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0 총선 서울 영등포갑 선거구에서 과거 동지였던 김영주 국민의힘 의원(사진 오른쪽)과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사진 왼쪽)이 적으로 만나 대결을 펼친다. 사진은 두 사람이 2019년 12월24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린 서울시-영등포구 예산 설명회에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가운데)과 나란히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4‧10 총선 서울 영등포갑 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영주 국민의힘 의원과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이 경쟁자로 만나 대결한다.
김 의원은 영등포갑에서 내리 3번 당선되며 지역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것으로 평가되지만 영등포구청장을 지내며 바닥 민생 현안에 밝은 채 전 구청장의 도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개혁신당 후보로 나온 허은아 전 의원도 출마해 제3지대 정당의 약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만큼 영등포갑에서 복잡한 대결구도가 짜였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영등포갑은 최근 총선에서 민주당이 우세했던 선거구이지만 승리를 안겼던 김영주 의원이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출마하며 올해 총선 판세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영등포갑은 김 의원이 2012년 19대 총선부터 2020년 21대 총선까지 3번 연속 민주당 깃발을 꼽은 선거구다.
김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영등포갑 선거구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은 모두 민주당계 정당으로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은 19대 총선 영등포갑에 재도전해 당선된 뒤로 이 지역구에서 단 한 번도 승리를 놓치지 않으며 영등포갑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김 의원이 국민의힘으로 말을 갈아타게 된 데는 민주당에서 의정활동 하위 20% 평가를 받은 게 도화선 역할을 했다. 하위 20% 평가를 받으면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20%의 감점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본선 진출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이에 반발해 김 의원은 탈당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입당 권유를 받고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후 김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영등포갑 우선추천(전략공천) 대상자가 돼 공천장을 받게 됐다.
이번 총선에서는 과거 민주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과 당적을 달리한 채 대결을 펼치게 됐다.
채 전 구청장은 2018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영등포 구정을 담당하며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 의원과는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기초단체장으로서 지역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는 힘 있는 지역 국회의원의 협조가 적잖은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역 국회의원으로서도 지역구의 기초단체장이 자당 소속일 때 지역활동에 유리한 점이 많다.
▲ 김영주 국민의힘 의원(앞 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앞 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2020년 7월15일 영등포구청에서 당정회의를 진행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김영주 의원 블로그>
하지만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경쟁자가 된 셈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터줏대감인 김 의원을 앞세워 열세 지역인 영등포갑 탈환 기대를 키우고 있다. 김 의원은 4선 경력에 고용노동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중진 정치인인 데다 지역기반도 탄탄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경쟁력 있는 여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김 의원의 국민의힘 이적 효과가 얼마나 득표력으로 연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 의원을 지지하는 주민의 대다수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만큼 기존 지지층이 상당수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김 의원이 민주당과는 대척점에 있는 국민의힘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은 기존 지지층을 온전히 흡수하는 데 제약 요인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공천에 반발하는 사례는 역대 선거에서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경쟁 정당으로 옮겨 다시 출마하는 일은 비교적 드물다. 무소속 출마나 제3지대 소속 출마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보수성향의 주민들로서도 바로 얼마 전까지 민주당 소속이었던 김 의원을 완전히 신뢰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보수 지지층 일부도 이탈할 공산이 있는 셈이다.
특히 개혁신당 후보로 나온 허은아 전 의원의 영등포갑 출마로 보수 지지표가 분산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허 전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지만 개혁신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을 나오며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 허은아 전 의원이 1월18일 국회 소통관에서 개혁신당의 기업관련 정당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 전 의원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정치적 노선을 공유하며 보수진영 내에서 중도적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등포갑의 중도성향 주민들의 지지를 규합한다면 거대 양당 후보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개혁신당은 새로운 정치세력과 양당 기득권 사이 대결구도의 틀을 설정해 영등포갑을 공략할 채비를 하고 있다.
김종인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은 7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영등포갑의 민주당, 국민의힘 후보가 똑같은 민주당 뿌리를 지닌 경쟁 구도에 들어와 있고 여기서 유권자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과 구 정치 세력에 대한 심판을 하라는 차원에서 허 전 의원을 전략공천자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허 전 의원이나 개혁신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보수 쪽에 더 가깝기 때문에 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 지지층을 분산시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민주당 출신 국민의힘 후보인 김영주 의원을 미덥지 않게 보는 보수 지지층들은 허 전 의원을 대안으로 여길 수도 있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는 채현일 전 구청장은 김 전 의원과 비교하면 지역기반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구청장을 지내며 지역 현안에 밝다는 점은 삶에 와 닿는 정치를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소구력을 보일 수 있다. 지방선거를 2차례 치르며 선거 경험을 쌓아둔 것도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영등포갑은 김 의원의 이적으로 화제성이 높아진 선거구로 떠오른 만큼 이 곳에서 여야 지도부의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영등포갑 지역구를 방문해 채 전 구청장의 선거유세를 지원하며 “나도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쳐 여기로 왔는데 행정을 잘하는 사람이 정치도 잘한다”고 채 전 구청장을 추켜세웠다.
이 대표는 “우리가 채 전 구청장을 단수추천하지 않고 경선을 했어도 너끈하게 이겼을 것”이라며 “김 전 의원이 이상한 핑계를 대고 나가는 바람에 조금 싱거워졌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상대 당 후보로 김 전 의원이 확정됐다는데 잘된 것 같다”며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지만 이미 승부는 났다”고 덧붙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12일 영등포역을 찾아 김영주 의원에게 힘을 실었다.
한 위원장은 “얼마 전 이재명 대표아 여기에 와서 한바탕 욕만 쏟아내고 갔다”며 “그것만으로는 영등포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나는 김영주 의원을 잘 모르지만 법무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당과 진영을 초월해 합리적인 정치인 한 명을 봤다. 그게 김영주”라며 김 의원을 응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