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은 2022년 3월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서 사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며 그룹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만 맡아 줄곧 '은둔의 경영자'로 지내왔다.
하지만 2023년 들어 그룹 계열사에 각종 법적·도덕적 리스크가 발생하자 11월부터 경영쇄신위원장을 맡아 일선에 복귀해 다시 회사 안팎의 목소리를 듣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11월6일 2차 비상경영회의에서 "창업자이자 대주주로서 창업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 위기 극복을 위해 앞장서 책임을 다하겠다”며 “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발로 뛰며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방침에 따라 김 위원장과 주요 경영진 20여 명이 매주 회의를 진행해 혁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룹 준법경영을 정착시키기 위한 외부전문가 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가 출범했고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서비스 개선작업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 카카오 크루유니언 노조원들이 12월4일 아침6시 경기 성남시 카카오아지트 3층에서 팻말시위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하지만 주요 경영진 회의가 비공개로 이뤄지는 데다 논의된 사항의 일부만이 공개되고 있어 여전히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정호 CA협의체 경영총괄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떤 쇄신안들이 주요 경영진 회의에 의제로 올랐는 지 공개하자 이를 처음 알게 됐다는 직원들이 있었을 정도다.
김정호 총괄에 따르면 △경영진 혹은 측근에 편중된 보상 △불투명한 업무 프로세스 △견제 없는 특정 부서의 독주 △특이한 문화와 만연한 불신과 냉소 △휴양시설과 보육시설 문제 △골프장 회원권과 법인카드 △대외협력비 문제 △데이터센터와 공연장 등 대형 건설 프로젝트 관련 비리 △장비의 헐값 매각 △제주도 본사 부지의 불투명한 활용 등이 카카오 경영에서 문제점으로 언급됐다.
이에 직원들은 '브랜든(김정호 총괄)을 응원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영 관련 내부 도덕성이 이 지경이 되도록 감추기에 급급했던 기존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나마 12월5일에는 김정호 총괄이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면서 직원들이 쇄신 과정에 대해 알 수 있는 창구마저 사라졌다.
이에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카카오 크루유니언)는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방식이 카카오를 망가뜨린 만큼 이제 비밀주의를 깨고 카카오 직원과 함께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혁신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요경영진 회의에 직원대표를 참여시킬 것 등을 요구했다.
서승욱 카카오 크루유니언 위원장은 12월6일 오전6시 카카오 본사에서 팻말시위를 진행하며 "결과적으로 현 사태의 원인은 경영진의 비밀 경영 방식에서 나왔다"며 "카카오는 예전부터 내부직원들이 참여했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만큼 과거의 좋았던 문화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2009년 겨울 강원도 홍천의 한 숙소에서 직원들과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카카오 블로그 갈무리>
이는 창업초창기 카카오의 기업문화였던 '신충헌' 원칙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신충헌이란 신뢰, 충돌, 헌신을 줄여 쓴 말이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마음껏 충돌하되, 결정된 사항은 충실히 따르고 헌신한다’는 카카오의 내부 원칙이다.
카카오 초기멤버인 박정호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수석부사장은 2010년 4월 카카오공식블로그에 남긴 회고 인터뷰에서 "카카오를 창업하던 시기 노트를 발견했는데 우리가 당시 가장 많이했던 질문이 '우리는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가'였다"며 "초기의 카카오 문화는 사실 경영진들보다는 당시 함께 하던 크루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3년 들어 카카오는 다양한 법적·도덕적 리스크에 휘말리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경영진은 올해 2월 SM엔터테인먼트 지분 인수전에서 주가조작 혐의를 받는다. 경쟁자인 하이브의 주식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주가를 공개매수 가격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경영진 6명을 수사하고 있다.
또 카카오모빌리티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분식회계 의혹을, 공정거래위원회부터는 독점지위 남용문제를 지적받았다. 11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카카오모빌리티의 독점지위 남용문제를 언급하며 '아주 부도덕한 행태'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현재 추진하는 쇄신작업이 성공하지 못하면 카카오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김범수 위원장은 "올해 안에 가시적인 방안을 내서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