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며 원전을 통해 전력 수요를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의 계획을 놓고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망 확충도 쉽지 않은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송전탑의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송전망 확충은 중요한 선결 과제로 꼽힌다.
하지만 송전망 확충을 위해서 새로운 인프라 건설에 따르는 자금 확보 문제를 비롯해 주민수용성 등 사회적 비용 문제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 보인다.
22일 전력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망은 포화 상태다.
수도권은 전력 수요가 많으나 상대적으로 지역 내 발전 규모가 적어 지방으로부터 전력 대부분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으로 지역별 전력자급률을 보면 서울은 8.9%에 불과하다. 전력자급률은 발전량을 판매 전력량으로 나눈 값에 100을 곱한 수치다. 전력자급률이 100%보다 낮을수록 외부 지역에서 전력을 끌어 온다는 의미다.
경기도 역시 전력자급률은 60.1%에 불과해 사용량의 절반에 가까운 전력을 외부 지역에서 공급받고 있다. 수도권의 전력 사용량은 부산 216.7%, 충남 214.5%, 인천 212.8% 등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에서 송전된 전력으로 충당된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선로는 현재 수요를 충당할 만큼은 연결돼 있다”며 “다만 앞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수도권의 전력 수요가 늘어나면 현재의 송전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 앞으로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용인 등 경기도 일대에 지어질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현재 수도권 전체 전력 사용량의 4분의 1인 10GW(기가와트)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송전망 확충과 관련해서는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인허가 일괄처리제를 도입해 건설기간을 30% 단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송전망 확충을 주도해야 할 한전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면 사업 진행이 녹록치 않을 수 있다. 한전은 지난해 2분기까지 아홉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보면서 누적된 영업손실 규모가 약 45조 원에 이른다. 계속된 영업손실에 대응하기 위해 한전채를 대량으로 발행하면서 부채가 2023년 말 기준으로 200조 원을 웃돌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전력계통 혁신 대책’을 통해 송전망 개발 방식에서 민간사업자의 참여 확대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산업부는 “송전시장 미개방 원칙하에 전력망 건설방식을 다양화 할 것”이라며 “건설 분야, 일부 사업에 한해 송전사업자와 민간 사이 협력을 확대하고 소유권과 운영권은 송전사업자에 귀속시키는 별도 제도기반 마련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송전망 건설에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산업부의 계획을 놓고는 한전의 자본조달 부담을 민간업체와 나누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해 7월에 공개한 송전시장 개방 관련 보고서에서 송전망 건설사업에서의 민간참여 확대를 놓고 “송전 요금이 소비자에 전가돼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선의 포화 정도가 심해지면 기술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16일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수도권이 지금 인구만 과밀 상태가 아니라 지금 송전선로도 사실상 밀집 상태”라며 “송전선로가 밀집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은 송전선로 간에 서로 간섭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송전선 사이 간섭과 관련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비판이라는 반박도 존재한다.
한전 관계자는 “전력선과 구리로 된 통신선이 긴 거리에 걸쳐 나란히 설치되는 등 특별한 상황에서는 송전선이 아닌 통신선에 간섭이 발생할 수 있으나 차폐 설비를 하는 등 대응을 한다”며 “특히 문제로 지적된 송전선과 송전선 사이 간섭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사실무근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 2014년 6월 밀양 송전탑 건설을 위한 행정대집행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
송전망 확충에 재정적, 기술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 가정하더라도 주민 수용성이라는 사회적 비용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송전탑과 송전선로 설치를 놓고 인근 지역의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08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10년 넘게 갈등이 이어지며 인명 피해로도 이어진 ‘밀양 송전탑 사건’은 송전망 건설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희생이 필요한지를 사회에 인식시킨 대표적 사례다.
올해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의 주요 제정 이유 가운데 하나도 ‘송전망 건설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해소’일 정도다.
여야 합의로 마련된 분산에너지 특별법 제정안을 보면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대하여 대규모 발전소 건설과 장거리 송전망 건설 등으로 대응하는 것은 지역 주민의 낮은 수용성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및 리스크 관리 취약 등 한계에 봉착하였으므로 분산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의 안정적이고 균형있는 공급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정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