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023년 11월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복구를 위한 현장점검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정부의 행정전산망 마비로 곳곳에서 큰 혼란이 발생하면서 기술력 있는 대기업이 공공 IT 시장에 다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SDS, LGCNS, SKC&C 등 SI(시스템통합) 대기업들은 2013년부터 공공시장 진입이 제한됐는데 최근의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에 분위기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중견 SI기업들이 대기업의 진입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저가수주가 만연한 공공사업의 특성상 제도가 바뀌되더라도 대기업의 참여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6일 IT업계 따르면 초유의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기업이 공공 IT 시장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는 행정전산망이 17일부터 19일까지 마비된 것에 이어 23일에는 조달청의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 오류가 생겨 1시간가량 먹통 상태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2013년 정부는 공공 IT 서비스 시장을 대기업이 독점한다는 이유로 자산 규모가 5조원이 넘는 대기업의 공공 서비스 참여를 일부 예외 항목 외에는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당시 삼성SDS, LGCNS, SKC&C 등 대기업이 공공 IT 시장을 독점해 중소·중견 SI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으로 대기업참여제한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공공 전산망 품질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아 정부 행정전산망이 3일 동안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새올행정시스템은 연매출 200억 원 규모의 중소 IT업체가 구축했고 유지보수도 중소업체에서 진행했다.
정치권에서도 대기업의 공공 IT 사업 참여 제한을 완화하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1일 “국가기관 전산망의 경우 기술력이 높은 대기업 참여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법의 취지와 달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술 격차가 줄지 않고 중소업체가 구축한 공공전산망은 이따금 마비 사태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정부의 2023년 공공부문 IT분야 예산은 약 6조2239억 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삼성SDS, LGCNS, SKC&C 등이 이 시장에 다시 진출할 수 있다면 큰 폭의 매출 확대를 기대해볼 수 있다.
▲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2023년 11월17일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무인민원발급기에 시스템 에러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
특히 삼성SDS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SDS는 2012년까지 공공 IT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2013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개정되자 대기업 참여제한 예외사업(국가안보, 신기술)에서 영업을 지속하던 LGCNS, SKC&C와 달리 공공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하지만 삼성SDS는 2019년 7월 행정안전부가 추진한 ‘차세대 지방세정보시스템구축 1단계 사업’으로 공공 IT 시장에 복귀했다. 당시 차세대 지방세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은 약 1608억 원 규모였다.
그 뒤로도 노후화된 기획재정부의 예산회계시스템 현대화 사업을 수주하는 등 공공 IT 시장에서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왔다.
정부는 현재 1천억 원 이상 공공 IT 사업에 대해서는 대기업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6월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과 대·중·소 SI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공공 IT 시장에서 대기업의 참여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제도 변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놓고 중소기업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대기업도 결국 중소기업에 재하청을 맡기기 때문에 대기업이 참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중견 SI업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 7월에 열린 ‘공공소프트웨어(SW) 산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공공 IT 품질에 대기업 참여 여부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대기업이 수주한 사업에서도 오류가 발생한 적이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삼성SDS가 2011년 개발한 3세대 나이스(NEIS)는 대규모 오류를 낸 적이 있고 2022년 LGCNS가 참여했던 보건복지부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도 오류가 발생했다.
대기업이 공공 IT 사업에 참가할 유인이 적다는 분석도 있다.
공공 분야는 정부의 부족한 예산으로 저가수주가 만연해 있고 1천억 원 이상의 사업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1천억 원 이상의 사업은 전체 공공 IT 사업에서 6.5%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정부에 1천억 원 제한을 500억 원 이하로 낮추는 방안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협회 부회장은 올해 6월 ‘공공SW사업 정당대가 실현방안 국회 토론회’에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세 번의 예산 인상이 있었지만 아직도 예산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표준시장단가(FB단가)를 준수해 정당한 수준의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