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4-03-06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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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24년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역대급 열기로 시선을 모을 전망이다. 주주환원 확대 요구가 거센 가운데 경영권 이슈와 함께 국민연금과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치열한 표 대결이 예상된다.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주주환원 확대에 자율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 세제 지원을 골자로 하는 추가 지원안을 약속하며 ‘독려’에 나선 상태다. 곳곳에서 전운이 감도는 ‘벚꽃 주총’ 이슈들을 살펴본다.
▲ 28일 열릴 KT&G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대결 결과가 주목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KT&G가 이사회 구성을 놓고 정기 주주총회에서 IBK기업은행과 표대결을 펼친다.
관건은 IBK기업은행이 주주제안으로 사외이사 후보에 올린 인물이 KT&G 이사회에 입성하느냐 여부다. 주주제안이 통한다면 방경만 KT&G 대표이사 사장 내정자의 경영을 견제하고 감시할 핵심 인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6일 KT&G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28일 열릴 KT&G 정기 주주총회의 관전 포인트는 집중투표제에 따라 표결에 부쳐질 '이사 2명 선임의 건'이 어떻게 처리되느냐다.
이번 안건이 중요한 이유는 KT&G 내부에서 추천한 인물뿐 아니라 KT&G 주식을 보유한 주요 주주들까지 이사 후보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주주총회소집공고를 보면 이사 후보로 추려진 이들은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2명 등 총 3명이다.
우선 KT&G는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1명을 각각 추천했다.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대표이사 사장 후보자로 최종 결정된 방경만 수석부사장을 사내이사 후보자로 올렸으며 현재 KT&G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임민규 LMK컨설팅 대표이사는 사외이사 후보자로 추천했다.
외부 추천 인사는 사외이사 후보만 있다.
KT&G의 주요 주주인 IBK기업은행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손동환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추천했다.
애초 KT&G를 향해 지속적으로 거버넌스 문제 개선을 요구하며 각을 세워온 행동주의 표방 사모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이상현 FCP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해달라고 제안했었다.
다만 FCP가 5일 입장문을 통해 IBK기업은행의 주주제안을 지지하겠다며 본인들이 낸 주주제안을 철회하겠다고 하면서 자동적으로 이상현 대표는 사외이사 후보에서 제외됐다.
총 3명의 후보 가운데 많은 득표를 얻은 순서대로 상위 1, 2위의 후보자가 이사에 진입하게 되는데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KT&G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안건이 FCP의 요구에 따라 집중투표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단순투표제와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KT&G가 이사 2명을 선임하기로 했으므로 각 주주는 보유 주식 수의 2배씩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주를 가진 주주는 의결권으로 2표를 받게 되는데 이를 한 명의 후보자에게 모두 줄 수 있는, 이른바 '몰표'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가올 정기 주주총회에서 KT&G의 이사 선임 안건이 어떻게 처리될지 예상하기 힘들어진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IBK기업은행은 주주제안을 통해 추천한 손 교수를 추천해놓은 만큼 손 교수가 KT&G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IBK기업은행이 예전부터 KT&G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온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IBK기업은행은 2018년에도 주주제안을 통해 오철호 숭실대학교 교수와 황덕희 법무법인서울 변호사 등 2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며 KT&G 이사회에 진입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당시 IBK기업은행은 백복인 대표이사 사장의 연임도 반대했었다.
이번에는 KT&G의 새 사장 후보 추천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를 들어 사외이사 후보를 따로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KT&G 경영진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는 만큼 자신들이 제안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IBK기업은행은 2023년 3분기 말 기준으로 KT&G 지분 6.93%를 보유하고 있다. 몰표를 준다고 가정하면 손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는 최소 14%에 육박하는 의결권이 행사될 수 있다.
FCP 역시 IBK기업은행에 힘을 보태겠다고 선언한 만큼 손 교수의 이사회 입성을 위해 측면에서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FCP가 보유한 KT&G 지분율이 약 1% 미만이라는 점에서 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른 주주들의 표가 분산되지 않게 됐다는 점만 보면 IBK기업은행의 주주제안에 대폭 힘이 실리게 됐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문제는 KT&G를 향해 문제를 제기한 주주 이외의 주요 주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다.
IBK기업은행과 FCP가 동시에 KT&G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 상황이 이례적인 만큼 다른 일반 투자자들이 이에 귀를 기울이는 상황이 조성된다면 KT&G가 원하는 그림대로 이사 선임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국민연금공단의 표심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8월 기준으로 KT&G 지분 6.20%를 보유한 3대주주다. 국민연금이 KT&G 이사회가 추천한 이사들의 선임 안에 찬성하지 않을 경우 방경만 수석부사장의 이사회 진입이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최근 KT&G와 지배구조가 비슷한 소유분산기업 포스코를 놓고도 사장 선임 과정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바 있다.
KT&G를 향해서는 뚜렷한 의견을 낸 적이 없지만 정부 차원에서 소유분산기업을 압박하는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KT&G가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KT&G 지분율을 기존 7.03%에서 6.20%로 낮추면서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꾸기도 했다.
일반투자는 주가 흐름에 따라 이익만 보고 끝나는 단순투자와 달리 회사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지니는 만큼 국민연금이 KT&G 의결권을 이례적으로 행사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물론 국민연금이 KT&G를 압박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FCP는 국민연금에 주주서한을 보내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의결권 활용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국민연금은 이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FCP의 주장과 비슷한 결정을 하게 되면 사모펀드에 동조하는 기관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KT&G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대표이사 사장 후보자를 선임한 상황이라 무리하게 반대한다면 오히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정당성이 훼손될 공산도 크다.
KT&G는 과거에도 FCP의 주주제안에 따라 KT&G에 표대결이 펼쳐졌을 때 사실상 KT&G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 KT&G는 방경만 수석부사장(사진)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는 것을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렸다.
KT&G의 또 다른 핵심 주주인 미국 투자기관 퍼스트이글매니지먼트의 결정도 중요하다.
퍼스트이글매니지먼트는 KT&G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다.
퍼스트이글매니지먼트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최대 14.24%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만큼 이 표를 어디에 던지느냐에 따라 이사 선임의 안건의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도 핵심 사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통상 외국인 투자자들은 ISS나 글래스루이스와 같은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들이 KT&G의 주주총회 안건을 놓고 회사측 안건보다 주주제안 안건에 투표할 것을 권고하게 된다면 KT&G가 바라는대로 이사회가 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최악의 경우 방 수석부사장의 사내이사 진입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투자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대표이사 후보자가 주주총회에서 낙마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이번 주총의 핵심은 결국 주주제안을 통해 후보로 추천된 인물들의 이사회 입성 여부인데 주요 주주뿐 아니라 일반 주주들의 표심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T&G는 우리사주조합과 재단, 기금 등을 포함해 우호적 지분으로 약 10%를 확보하고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