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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신제윤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정통 재무관료 출신 국제금융통
이명관 기자 froggen@businesspost.co.kr 2014-08-01 03: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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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신제윤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958년 3월 2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6년 휘문고를 졸업하고 1981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시행된 행정고시 24회 수석을 했고 1981년 총무처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1982년 4월 부터 1991년 5월까지 재무부산하 행정관리담당관실, 투자진흥과, 금융정책과, 은행과, 국고과에서근무했다.

1991년 유학길에 올라 미국 코넬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부터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5년 2월17일 개각에서 금융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후임자는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국제금융과 금융정책 분야에서 30여 년을 재직한 정통 재무관료로 정통 경제 금융통, 국제금융통으로 국내에서 첫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다.

2002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 재직 시절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스푸어스(S&P), 피치의 한국 신용등급 상향조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가장 소극적이던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상승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금융정책 과정시절 LG카드 사태를 비롯한 카드부채 부실 문제를 수습하며 업무능력을 인정받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파견을 나가기도 해 민간부문에 대한 이해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2006년부터 매년 실시하는 닮고 싶은 상사에 4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신 위원장이 얼마나 인간미도 넘치는 인물인지 짐작 가능하게 한다.

2007년 국제금융국장 재직 시절 한미 자유무역 협정 협상 당시 금융분과장으로 활동하며 금웅 분야 개방폭을 최소화해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로부터 4명의 협상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국제적인 감각과 대외협상을 인정 받은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경기가 침체기에 빠졌을 때 한국과 미국의 통화스와프 체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위원장은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으로 재직 중 이었는데 당시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스화프 사실은 2008년 10월 30일 알려졌다.

이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위원회 위원장에 유임될 수 있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상시적인 통화스와프를 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11월 기획재정부 국제업무담당관을 지내면서 서울에서 개최된 G20(20개 주요국 정상회의)회담을 성공리에 마치도록 실무역할을 훌륭히 해내면서 이름을 알렸다.

2011년 3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발탁돼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을 도와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대책마련 등 굵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신 위원장은 지난 6월 13일 단행된 경제팀 부처 개각인사에서 유임 됐는데 당시 “특유의 강단 있는 계획을 세워서 소신껏 추진하는 모습은 ‘변양호 신드롬’에서 빠진 공직사회에 귀감이 될 만하다”는 금융업계의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도 "우리금융 민영화와 금융개혁을 통해 보여준 신 위원장의 열정과 추진력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평가하며 "동양이나 개인정보유출 사태 때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 등이 오히려 신뢰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0년 신 위원장은 행정고시 24회 수석으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 경제협력국과 국제금융국,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 등 두루 거쳤다.

1991년 유학을 다녀온뒤 1993년 7월부터 1994년 2월까지 재무부 산하 특수보험과와 국제금융과에서 근무했다.

1994년 12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재정경제원 산하 금융협력담당관실과 금융정책과 등에서 근무했다.

1998년 2월부터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센터에서 근무하다 대통령비서실로 파견나가 2001년 7월까지 근무했다.

2002년 1월 재정경제부로 돌아와 국제금융과장, 금융정책과장 등에서 재직했다.

2003년 금융정책과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카드사태 해결을 주도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5년 국제금융국 국제금융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7년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국민경제비서관을 역임했다.

2010년 11월에는 G20(주요 20개국)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에 이바지한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2011년 3월부터 2011년 9월까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2011년 9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기획재정부 제1차관으로 근무했다. 2011년 3월부터 6개월 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2013년 3월부터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다 2015년 2월 물러났다.

◆ 학력

1976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81년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미국 코넬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신제윤 위원장 딸인 신아영 SBS ESPN 아나운서는 하버드대학 졸업과 스페인어와 독일어등 완벽한 외국어 능력으로 한때 ‘엄친딸’ 아나운서로 화제를 모은바 있다.

◆ 상훈

2010년 11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G20 재무차관회의 의장을 맡아 성공적인 개최에 기여한 점을 인정 받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상훈


2010년 11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G20 재무차관회의 의장을 맡아 성공적인 개최에 기여한 점을 인정 받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어록


“통렬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2013/03/22 중구 태평로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자본시장과의 소통과 금융시장 신뢰를 살리는 데 더욱 역점을 두겠다."(2014/01/24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제3회 연합인포맥스 금융대상식에서)

"지금은 내정 소감을 밝힐 여유가 없습니다.”(2013/03/02 연합인포맥스 인터뷰에서)

◆ 평가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국제금융과 금융정책 분야에서 30여 년을 재직한 정통 재무관료로 정통 경제 금융통, 국제금융통으로 국내에서 첫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다.

2002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 재직 시절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스푸어스(S&P), 피치의 한국 신용등급 상향조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가장 소극적이던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상승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금융정책 과정시절 LG카드 사태를 비롯한 카드부채 부실 문제를 수습하며 업무능력을 인정받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파견을 나가기도 해 민간부문에 대한 이해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2006년부터 매년 실시하는 닮고 싶은 상사에 4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신 위원장이 얼마나 인간미도 넘치는 인물인지 짐작 가능하게 한다.

2007년 국제금융국장 재직 시절 한미 자유무역 협정 협상 당시 금융분과장으로 활동하며 금웅 분야 개방폭을 최소화해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로부터 4명의 협상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국제적인 감각과 대외협상을 인정 받은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경기가 침체기에 빠졌을 때 한국과 미국의 통화스와프 체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위원장은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으로 재직 중 이었는데 당시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스화프 사실은 2008년 10월 30일 알려졌다.

이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위원회 위원장에 유임될 수 있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상시적인 통화스와프를 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11월 기획재정부 국제업무담당관을 지내면서 서울에서 개최된 G20(20개 주요국 정상회의)회담을 성공리에 마치도록 실무역할을 훌륭히 해내면서 이름을 알렸다.

2011년 3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발탁돼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을 도와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대책마련 등 굵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신 위원장은 지난 6월 13일 단행된 경제팀 부처 개각인사에서 유임 됐는데 당시 “특유의 강단 있는 계획을 세워서 소신껏 추진하는 모습은 ‘변양호 신드롬’에서 빠진 공직사회에 귀감이 될 만하다”는 금융업계의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도 "우리금융 민영화와 금융개혁을 통해 보여준 신 위원장의 열정과 추진력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평가하며 "동양이나 개인정보유출 사태 때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 등이 오히려 신뢰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기타

2011년 9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제윤 내정인을 기획재정부 1차관으로 직접 지목해 기획재정부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져 그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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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선
신제윤 씨는 고시 합격 직후 1982년부터 육군에 입대해서 병장 제대했습니다.
요즘 공직자 중엔 정말 드문 케이스입니다.
이번 총리 된 사람도 같은 고시 출신인데, 신제윤 씨보다 몇년 전에 군입대 면제 받았더군요.
어째 이 나라는 제대로 정상적인 길을 간 사람이 드무네요.
신제윤 파이팅.
   (2015-02-21 21:0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