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비아파트총연맹 관계자들이 11월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주거시장 안정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30대 김모씨는 최근 재계약을 앞두고 살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고민이 많다.
보안 및 편의성을 생각해서 오피스텔 위주로 알아보고 있으나 전입신고 금지를 조건으로 내세운 물건이 많아 혹시라도 보증금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일어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집주인이 전입신고를 막아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시민이 되지 못해 불편을 겪는 임차인이 적지 않다. 특히 최근 전세사기 사태에서 오피스텔 등 다가구주택에 거주한 세입자들이 피해 구제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임대인인 소유주들 역시 오피스텔이 세제 등 불리한 처지에 놓여있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오피스텔 관련 제도 개선 목소리가 떠오르는 이유다.
26일 업계 및 정치권에 따르면 임대인과 임차인을 가리지 않고 오피스텔 관련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빌라와 오피스텔, 생활숙박시설(레지던스) 소유주들은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최근 전국비아파트총연맹을 결성했다. 이들은 30일 부산 남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본사 앞에서 오피스텔 및 다가구 주택 관련 법안 정비를 요청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총연맹은 건축법과 주택법상 업무시설로 규정돼 있는 오피스텔을 주택으로 취급해 과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교진 전국비아파트총연맹 부회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오피스텔이 주택과 업무시설 사이에 껴 불이익만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택이 갖고 있는 패널티는 부과해놓고 주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택이 받을 수 있는 혜택에서 계속 배제를 한다면 2020년 8월 이전으로 법을 돌려놓으라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며 “2020년 여당에서 충분히 논의를 하지도 않고 오피스텔 가격이 오른다고 급하게 만들어 놓은 법 때문에 부작용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장 부회장은 국민의 주거 사다리적인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가 정부의 미흡한 제도 개선 탓에 고사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서민 주거 형태인 일정 면적 이하 주택의 주택숫자 합산 배제 검토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논의됐던 문제”라며 “정부는 이미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음에도 해당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잘 나가는 아파트에겐 혜택을 주고 못 나가는 비아파트에게는 패널티만 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덧붙였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11월2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오피스텔 임차인들은 임대인보다 관련 제도 개선이 더욱 절실하다. 당장 전세사기 피해 구제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또한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오피스텔 관련 제도의 맹점 등으로 인해 구제를 받지 못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비주거용 오피스텔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기가 사실상 어렵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대출이 제한돼 보증금을 모두 잃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낙찰을 받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단비 부산 전세사기대책위 위원장은 “명백한 ‘주거용’인데도 건축물 대장상엔 ‘업무용’으로 표기된 오피스텔도 특별법 지원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며 “전세사기 피해자가 건물을 낙찰받게 될 경우 해당 건물의 주택용도를 변경하고 그에 따른 비용 지원을 해달라”고 말했다.
오피스텔은 주택법과 세법의 혼란으로 인해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주택법상 오피스텔은 준주택으로 취급되는데 이 탓에 주택으로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특례보금자리론은 주택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오피스텔 소유자는 해당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이러한 법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책 가운데 하나로 전세사기 피해자 특례보금자리론을 마련했다. 그러나 수원 전세사기 피해 거주 형태의 26%를 차지하는 오피스텔 거주 피해자는 주택법상 준주택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전세사기 피해자 특례보금자리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업무용 오피스텔과 주거용 오피스텔이 다른 세법의 적용을 받는 것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업무용 오피스텔은 주택 수에 포함이 되지 않지만 주거용 오피스텔은 주택 수에 포함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0년 8월부터 주거용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포함하고 주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입신고를 한 경우 이를 주택으로 간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결국 임차인이 자신의 보증금 보호 등을 위해 전입신고를 하게 되면 임대인은 자동적으로 내야할 세금이 늘어나는 구조가 됐다.
임차인의 전입신고로 주거용 오피스텔로 용도가 변경되면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가 부과된다. 기존에 주택을 갖고 있었다면 다주택자가 되면서 양도세 계산 때 주택 수가 늘어나 중과세가 되며 추가 주택을 취득할 때의 취득세 부담도 늘어난다.
이 때문에 임대인들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입신고 불가를 조건으로 매물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네이버 부동산의 오피스텔 매물을 살펴보면 용도가 업무용인 오피스텔들이 전입신고 불가를 내걸고 다른 매물보다 저렴하게 나와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집주인들의 편법 속에서 전입신고를 금지당한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못 받을 가능성을 감수하고 이러한 집을 찾아 들어가고 있다. 전입신고가 되지 않는 대신 주변 시세보다 확연히 저렴하게 나오는 특성상 위험성과 불법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러한 물건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앞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8월29일 약 9개월 만에 개최한 주택공급혁신위원회에서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형태가 주거 사다리로 쓰일 수 있다”며 “정형화된 아파트 정책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실수요자 보호, 주거 사다리 지원으로써 정비할 부분이 없는지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해 오피스텔 관련 정책 개선 기대감을 높인 바 있다.
다만 그는 9월17일 SBS 8시뉴스에 출연해 공급 대책 관련 주거용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서 제외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다주택자들이 집을 더 사도록 하는 정책은 배제했다”며 “이번에는 포함이 안 된다”며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비아파트에 주택도시기금 대출 지원을 확대한다고 10월17일 밝혔다.
이번 조치로 민간사업자가 비아파트를 분양하게 되면 호당 최대 75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게 변경됐다. 다가구·다세대·도시형생활주택에는 3.5%, 오피스텔에는 4.7%의 금리가 적용된다. 다만 공급 대책이 아닌 기존 주택 제도 개선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