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경 기자 strangebride@businesspost.co.kr2016-09-06 0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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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은 1958년 9월1일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에서 태어났다.
목사동초등학교와 순천 주암중, 광주 살레시오고를 거쳐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구용상 민주정의당 후보에게 “정치 똑바로 하라”며 항의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정치에 첫발을 내딛었다. 구 의원이 그를 비서로 채용한 것이다. 그는 민주자유당(현 새누리당)의 당 사무처 말단직인 ‘간사 병’을 맡았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의원선거에서 광주 광산구 제2선거구에 민자당 후보로 도전해 낙선했다. 이어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광주 서구을에서 출사표를 던졌으나 역시 낙선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 서구을에 또 낙선했으나 전남 순천·곡성 재보궐선거에서 49.4%의 득표율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는데 성공했다. 새누리당 후보로 호남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이정현은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3선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총선 때 인연을 맺어 박 대통령 당선 뒤에도 인수위원회 비서실 정무팀장,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홍보수석 등 핵심측근으로 활동했다.
이정현은 영남권 인사가 주를 이루는 새누리당에서 보기 드문 호남권 인사다.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현재의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30여년 가까이 당의 변천사와 함께 했다.
전당대회에서 2년 동안 당을 이끌 수장으로 선출됐다. 총선참패 책임론으로 격론이 벌어진 전당대회에서 박 대통령과 의리를 지키며 친박계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2016년 12월 박근혜게이트로 인한 새누리당 지지율 급락에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언변이 좋다. 특기가 연설이다.
홍보전문가로 잘 알려져있다. 박 대통령이 제 17대 총선에서 광주시에 출마해 낙선한 이정현에게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라고 말했다.
당 수석부대변인에도 발탁됐고 2007년 대선 경선과 18대 대선에서는 박 후보의 공보 업무를 맡았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면서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팀장, 초대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역임했다.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새누리당으로서는 기록하기 힘든 호남 득표율 10%이상을 기록하며 지역주의 혁파를 보여줬다. 이는 지역주의 구도로 이뤄진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이정표를 찍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정현은 영남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새누리당에서 호남 출신으로 과거 민정당 시절부터 당직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정현의 동료 의원과 당직자들은 그를 의리가 있고 성격이 밝다고 평가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조성태 의원과 함께 ‘라이스버킷 챌린지’ 미션을 수행했다. 이정현은 당적은 다르지만 야당 의원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정현은 순천KBS가 전남 동부지역 현안에 대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남 동부지역 국회의원 중 의정활동을 가장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공보특보를 맡으며 '원조 친박'으로 전면에 나섰다.
박근혜의 대변인 격이다. 이정현은 '의원 박근혜'의 곁을 오랫동안 지켜와 박 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하든 맥락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박 대통령의 10여 년간 어록을 모두 정리해 외우다시피 한다. 그는"(대통령 당선 전) 박 전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눈물지었던 것은 총 네번"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이정현의 무조건적 친박행보 때문에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내보이기도 했다.
이정현은 자전거 유세로 시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4년 7.30 재보선이나 2016년 4.13 총선에서도 그는 배낭유세·자전거 유세로 새누리당에 차갑던 호남민심을 사로잡았다. 선거 초창기 열세였던 여론조사를 뒤집고 승리한 데는 꾸준한 민심행보와 소통이 바탕이 됐다.
2016년 9월에도 여의도 국회 근처 한강 둔치로 나가 연을 날리고 자전거를 타며 시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새누리당 대표로 취임한지 2주가 지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그의 취약성을 공격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바람론’에 대하여”라는 논평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식물대표'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대통령과 격의 없는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취임 2주가 지난 이정현 대표와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민들의 관심사인 청문회 증인 채택 문제, 세월호 문제 등 시급한 현안문제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우병우 민정수석,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말 한마디조차 못하고, 서별관 청문회 증인 채택문제는 정권실세 눈치 보기에 급급해 야당 탓만 하고 있다. 현안문제에 입을 닫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지도부에게서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모습은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다”고도 꼬집었다.
