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정부가 최근 연달아 내놓은 증시 부양책이 사실상 일본을 벤치마킹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회의적 목소리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와 증시가 처한 상황이 엄연히 다른 상황에서 무작정 일본 정책을 참고한다고해서 한국 증시가 일본처럼 상승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 금융위원회는 2월부터 국내 상장사 PBR 제고 방책을 실시한다. |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82% 상승마감했다. 반면 코스닥은 0.06% 하락마감했다.
증권가에선 최근 한국 정부가 예고한 PBR(주가순자산배율) 개선안에 따라 증시 자금이 코스닥시장에서 코스피시장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다시 한 번 한국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정부의 의지를 확인했다.
최 부총리는 “우리 증시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저평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근본적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기업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도록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 방안을 2월 안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한국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상장사 PBR 제고를 뼈대로 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이달부터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정부는 이밖에 개인투자자에 대한 세제혜택도 확대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국내 투자형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를 신설하며 이를 통해 국내주식 등에 투자할 시 최대 1천만 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일반형 ISA의 납입 한도를 연간 2천만 원(총 1억 원)에서 4천만 원(총 2억 원)으로 늘리며 비과세 한도도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상장사 PBR 개선’, ‘개인투자자 세제혜택 확대’의 두 가지 정책은 일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증시 닛케이225지수는 지난해 28.24% 상승했고 올해 들어서도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의 증시 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쿄거래소는 지난해 초부터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에 PBR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올해 들어서는 새로운 NISA(한국의 ISA에 해당) 제도 시행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에 대거 유입되면서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일본 정부는 신 NISA를 통해 기존에 5년이던 비과세 기간을 무제한으로 바꾸고 연간 투자 한도를 120만 엔에서 360만 엔으로 늘렸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앞서 성공을 거둔 두 가지 증시 부양책을 한국 정부가 뒤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정부의 자본시장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은 일본의 증시부양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한국 정부 정책은 일본의 세제 지원 강화 및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 증시는 일본 증시와 구조적 차이가 있는 만큼 같은 수준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회의적 전망도 나온다.
우선 일본기업이 PBR을 적극적으로 높일 수 있던 데에는 풍부한 현금성 자산이 한몫 했다. 일본은 버블 이후 기나긴 디플레이션을 거쳐 오면서 기업들이 설비투자 등을 지양하고 현금성 자산을 축적해 왔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이미 설비투자 등을 적극적으로 진행한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 만큼 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을 통해 PBR을 제고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또 기업이익 측면에서도 일본 기업은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부터 가장 큰 수혜를 입으면서 미국과 동조화됐으며 중국과 탈동조화에 성공했다.
닛케이지수는 지난해 나스닥지수와 비슷한 흐름으로 움직였다. 나스닥은 빅테크 및 AI(인공지능)산업 기대감에 지수가 크게 올랐는데 중간재 공급시장인 일본의 닛케이도 이와 동반 상승한 것이다.
반면 한국 증시는 미국 외에도 중국 증시와 여전히 높은 연동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나스닥지수와 홍콩항셍지수를 평균내면 코스피지수 그래프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도 중국 증시는 반등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PBR 개선 등을 통해 국내 기업가치를 높인다고해서 한국 증시가 일본 만큼 상승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닛케이가 미국증시와 동조화되면서 상승했으나 한국은 여전히 중국증시와 동조성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
정부의 ISA 개편안도 일본 만큼 효과를 거두기 힘들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의 경우 가계자산에서 현금성 자산의 비중이 34.5%로 매우 높았기 때문에 신 NISA 정책에 따라 주식시장으로 유동성이 바로 유입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가계자산에서 현금성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5.5%로 세제혜택을 개편한다해서 바로 증시에 투입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 밖에 일본은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기 위해 마이너스 기준 금리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 일본은행이 국채를 대거 매입해 강력한 양적 완화를 통해 증시를 부양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과 구조적 차이점으로 꼽힌다.
하인환 연구원은 “국제정치적 상황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과 가계 자산구성에서 파생되는 정책효과의 한계점으로 일본 만큼 증시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바라봤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도 “한국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이 일본 만큼 효과적이진 않을 것”이라며 "일본 기업들이 오랜 디플레이션과 코로나19를 거치며 체질개선에 대한 의지가 강해진 점, 현금흐름이 풍부했던 점이 한국과 차이다"라 평가했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PBR이 낮다고 해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며 “국내 증시는 기업의 이익 훼손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며 주주환원 제원이 될 이익잉여 수준이 높은 종목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