100은 구글의 소형언어모델(sLLM) AI 알고리즘을 적용했을 때 전력소모량이 200~300와트(W)에 달했지만, 아톰은 50W 수준을 유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하루에 1천만 명이 챗GPT 서비스를 이용하면 연간 수조 원의 운용비용(전기세)이 소요된다"고 했다. AI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전력효율이 뛰어난 추론용 AI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리벨리온은 쿠다 기반 AI 개발자도구(cuDNN 라이브러리)를 대신할 개발자도구를 만들어 엔비디아에 뒤처지는 약점을 보완했다.
쿠다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용 병렬 프로그래밍 언어로, 엔비디아 제품만 지원된다. 대부분 AI 개발자들이 cuDNN 라이브러리에 익숙해 있어 쿠다 생태계야 말로 엔비디아가 AI 반도체의 1인자에 오르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리벨리온의 AI 반도체가 담긴 '아톰 카드'. <리벨리온>
리벨리온은 2020년 9월 설립된 AI 반도체 설계(팹리스) 스타트업이다. KT그룹로부터 665억 원의 투자를 받는 등 긴밀한 협력을 나누고 있다. 삼성전자와 함께 차세대 AI 반도체인 ‘리벨’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출시한 데이터센터용 AI반도체 아톰은 비전(시각용)모델과 언어모델을 모두 지원하는 국내 최초 AI 반도체다.
회사는 올해 1월 아톰의 성능에 힘입어 165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이번 투자에는 기존 투자자인 KT에 더해 KT클라우드와 신한벤처투자가 새롭게 참여했다. 누적 투자유치액은 모두 2800억 원이다.
투자유치 후 회사의 기업가치는 8800억 원으로, ‘유니콘 기업’을 바라보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유니콘 기업은 (국내 기준) 기업가치가 1조 원을 넘고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말한다.
회사는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학회 ‘ISSCC 2024’에서 아톰 관련 기술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텔, AMD, 미디어텍 등 세계적 반도체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올해 4월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가 발표한 '2024년 100대 AI 스타트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리벨리온은 개발 인력만큼은 대한민국 스타트업 사상 최고 수준”이라며 “최근에는 구글과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에서 인재를 영입했다”고 말했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