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혼에 아무리 법적인 권리를 부여한다고 해도 혼인 신고를 마친 법률혼과는 다르다. 특히 민법 규정 가운데 혼인 신고를 전제로 하는 규정은 사실혼 관계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코파일럿> |
[비즈니스포스트] A씨는 2007년 12월7일 즈음부터 B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A씨는 만 65세, B씨는 만 60세로 두 사람 모두 예전에 결혼한 경험이 있었으나 현재는 배우자가 없는 상태였다. A씨는 B씨와 혼인 신고를 하고 법적 부부가 되고 싶었으나 A씨 가족의 반대로 혼인 신고를 하지 못했다.
A씨는 2018년 3월17일 새벽에 갑자기 발작 증세를 보여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받았으나 2018년 4월2일 사망했다.
그 뒤 B씨는 검사를 상대로 사실혼관계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했고 법원은 2018년 11월 7일 ‘A씨와 B씨 사이에 2007년 12월7일부터 2018년 4월2일까지 사실상 혼인 관계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한다’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B씨는 A씨의 재산을 상속받고 싶었다. 하지만 A씨의 가족은 B씨를 상속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A씨는 B씨의 가족을 상대로 상속재산을 나눠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확실히 동거가 많아졌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동거라는 것은 어디에 함부로 말하고 다니기 부끄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동거 커플의 일상 관찰을 하는 예능까지 방송되고 있을 정도로 동거는 보편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동거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실혼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혼은 부부인데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법률상 혼인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사실’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동거와 사실혼 모두 혼인 신고 없이 같이 사는 것은 같다.
하지만 동거 관계에서는 동거인에게 배우자로서의 법적 권리나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사실혼은 법률혼은 아니지만 사회 통념상 혼인으로 인정받을 만한 사정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배우자에 준하는 권리가 인정된다.
어쨌든 동거와 사실혼 모두 사회적 인식과 경제적 여건의 변화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
위 사안은 사실혼 관계에서 있었던 사례이다. 사안에서 B씨는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기 위해서 소송까지 제기했다. 왜 그랬을까?
혼인 신고가 있는 법률혼과는 달리 사실혼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일 뿐이다. 앞서 말한 사실혼 관계에서 오는 법적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사실혼 관계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이때 제기하는 것이 ‘사실혼 관계 존부 확인의 소’이다. 법원에 내가 상대방과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이다. 사안에서는 사실혼 상대방인 A씨가 사망했는데 이런 경우 B씨는 A씨의 유족이 아닌 검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우리 법원은 사실혼이 인정되는 요건으로 주관적으로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 사회 관념상 가족 질서적인 면에서 부부 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 생활의 실체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결혼식 여부, 일정 기간 이상의 동거 관계, 양가 가족을 서로 알고 교류했는지 여부, 생활비를 함께 지출하는 경제적 공동체로 생활해 왔는지 등 다양한 사정을 고려해서 판단한다.
일단 법원의 판결을 통해 사실혼으로 인정받으면 법률혼에 인정되는 일반적인 효과가 상당 부분 인정된다.
예컨대 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부부간 동거, 부양, 협조 의무는 사실혼 관계의 부부에게도 적용된다. 만약 배우자의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동거, 부양, 협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사실혼 관계를 부당하게 파기한 것이 되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재산 관계에서도 법률상 부부와 마찬가지로 일상가사 대리권(민법 제827조)이나 생활비용의 공동 부담 규정(민법 제833조) 등이 적용된다.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재산분할과 위자료이다. 사실혼 관계가 깨져도 이혼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에 위자료의 지급 의무가 있고 재산분할도 청구할 수 있다. 사실혼 배우자가 사망하면 근로기준법상의 유족보상,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공무원연금법의 유족연금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번 사례는 사실혼 관계가 인정되기 전에 사실혼 배우자가 사망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검사를 상대로 사실혼 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해서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사실혼 관계는 제삼자와의 관계에서도 보호받는다. 제삼자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과 불륜 관계를 맺었다면 그 제삼자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상대방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이른바 상간자 소송이다.
그런데 사실혼에 아무리 법적인 권리를 부여한다고 해도 혼인 신고를 마친 ‘법률혼’과는 다르다. 특히 민법 규정 가운데 ‘혼인 신고’를 전제로 하는 규정은 사실혼 관계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이 상속이다. 사실혼 관계인 A씨가 사망했더라도 B씨는 A씨의 재산 상속을 주장할 수 없다.
위 사안에서 B씨는 민법 1003조 제1항의 ‘배우자’의 상속권 규정을 놓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서 헌법재판소는 상속권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기본적으로 사실혼과 법률혼을 같게 취급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내린 판결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최근 황혼 재혼이 증가함에 따라 종종 일어난다. 재혼하는 사람의 자식들이 새아버지·새어머니 때문에 자신이 받을 상속이 줄어들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집안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결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다음의 두 가지를 명심하자.
부득이하게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사실혼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둬야 한다. 사실혼 관계는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함을 명심하자. 판사를 설득할 수 있는 자료가 오랜 시간 축적되어야 한다.
그리고 상속은 받을 수 없지만 유언이나 증여, 유증을 통해서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갖추는 방법이 있다. 필요하다면 미리 대비하면 충분하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