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는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서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직이다. 현재 국내 택배사업은 택배기업과 택배기사 사이에 있는 대리점이 택배사 및 개별 택배기사와 각각 위·수탁 계약을 맺고 화물을 처리하는 구조다.
대법원이 원심과 같은 판결을 내릴 경우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에 직접 임할 의무가 생긴다. 교섭자체도 쉽지 않지만 결렬되면 노조가 쟁의권을 가지게 돼 파업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게 문제다.
또한 단체교섭은 양자 사이에 있는 대리점의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
CJ대한통운은 대리점 2천여 곳을 끼고 사업을 하고 있다. 각 지역마다 소속 택배기사 수, 배송물량, 집배송 구역특성 등에 차이가 있다. 원청이 단체교섭을 통해 일괄적으로 근로조건이나 처우를 정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고용기간이 2년이 넘는 택배기사를 정규직으로 고용해야하는지도 따져야 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단체교섭권의 인정으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현재로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앞서 2020년과 마찬가지로 △서브터미널에서 배송상품 인수시간 단축 △서브터미널에서 집화상품 인도시간 단축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택배기사 1인당 1주차장 보장, 우천시 상품 보호 시설 설치) △주 5일제 실시 △급지수수료 인상·개선 △사고부책 개선 등 6가지 의제를 단체교섭 의제로 내건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실질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을 통해 여러 가지 현장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은 이번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기로 했지만 1·2심에서 연거푸 패소한 것은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물론 기존 대법원 판례는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기업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아닌 것으로 본다.
CJ대한통운의 24일 낸 입장문에서 “기존 대법원 판례와 법리적으로 반하는 해석이다”며 “택배산업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올해 3월 임기만료를 앞둔 강 대표는 달갑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강신호 대표는 2021년 3월 대표이사로 선임된 뒤 택배요금 인상, 첨단물류기술 구현, 고마진 영업 등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으로 CJ대한통운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갱신해 온 인물이다.
CJ대한통운의 택배·이커머스 사업 부문은 2023년 3분기 영업이익 557억 원을 거뒀다. 2022년 3분기와 비교해 33.9% 늘어난 수치이자 전사 영업이익의 44.6%에 해당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강 대표는 임기 첫 해인 2021년 12월부터 시작된 택배노조의 총파업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택배노조는 처우개선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는데 CJ대한통운 본사사옥을 점거하고 이재현 CJ그룹 회장 자택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CJ대한통운은 2022년 초 택배노조의 총파업으로 홍역을 앓았다. 당시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본사 점거를 해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파업이 한창이던 2021년 1분기 CJ대한통운의 택배 물동량은 2020년 1분기와 비교해 10.5% 줄었다. 물론 CJ대한통운은 전년동기 대비 택배사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함께 늘었지만 이는 판가를 약 14.6% 인상한데 따른 것이다.
파업은 65일 만에 종료됐는데 이 때도 택배노조와 협상을 타결한 주체는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였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22년 3월18일 펴낸 보고서에서 “수년간 이어온 택배사와 대리점의 노력이 택배노조의 파업으로 무너질 뻔했다”며 “CJ대한통운은 2022년에도 택배단가 인상을 예고하며 실적 개선세가 이어질 것이지만 택배노조의 불확실성이 이러한 성과에 대한 정당한 가치평가를 가로막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었다.
일각에서는 택배노조가 소수의 택배기사들의 의견을 과잉 대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약 2400명이 노조에 소속되어 있다. CJ대한통운의 배송기사는 2만여 명으로 택배노조에 소속되지 않은 기사들이 훨씬 많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