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전기차동력계 시험실 내 4축 동력계 시험실에서 테스트를 진행중인 아이오닉5 실차. <현대차그룹> |
[화성(경기도)=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들이 최근 세계 최고 권위의 자동차 시상식을 휩쓸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내연기관차 시대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였지만, 전기차 시대엔 압도적 성능과 가치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설파해왔다. 그런 정 회장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 바로 바로 1995년 출범한 남양기술연구소다.
지난 27일 경기 화성시에서 열린 '남양기술연구소 미디어 랩투어'에 참가해 현대차그룹 전기차가 거치는 가혹한 테스트 과정들을 직접 살펴봤다.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상용시스템시험동에서 로봇을 활용해 쏠라티의 개폐내구 시험을 진행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
◆ 운전자를 위한 모든 조건을 평가하는 '상용시스템시험동'
남양연구소 정문에서 촬영방지 스티커 부착 등 간단한 보안절차를 거친 뒤 가장 먼저 상용시스템 시험동을 둘러봤다.
이곳은 차량 개발과 평가에 필요한 300여 시험을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대차∙기아의 모든 상용차는 이곳에서 혹독한 시험을 거친다. 평가 조건 일부에 차이가 있지만 구조적으론 승용차 시험 연구와 거의 동일한 과정으로 진행된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1만4500m2(약 4400평) 규모의 거대한 시험동에선 실제 차량 주행 환경을 반영한 차량 평가 검증이 한창이었다.
시험동 초입에 위치한 로봇 시험실에 들어서자 로봇 팔이 현대차 대형 밴 모델의 뒤쪽에서 테일게이트를 쉼 없이 열고 닫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담당 연구원은 문을 여닫는 강도는 실제 사람의 힘과 동일하고, 충분한 내구성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로봇이 몇 달 동안 내내 시험을 계속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향∙현가 구역에서는 거대한 장비들이 굉음을 내며 작동하고 있었다.
한쪽에선 유압 액추에이터로 구동되는 육중한 로봇이 전기버스 일렉시티의 서스펜션을 거칠게 흔들어댔다.
조향∙성능내구시험도 24시간 연속으로 진행되는데, 일반적으로 주행거리가 승용차보다 긴 상용차 특성을 고려해 시험 기간만 몇 달이 걸리는 때가 많다고 한다.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상용시스템시험동 다이나모 무향실에서 유니버스 제동 소음 평가를 진행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
여러 설비를 지나 상용시스템 시험동의 마지막 구역인 NVH(소음·진동·불쾌감) 다이나모 무향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1만3천개의 삼각기둥 모양의 흡음재로 빼곡히 둘러싸인 7.5m 높이의 방음벽이 시야를 꽉 채웠다. 외부 소음이 완벽히 차단돼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이곳에선 목표로 한 시험품의 소음만 측정하며, 민감한 소음까지 잡아낼 수 있다고 한다.
NVH 구역은 엔진 구동계 소음부터 실내외 소음까지 실제 차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소음을 평가하는 곳이다.
이날은 수소전기 유니버스의 브레이크 소음을 평가하고 있었다. 이 실험은 브레이크 품질 향상을 위해 한달 반 동안 정해진 시험조건에 따라 반복적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이진원 상용내구시험팀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모빌리티의 발전 방향이 전기차와 같이 점점 더 정숙성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에 소음을 평가하는 시험이 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상용차의 누적 주행거리는 100만km를 훌쩍 넘는다.
그런 만큼 상용차 내구성을 시험하는 상용시스템시험동에선 시험설비와 로봇, 연구원들이 섬세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인내심 있게 반복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 현대차그룹 고성능 전기차의 산파,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
남양연구소 전동화 시험센터는 기존의 파워트레인 개발 조직이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체제 전환에 따라 전동화 조직으로 개편된 곳이다. 신차가 양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충분한 성능 개발을 통해 전기차 품질을 개선하고 확보하는 활동을 담당한다.
이날 두번째로 방문한 전동화 시험센터 내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전기차 핵심 구동계인 모터와 인버터 성능을 사전 개발하고 실차 효율을 평가하는 곳이다.