당 대표는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구조이지만 당 대표로서 이제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에서 호남출신인 이정현의 ‘예산폭탄’ 공약을 비판한 적이 있다. 새민련은 정치적 거점을 호남에 두고 있는 이정현을 잠재적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봤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4년 구용상 전 전남도지사의 비서를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담당관으로 임명됐다.
1995년 광주 시의원 지방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제16대 대선 한나라당 이회창후보 선거대책위원전략기획단 단장과 제16대 총선 한나라당 미디어기획단 단장을 역임했다.
1999년부터 한나라당 중앙정치연수원 교수로 재직했다.
2001년부터 한나라당에서 산업자원 전문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 전문위원, 정책개혁특위 정치분과지원팀 팀장, 정세분석팀 팀장 등을 맡았다.
그 뒤에도 여의도연구소 기획팀 팀장, 대변인행정실 자료분석팀 팀장, 자유를 위한 행동이사, 대통령리더십연구소 기획이사, 한나라당 중앙당 정책기획전략단 단장 등을 거쳤다.
2004년 4월 제17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광주 서구을에서 낙선했다.
2008년 6월 한나라당 비례대표 22번으로 제18대 국회의원이 됐다. 제18대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같은 해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에 임명됐다.
2010년 6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제18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같은 해 5월부터 새누리당 지명직 최고위원을 맡았고 같은 해 9월부터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공보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2013년 1월부터 2월까지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 팀장을 맡았다.
2013년 2월부터 6월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2013년 6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비서관을 맡았다.
2014년 7월 31일부터 2015년 5월29일까지 제 19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해 당선돼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4년 8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새누리당 최고위원(지명직)에 선출됐다.
2016년 8월 새누리당 당대표에 올랐다.
2016년 12월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 학력
1971년 목사동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순천 주암중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8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 1985년 졸업했다.
◆ 가족관계
부인 김민경씨와 연애결혼을 해 1남1녀를 뒀다.
◆ 상훈
2008년 국정감사 NGO 모니터 선정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13년 3월 동국대 총동창회로부터 자랑스러운 동국인상을 받았다.
2014년 서울시문이 주최하는 제6회 서울 석세스 대상 정치부문정치혁신대상을 받았다.
2014년 매경미디어그룹과 통일문화연구원이 주최하는 제8회 통일문화대상 대상을 받았다.
2015년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대상 의정대상을 받았다.
2015년 대한민국 혁신경영 정치혁신 부문대상을 받았다.
2015년 THE300국감스코어보드 산업위 중간평가 1위에 올랐다.
2015년 대종상 명예조직위원장으로 위촉됐다.
2015년 NGO 국정감사 우수의원상을 받았다.
2015년 한국유권자연맹 국감 최우수의원상을 받았다.
◆ 상훈
2008년 국정감사 NGO 모니터 선정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13년 3월 동국대 총동창회로부터 자랑스러운 동국인상을 받았다.
2014년 서울시문이 주최하는 제6회 서울 석세스 대상 정치부문정치혁신대상을 받았다.
2014년 매경미디어그룹과 통일문화연구원이 주최하는 제8회 통일문화대상 대상을 받았다.
2015년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대상 의정대상을 받았다.
2015년 대한민국 혁신경영 정치혁신 부문대상을 받았다.
2015년 THE300국감스코어보드 산업위 중간평가 1위에 올랐다.
2015년 대종상 명예조직위원장으로 위촉됐다.
2015년 NGO 국정감사 우수의원상을 받았다.
2015년 한국유권자연맹 국감 최우수의원상을 받았다.
