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기동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이 친환경선박 개조사업에 속도를 붙이며 성장동력을 강화하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그룹 지주사 HD현대에 중요한 현금 유입원 가운데 하나인 데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의 경영승계 과정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친환경선박 개조사업의 성과는 그룹 차원에서도 중요한 사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이기동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이 친환경선박 개조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28일 HD현대마린솔루션 안팎에 따르면 이 사장은 글로벌 조선산업의 친환경선박 도입 확대 흐름에 발맞춰 다양한 친환경 연료 기술을 적용한 개조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2016년 HD현대중공업에서 분사해 출범한 선박 서비스 전문회사로 선박 정비, 수리, 개조 등 선박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사후 서비스사업을 하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친환경·디지털 솔루션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는데 특히 기존 선박을 친환경적으로 개조하는 사업에서 성과가 최근 가시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최근 공동개발 프로젝트(JDP) 형식으로 수행한 ‘메탄올 이중연료 추진 개조 설계’에 관한 기본인증(AIP)을 획득했다. 이 프로젝트는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이 운항 중인 1만6천 TEU급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HD현대마린솔루션은 전체적 시스템 구성과 기본설계 작업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에는 한국선급, HD한국조선해양 등이 함께 참여했다.
메탄올은 기존 선박유와 비교해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 온실가스 등 오염물질 배출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연료로 꼽힌다. 또 추가 설비 없이 보관과 선박 운송이 가능하다는 점도 차세대 친환경 연료로서 강점이다.
이 사장은 또 HD현대마린솔루션은 메탄올뿐 아니라 일반 화석연료보다 친환경성이 높은 액화천연가스(LNG)나 탄소 배출이 없는 암모니아 등의 연료추진 개조로 사업확장을 꾀하고 있다.
연료추진 개조뿐 아니라 설비 개조를 통한 친환경사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6월 노르웨이 선사 쿨코(COOL COMPANY LTD.)와 액화천연가스운반선 재액화설비 개조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액화천연가스운반선 재액화설비 개조공사를 수주한 것이다.
액화천연가스는 -163℃ 이하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극저온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열 유입을 차단하는 단열장치를 적용해 액화천연가스운반선 화물창을 제작한다. 하지만 열 유입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어 하루에 액화천연가스 화물의 약 0.15%가 자연 기화해 증발가스(BOG)가 발생하게 된다.
선박 운항 중에는 증발가스가 연료로 소모되지만 감속 운항 중이거나 정박 중인 상황에서는 증발가스를 소모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화물창 내부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증발가스를 대기로 배출하거나 연소시기켜 화물손실이 발생하고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재액화 설비는 증발가스를 다시 액화해 화물창으로 돌려주거나 자연 기화를 막기 때문에 화물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저감할 수 있다.
해운업을 향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에서 이 사장이 힘 주는 HD현대마린솔루션의 친환경 개조사업은 고객인 선사들의 호응을 얻을 잠재력이 크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2008년 배출량 대비 100% 저감한다는 목표를 정해 놓았다. 단계적으로 2030년까지는 20% 감축하기로 했다.
선사들로서는 친환경선박 교체를 통해 해운규제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선박의 가격과 길게는 30년에 이르는 선박의 수명을 고려하면 섣불리 친환경선박을 사들이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자금력이 약한 중소 선사들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HD현대마린솔루션이 공동개발 프로젝트로 수행한 '메탄올 이중연료 추진 개조 설계'에 대한 선급 기본인증서(AIP) 수여식이 진행됐다. (사진 왼쪽부터) 서흥원 HD현대이엔티 대표이사, 이기동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 김규봉 HMM 해사총괄, 남영준 HD한국조선해양 부사장, 김연태 한국선급 기술본부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HD현대마린솔루션>
이 때문에 친환경 개조를 통해 친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것도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친환경 개조사업은 HD현대그룹이 추구하는 친환경 선박사업과도 큰 틀에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HD현대마린솔루션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비상장사임에도 그룹 지주사인 HD현대의 중요한 현금 창출원 가운데 하나라는 중요성도 지니고 있다.
HD현대는 2021년과 2022년 각각 3922억 원, 3250억 원을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지급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지급한 배당금은 2021년과 2022년 각각 1900억 원과 800억 원이다.
HD현대가 지닌 HD현대마린솔루션 지분율이 62%라는 점을 고려해도 HD현대마린솔루션의 배당금이 HD현대 배당금의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HD현대마린솔루션은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의 경영승계 자금확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기선 부회장은 HD현대 지분율 5.26%를 쥐고 있는데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아버지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보유한 HD현대 지분(26.0%)을 넘겨받아야 한다. 이를 위한 증여·상속세 마련을 위해서는 상당한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HD현대의 배당금이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요긴한 수단으로 꼽힌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정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정당화하는 명분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회사 출범부터 성장까지 정 부회장이 관여한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지주사 HD현대와 조선부문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를 맡기 전 HD현대마린솔루션(당시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2018년 기자간담회에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기선 부사장이 2014년부터 강력히 주장해 세운 회사”라며 “스스로 책임지고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표이사를 맡겼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HD현대마린솔루션은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HD현대는 3분기 실적설명을 통해 내년 상반기 HD현대마린솔루션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증시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친환경 개조사업 등 성장동력을 부각시켜 기업공개시장에서 가급적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이기동 사장의 중요 과제라 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D현대마린솔루션의 상장 뒤 시가총액은 3조~4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대 주주인 사모펀드 운용사 KKR이 2021년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 차원에서 HD현대마린솔루션에 6500억 원을 투자할 때 인정받은 시가총액 수준은 약 2조 원이다.
이기동 사장은 상장을 통해 확보하게 되는 자금 상당 부분도 친환경 개조 등의 성장동력 사업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장이 회사 이름을 지금의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바꾼 배경에는 새로운 성장동력 사업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지난 11월 이사회와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기존 사명 HD현대글로벌서비스를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바꾸는 정관 변경 안건을 의결했다.
이 사장은 “이번 사명 변경을 기점으로 HD현대마린솔루션은 HD현대의 50년 동안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해양 산업을 위한 구심체 역할을 하며 더 큰 도약을 이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1961년 태어나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5년 현대중공업(현 HD현대)에 입사했다. 2012년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본부 상무에 오른 뒤 2012년 말부터 2015년까지 현대중공업과 미국 엔진 및 발전기기업 커민스의 공동 투자로 출범한 현대커민스엔진 대표이사를 지냈다. 2018년 11월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본부 사업대표(부사장)를 맡았다.
이 시장은 2020년 12월 현대글로벌서비스로 자리를 옮겨 정기선 부회장과 공동대표이사로 있다가 정 부회장이 2021년 11월 대표이사에서 사임하면서 단독대표로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