이 시험실은 실제 도로에서 이뤄지는 주행 테스트와 달리 실내 시험 공간 내에서 가혹한 테스트를 반복해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험실에 들어서자 곳곳의 시험실 유리창 너머로 바쁘게 돌아가는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4축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 아이오닉5가 올라가있는 모습. <현대차그룹> |
곽호철 전동화구동시험3팀 책임연구원은 "모터 단품 시험부터 차량 양산까지 종합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대표적 3가지 동력계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동력계 장비의 개수에 따라 크게 1축과 2축, 그리고 4축 동력계 실험실로 나눠 운영된다"고 말했다.
1축 동력계 시험실은 주로 차량 개발 초기 단계에 이뤄지는 모터와 인버터의 기본 특성에 대한 시험을 진행하는데, 모터 시스템 성능, 효율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2축 동력계 시험실은 모터와 인버터에 감속기, 구동축을 추가해 실제 차량의 구동계와 비슷한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파워 일렉트릭(PE) 시스템 전체의 효율과 매핑, 냉각, 열해 시험을 통해 실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 검증한다.
4축 동력계 시험실에 안전을 위해 가동을 멈춘 뒤 직접 들어가봤다. 이곳에선 실제 아이오닉5 차량을 직접 구동해 구동계 전체의 시험평가를 진행하고 있었다. 배터리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는 1·2축 시험실과 달리 실제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를 사용해 전기차 성능을 가장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는 곳이다.
파워 일렉트릭 시스템 효율·매핑 검증, 에너지 손실 분석, 냉각 및 열 관리 등과 함께 전비 평가와 같은 인증 관련 시험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또 온도와 습도를 제어하고 차량을 설비에 올려놓고 테스트를 진행해 타이어 영향을 배제한 성능 평가가 가능하다.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4축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서 로봇을 활용해 차량 가·감속 제어를 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
특히 시험차량 운전석엔 로봇이 기어와 엑셀, 브레이크 등을 조작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로봇은 가속과 제동을 위해 사람과 유사하게 페달을 밟을 수 있고, 자동으로 변속까지 가능하다.
현대차·기아 전동화구동시험 담당 연구원들은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서 얻은 데이터를 전기차 설계와 개발 관련 부서와 공유하며 협업한다. 이를 테면 설계 측면에서 의도한 성능과 효율이 실제 구현되는지 검증하고, 부족한 부분은 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담당 연구원은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이 현대차그룹의 고성능 전기차 탄생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일반 전기차와 달리 고성능 전기차는 가혹한 조건의 주행을 고려해 제작되는데,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현대차 아이오닉5 N의 최고속도 260km의 초고속 시험이나 극한의 부하 조건을 구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얻는 데이터와 그에 대한 평가가 고성능 전기차 개발의 단초가 된다.
남양연구소를 방문한 직후인 28일 아이오닉5 N은 '2024 월드카 어워즈'에서 '올해의 세계 고성능차'를 수상하기도 했다.
◆ 차세대 배터리 기술 내재화의 출발점, '배터리 분석실'
이어 방문한 기초소재연구센터 소속 '배터리 분석실'은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세부 구성 물질을 연구하는 곳이다. 배터리 셀을 구성하는 소재를 정밀 분석해 셀의 성능, 내구성, 안정성 등에 관한 전체적 평가를 진행한다.
현대차∙기아가 자체 연구하고 있는 차세대 배터리에 적용될 신규 소재에 대한 분석도 진행하고 있다.
배터리 분석실은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드라이룸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재욱 재료분석팀 팀장은 "전기차 배터리는 소재 특성 상 수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일정 온도와 습도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드라이룸이라는 특수환경에서 셀을 해체하고 분석해야 신뢰성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분석실에 들어온 배터리는 가장 먼저 '셀 해체실'로 옮겨지는데, 이곳에선 배터리 셀 구조 파악과 구성 소재 분석을 위한 시료 채취 작업이 진행된다.
셀 해체실에선 배터리를 자르고 해체하는 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화재 방지를 위해 바닥, 벽면, 천장과 테이블 등 기본 설비가 모두 스테인리스 소재로 마감돼 있었다. 또 자동소화 설비가 적용된 흄후드와 각종 화재 차단 설비가 곳곳에 비치돼 있다.
채취된 시료는 드라이룸의 '전처리실'로 옮겨져 정밀 분석 장비에 시료가 장입될 수 있도록 시료 절단과 샘플링 작업이 진행된다.