어록
"1년 시한으로 국민위원회를 설치해 혁명적인 국회개혁에 나서자." "헌정 70년 총정리국민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지난 1985년 이후 30년 넘게 여의도 정치를 지켜봤다. 30년간 정치개혁특위가 만들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국회는 한번도 제대로 개혁된 적이 없고 국민의 국회에 대한 신뢰는 10%도 안된다.” (2016/09/05,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안타깝게도 (사드 배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가 겪어야 할 우리의 서글픈 숙명." “단지 표를 얻기 위해 미래세대의 돈을 훔쳐 무상복지를 실시하겠다는 일부 정치인의 경솔함에 회초리를 들어달라.” (2016/09/05,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당 대표 취임 전 '중소기업·소상공인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중소기업 성공버스에 올라 전국을 누비며 중소기업의 현안을 현장에서 청취하고 발로 뛰며 해결하는 등 중소기업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향후 경제성장률 둔화, 높은 실업률 등 국가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고용'과 '수출'에서 성장엔진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고질적 문제를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해결하겠다." (2016/09/01, 중소기업중앙회가 개최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중소기업인 현장 간담회’에서)
“소방서 직원 300명 근무하는 기관의 1년 물품 등 비품 구입비가 500만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접하고 놀랐다.” “경찰은 법치와 질서의 상징이다. 이들이 폭행 등을 당하는 것은 국민이 폭행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 (2016/08/28, 서울 마포소방서와 관악경철서 봉천지구대를 방문해 휴일 근무 중인 관계자들을 격려하면서)
"곡식과 과일을 여물게 하는 것에는 눈에 보이는 해·구름·비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있는 법."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작용을 하고 있다." (2016/08/24,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비박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 야당의 시각과 여당의 책임으로 민생을 위한 정책과 예산을 반영하겠다, 국민의 신뢰를 찾아 내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겠다.” (2016/08, 새누리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것을 보라. 이제 내년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계파 청산이 급선무가 됐다. 친박의 대표, 비박의 대표를 뽑는 게 문제가 아니라 되도록 많은 사람이 나와서 자신 있게 혁신의 의지를 내보이는 게 보수당이 재집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16/08/17, 한 매체와 단독 인터뷰에서)
“저는 호남에 완전하게 기반을 두고 있는 호남사람이다. 부모님이 아직도 호남에 살고 계신다. 헌정 이래 최초로 보수 정당에 호남 출신이 대표가 됐다. 호남의 정서와 현안이 야당의 회의석상뿐만 아니라 여당의 회의석상의 주메뉴로 오를 수 있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전개될 거다. 그동안 호남 사람이 섭섭하게 느끼고 있었던 정서, 현안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겠다.” (2016/08/17, 한 매체와 단독 인터뷰에서)
“저는 정말 철저한 비주류였고, 엘리트도 아니었고, 12가구 사는 깡촌에서 나고 자라 여기까지 왔다. ‘무수저’로 여기까지 올라온 저를 보고 모두가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비록 거위처럼 뚱뚱하고 크지만 창공을 날았으면 한다. 꿈을 꿨다면 한번 날아보자. 이정현이 50년 지역주의를 깨지 않았나? 무엇이든지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한번 해보자.” (2016/08/17, 한 매체와 단독 인터뷰에서)
“정치인이 민생현장을 방문한다고 하면서 카메라를 대동하는 ‘보여주기’식 정치는 이제 허물어야 한다.” (2016/08/12, 한 기자와 통화에서)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 대통령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2016/08/09,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서)
"할머니는 아버지 어머니와 또 다르게 사랑으로 아이를 돌봐 준다. CCTV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부담을 덜 줄뿐 아니라 어르신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 (2015/01/19, 어린이집 폭행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저는 84년부터 국회주변과 정치권에서 일을 해왔다. 그동안 정치권과 국회는 거의 한 해도 빠짐없이 정치개혁과 정치쇄신과 정치혁신을 스스로 주장해왔다. 그런데 84년 때 주장되었던 그러한 정치혁신, 쇄신, 개혁이 지금도 그대로 똑같이 반복해 요구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치권이 외부로부터 정치권에 대한, 또는 국회에 대한 개혁과 혁신의 물결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벽으로 그러한 위원회, 개혁, 혁신을 입버릇처럼 주장하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뭔가 달라지고 변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매우 개탄스럽다.” (2014/12/18,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 놈이 호남에서 19년 동안 네 번씩이나 출마를 하고 호남 놈이 새누리당에서 30여 년을 활동하고 있으니 어느 쪽에서도 나는 늘 근본없는 놈 취급받았다." (2014/12/09, 청와대에서 유출된 정윤회 동향 문건에서 정 씨가 자신을 평가절하했다는 내용이 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
"빈 총도 맞으면 기분 나쁘다" "기분이 영 거시기하다." (2014/12/09, 청와대에서 유출된 정윤회 동향 문건에서 정 씨가 자신을 평가절하했다는 내용이 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했다. 우리 국회가 무슨 낯으로 세비 인상안에 스스로 동의한단 말이냐" "이것은 염치의 문제이고 양심의 문제다." (2014/10/01, 국회의원 세비인상을 반대한다며)
"이렇게 미치도록 고향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저 이정현, 이 손 한번 잡아주십시오." "호남에서 세 번 울었고 저 네 번째 또 도전합니다. 저 이정현 호남 외에 갈 곳이 없습니다."(2014/07/29, 7·30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를 하루 앞두고 마지막 방송연설에서)
“민주화의 성지가 광주라면 나는 동서화합의 성지가 순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산 폭탄을 퍼부을 자신이 있다." (2014/06/30, 7·30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 출마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며)
"국민이 대통령과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을 못한다면 정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 (2014/01/14,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 평가
언변이 좋다. 특기가 연설이다.
