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꽃 시즌이 당겨지는 등 이상기후의 불길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에 '봄꽃 시즌'이 앞당겨지고 있다. 봄철에 피는 꽃들이 평년보다 이르게 개화하는 현상이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꽃 개화 시기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라는 점에서 학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일본과 미국, 멕시코 등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때이른 봄꽃철이 잇따라 확인된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일본 각 지역별로 벚꽃이 피는 시기가 평년 대비 5~10일 가량 앞당겨지고 있다. 도쿄의 벚꽃 개화 시기는 17일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의 벚꽃이 처음 핀 날짜는 지난해도 3월14일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53년 이래 가장 이른 시기였는데 올해도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국제 기상예보업체 웨더닷컴에 따르면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반도 가와즈에는 2월20일부터 벚꽃이 만개했다.
가와즈는 도쿄에서 열차로 2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마을로 인근 지역과 다른 품종의 벚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벚꽃이 몇 주 일찍 개화한다. 이 때문에 가와즈사쿠라라고 불리는 벚꽃 축제로도 유명하다.
타치바나 요시히로 일본 미에대학 기후환경변화 교수는 BBC와 인터뷰에서 “사계절이 모두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받고 있으나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봄”이라며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일본의 벚꽃은 전국적으로 2월에 개화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2월20일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반도 가와즈 마을에 만개한 벚꽃을 구경하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
그는 “일본에서 기후변화는 아직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여름이 다가오면 견딜 수 없는 이상기온이 발생할 텐데 그렇게 되면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벚꽃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는 추세는 일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기상예보업체 케이웨더에 따르면 서울 벚꽃은 4월2일에 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평년보다 6일 정도 빨라졌다.
케이웨더는 “1월에 이어 2월 중순까지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나타났다”며 “벚꽃 개화 시기는 2~3월 날씨 영향을 받아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으면 빠르게 피는데 특히 개화 직전 기온 변화에 따라 시기가 크게 달라진다”고 전했다.
벚꽃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봄꽃으로 꼽히는 매화도 일찍 개화했다. 기상청은 매화가 평년 대비 약 42일 일찍 꽃을 피웠다고 발표했다.
매화는 평년 기준 2~3월에 꽃을 피우는데 올해는 1월 중순 제주도에서 첫 개화가 관측됐다. 기상청은 전국적 이상고온 현상이 이른 개화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 2월22일 경상남도 창원시 경남도청 앞에 위치한 매화나무를 촬영하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
아시아권을 넘어 미국에서도 벚꽃 만개 시점이 약 10일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워싱턴D.C.에서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가 3월19~23일 사이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00년 관측 기록에 따르면 만개 시기는 주로 3월30일에서 4월4일 사이에 분포됐다.
맷 로저스 워싱턴포스트 산하 기상 예보국 장기 예보 전문가는 “미국 전역의 3월 기온은 평년보다 4~5도 이상 따뜻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엘니뇨 현상으로 태평양으로부터 따뜻한 기류가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멕시코에서도 봄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인 자카란다가 평년보다 2주 이른 시기에 만개했다.
콘스탄티노 곤잘레스 멕시코대 기후변화 연구소 연구원은 로이터를 통해 "자카란다는 통상적으로 3월 초에나 피고 월말이 되어야 보라색으로 변한다"며 "기온상승은 겨울이 일찍 끝나게 만든 동시에 봄도 빨리 찾아오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는 멕시코 주민들이 예년보다 이른 시기에 찾아온 꽃의 모습을 반기기보다는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시민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자카란다 꽃이 피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겨울철에 피는 자카란다 꽃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서 지난해 극심한 폭염 사태로 200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폭염이 정점에 이른 지난해 8월에는 급격히 증가한 냉방 수요로 국가 전력망이 붕괴하기도 했다.
이른 봄꽃이 올해도 심각한 이상기후 현상을 예고하는 전조로 인식되면서 오히려 불길한 신호로 읽히고 있는 상황이다.
크리스티나 아얄라 멕시코 국립대학 지속가능과학 연구원은 로이터를 통해 “기존에는 북극곰이 처한 위기 정도로 애매하게 생각하던 기후변화를 향한 시민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긍정적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유럽집행위원회에 지난 12개월 동안 세계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에 머물렀다고 보고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2월도 같은 현상을 겪을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조엘 히어쉬 영국 국립해양학센터 박사는 가디언을 통해 “현재 기온상승 추이를 돌려놓는 것은 거대한 유조선의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다”며 “처음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을 때는 티가 나지 않지만 노력이 쌓일수록 결과가 크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의 기온 상승을 멈추기 위한 노력이 이른 시일에 실제 결과로 구체화되지 않더라도 기후대응이 앞으로 더 어려워지기 전에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