그 뒤 '메인 분석실'에선 샘플링된 시료에 관한 기본 재질 및 화학구조 분석 등 정밀 분석을 진행한다.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배터리분석실 내 동력계 드라이룸 메인 분석실에서 연구원이 라만광분석기로 성분 분석을 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
분석 장비 가운데 레이저 광원을 활용해 물질 간 결합을 분석하는 라만 분광 분석기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장비는 시료 표면에 레이저를 쬐어 나온 신호를 바탕으로 물질 특성을 분석한다. 반도체 웨이퍼나 배터리 분리막 코팅 소재 등의 구조 분석에도 활용된다고 한다.
이밖에 배터리 분석실에선 다양한 시험을 통해 배터리 설계 사양과 내구성, 충·방전 조건에 따른 성능과 수명 평가 등을 확인하며, 실제 발생할 수 있는 품질 문제에 대응한다.
특히 현대차∙기아가 자체 연구하고 있는 차세대 배터리에 적용될 신규 소재 분석도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배터리 소재 기술을 집중 연구하는 것은 차세대 배터리 개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라며 "소재 단계에서 그 특성을 이해하고 개선하면 문제점을 미리 알고 예방할 수 있고, 최적의 소재 개발을 통한 전체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세계 곳곳 극한 환경이 시험실 안에', 세계 최대 규모 '상용환경풍동실'
마지막 일정으로 상용환경 시험동 내 3개 시험실 중 하나인 '상용 환경 풍동실'을 방문했다.
상용 환경 풍동실은 내연기관 및 친환경 상용차(전기차, 수소차 등)를 연구하고 테스트하는 곳으로 냉각, 열해, 연비, 냉시동, 히터·에어컨, 충·방전, 동력, 모드 주행, 배기가스인증 등 실차 주행 성능시험을 종합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상용환경풍동실에서 엑시언트 수소전기 트럭에 태양광 장비를 활용한 고온 평가를 진행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
특히 실내 온도를 영하 40℃~영상 60℃까지, 습도를 5%~95%까지 조절할 수 있어 세계 곳곳의 날씨와 극한 환경까지 구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3.3m의 대형 팬을 가동하면 시속 120km에 달하는 바람을 만들어 실제 주행 조건에 맞춘 시험도 할 수 있다.
제어실에 들어서자 유리창 너머로 엑시언트 수소전기 트럭이 놓여있는 환경 풍동실이 눈에 한눈에 들어왔다. 환경풍동실 내부 공간은 길이 20m, 너비 10m, 높이 6.6m로 세계 최대 규모다.
풍동실 천장과 측면에는 태양광 장비가 설치돼 있는데, 이 공간에 진입하자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이날 기자들 방문 직전 온도조절 장치를 해제했지만, 중동 지역 테스트 기준 온도인 섭씨 45도에 맞춰 시험을 진행중이었던 터라 내부 온도계는 여전히 35도의 고온을 표시하고 있었다.
실제 섭씨 45도 환경에 방치한 자동차의 실내 온도는 6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데, 상부에 자리한 솔라 시스템이 이와 같은 온실효과를 동일하게 재현할 수 있다고 한다.
환경 풍동 시험실은 상용 전기차 개발에도 유용하게 쓰이는데, 온도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는 전기차 배터리의 충·방전 및 냉각 성능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풍동실에는 400kW(킬로와트)급 초고속 충전기 3대가 마련돼 있었다.
시험실 관계자는 중국산 전기차 가운데는 영하 20도 이하 환경에서 충전이 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고 귀띔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유동 가시화 시험이 진행되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 시험은 풍동 내부에 가스를 분사시켜 차량 주변의 공기 흐름을 확인하고 공력성능 향상에 기여하는 테스트다.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상용환경풍동실에서 유동 가시화 시험이 진행되는 모습. <현대차그룹> |
연구소 관계자는 환경풍동시험실의 높은 안전성을 거듭 강조했다.
상용 전기차와 수소차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시설인 만큼 최첨단 안전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시험실 내부 모든 시설물은 수소 방폭 설비로 구성됐고,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열·연기·불꽃·수소감지기 등과 자진 소화 설비도 갖췄다. 이에 실차를 시험하는 시험실로는 최초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연구 안전관리본부에서 인증하는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자격을 획득했다고 한다.
이강웅 상용연비운전성시험팀 책임 연구원은 "이런 희소성과 기술력 덕분에 국내 정부부처·학계·자동차업계를 비롯해 해외에서도 수많은 기업과 정부 기관이 연구 및 비즈니스 협업을 위해 계속해서 환경풍동실을 방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