홍보전문가로 잘 알려져있다. 박 대통령이 제 17대 총선에서 광주시에 출마해 낙선한 이정현에게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라고 말했다.
당 수석부대변인에도 발탁됐고 2007년 대선 경선과 18대 대선에서는 박 후보의 공보 업무를 맡았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면서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팀장, 초대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역임했다.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새누리당으로서는 기록하기 힘든 호남 득표율 10%이상을 기록하며 지역주의 혁파를 보여줬다. 이는 지역주의 구도로 이뤄진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이정표를 찍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정현은 영남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새누리당에서 호남 출신으로 과거 민정당 시절부터 당직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정현의 동료 의원과 당직자들은 그를 의리가 있고 성격이 밝다고 평가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조성태 의원과 함께 ‘라이스버킷 챌린지’ 미션을 수행했다. 이정현은 당적은 다르지만 야당 의원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정현은 순천KBS가 전남 동부지역 현안에 대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남 동부지역 국회의원 중 의정활동을 가장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공보특보를 맡으며 '원조 친박'으로 전면에 나섰다.
박근혜의 대변인 격이다. 이정현은 '의원 박근혜'의 곁을 오랫동안 지켜와 박 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하든 맥락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박 대통령의 10여 년간 어록을 모두 정리해 외우다시피 한다. 그는"(대통령 당선 전) 박 전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눈물지었던 것은 총 네번"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이정현의 무조건적 친박행보 때문에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내보이기도 했다.
이정현은 자전거 유세로 시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4년 7.30 재보선이나 2016년 4.13 총선에서도 그는 배낭유세·자전거 유세로 새누리당에 차갑던 호남민심을 사로잡았다. 선거 초창기 열세였던 여론조사를 뒤집고 승리한 데는 꾸준한 민심행보와 소통이 바탕이 됐다.
2016년 9월에도 여의도 국회 근처 한강 둔치로 나가 연을 날리고 자전거를 타며 시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새누리당 대표로 취임한지 2주가 지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그의 취약성을 공격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바람론’에 대하여”라는 논평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식물대표'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대통령과 격의 없는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취임 2주가 지난 이정현 대표와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민들의 관심사인 청문회 증인 채택 문제, 세월호 문제 등 시급한 현안문제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우병우 민정수석,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말 한마디조차 못하고, 서별관 청문회 증인 채택문제는 정권실세 눈치 보기에 급급해 야당 탓만 하고 있다. 현안문제에 입을 닫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지도부에게서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모습은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다”고도 꼬집었다.
당 대표는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구조이지만 당 대표로서 이제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에서 호남출신인 이정현의 ‘예산폭탄’ 공약을 비판한 적이 있다. 새민련은 정치적 거점을 호남에 두고 있는 이정현을 잠재적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봤다.
◆ 기타
좌우명은 대공심대공심(大空心大公心)이다. 뜻은 크게 비우고 크게 봉사하는 마음이다.
2011년 자전적 에세이인 '진심이면 통합니다'를 냈다.
이정현은 1982년 육군병장으로 병역을 마쳤다.
이정현은 2004년 1%에도 못미치는 득표율로 제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직후 위로연에서 “호남을 차별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로 박근혜 당 대표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