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에코프로그룹이 양극재사업의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공급망 강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이사 사장은 그룹 총수 공백과 2차전지 업황 악화 등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원료와 중간소재 확보, 폐배터리 재활용 등의 과정으로 이뤄진 순환체계를 그룹 내부에 구축해 이익체력을 높이는 데 경영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이사 사장이 양극재 공급망 내재화를 서두르고 있다. <에코프로>
21일 에코프로그룹 안팎에 따르면 주력인 양극재 분야의 생산능력 확대 속도에 발맞춰 중간소재와 원료 조달 능력을 강화하는 데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전구체 생산 계열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기업공개를 통해 4천억 원 이상을 확보해 생산능력을 확대에 필요한 투자 여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전구체는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의 원료들을 혼합한 화합물로 양극재 제조과정에서 양극재가 되기 바로 전 단계의 물질이다. 양극재의 종류에 따라 전구체에 투입되는 원료의 종류와 구성비가 달라진다.
양극재는 2차전지 제조 원가의 4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가운데 핵심으로 꼽힌다. 그런 양극재 가운데 전구체가 제조 원가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2차전지 가치사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전구체는 2차전지 가치사슬에서 중간소재에 해당하지만 제조원가만 놓고 보면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나머지 최종 소재와 비교해 오히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에코프로그룹과 같이 양극재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으로서는 전구체 내재화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시장 지위를 확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도 전구체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양극재업체들이 양극재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전구체 공급은 이를 따라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혜영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양극재 1만 톤 당 전구체 8천 톤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전구체의 수요 대비 공급 부족은 현재 31만4천 톤 수준에서 2026년 70만7천 톤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 모두 중국을 견제하는 공급망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전구체 자급률을 강화하며 각국의 정책기조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에코프로그룹은 전구체 제조 계열사인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기업공개를 매듭지으며 전구체 증설을 본격화할 수 있게 됐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공모를 통해 4192억 원을 확보했다. 공모 자금 대부분은 공장 증설과 생산장비 확보에 투입될 예정이다. 일부는 친환경 원재료 매입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된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증설을 통해 현재 연산 5만 톤 수준인 전구체 생산능력을 2027년까지 연산 21만 톤으로 확대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하는 5위권 전구체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다.
이렇게 양극재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공급망을 구축해 경쟁력 강화를 꾀하는 것은 에코프로그룹 창업자인 이동채 전 회장의 경영 전략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에코프로그룹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양극재만으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양극재 가치사슬의 외연 확장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양극재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을 100으로 봤을 때 원료 광물 30을 제외한 60~70은 자체적으로 통제할 힘을 갖춰야 한다는 이 전 회장의 구상 아래 에코프로그룹은 5조 원 매출에 15% 영업이익률 달성이라는 ‘5·15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 1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유가증권시장 상장기념식에서 관계자들이 현재가 확인 후 기념 촬영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박종환 에코프로이엠 대표, 김윤태 에코프로이노베이션 대표, 이승환 에코프로 미래전략본부장, 김병훈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대표,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 이재훈 에코프로파트너스 대표, 박석회 에코프로씨엔지 대표, 허태경 에코프로에이피 대표. <에코프로>
다만 에코프로그룹은 이 전 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총수 부재 상황에 놓여 있다. 창업자이자 대주주(에코프로 지분율 18.8%)인 이 전 회장의 공백은 중요한 경영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주사 에코프로의 수장인 송호준 사장으로서는 총수 공백에 따른 경영 차질을 최소화하며 이 전 회장의 구상을 실현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송 사장은 총수 부재뿐 아니라 양극재업황 악화라는 악재도 맞고 있다.
에코프로는 전방산업인 전기차 수요 둔화와 리튬을 비롯한 원료 가격 하락에 따른 부정적 시차효과(래깅) 탓에 출하량 둔화와 마진 축소로 지난해보다 올해 영업이익이 크게 후퇴했다. 이에 그동안 양극재업체의 성장성에 주목하던 주식시장에서는 양극재산업의 성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나오고 있다.
송 사장은 악재가 중첩된 어려운 상황에서 양극재 가치사슬 내 공급망 역량을 계속해서 강화해 나가며 이익체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간소재인 전구체뿐 아니라 그 앞 단계의 원료 확보를 위한 기반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직접적으로 원료 광물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원료 광물을 조달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코프로그룹 내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기업 에코프로씨엔지 역시 양극재, 전구체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을 마련해 두고 있다.
에코프로씨엔지는 현재 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원재료 광물 생산 능력을 연산 3만 톤 규모에서 2027년까지 6만1천 톤 규모로 늘린다는 목표를 정해 놓았다. 특히 원료 회수율이 높은 습식공정을 도입해 기술력에서도 경쟁사와 차별화를 꾀한다는 복안이다.
에코프로그룹은 SK에코플랜트, 테스 등과 손잡고 헝가리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송호준 사장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SK에코플랜트 수송동 본사에서 박경일 SK에코플랜트 사장, 테렌스 응 테스 회장 등과 ‘헝가리 배터리 재활용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에코프로그룹은 SK에코플랜트, 테스와 손잡고 유럽 지역에서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첫 실행 계획으로 헝가리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건설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송호준 사장은 업무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에코프로는 폐배터리 리사이클부터 양극재 생산까지 배터리 생태계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순환체계(클로즈드 루프 시스템·Closed Loop System)을 구축해 차별화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