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가 큐텐과 진행하던 11번가 매각이 사실상 결렬되면서 매각을 주도하던 박성하 사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 사장은 당초 SK스퀘어가 지분 80.3%를 보유한 11번가의 상장을 검토했지만 이커머스 사업의 성장이 다소 둔화되고 적자가 지속되면서 상장이 여의치 않자 지분 매각으로 선회했다.
11번가는 2023년 2분기 267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에 이어 3분기에도 325억 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11번가의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910억 원에 이른다.
SK스퀘어와 큐텐의 협상이 무산된 것은 11번가의 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시각차 때문이다.
SK스퀘어는 11번가의 성장성을 이유로 100% 지분의 가치를 약 1조 원 정도로 평가하고 있지만 큐텐은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큐텐은 과거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 국내 이커머스 3곳을 인수하면서도 시장에서 거론되던 것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매수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SK스퀘어 측에서는 계약상 비밀유지조항에 따라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다른 인수자를 급하게 찾고 있다.
11번가는 2018년 SK플래닛에서 분사하면서 국민연금·새마을금고·H&Q코리아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지분 18.18%를 매각하고 5천억 원을 투자받았다. 당시 5년 안에 기업공개(IPO)를 한다는 약정도 맺었다.
따라서 만일 SK스퀘어가 약속한 기간에 11번가를 상장하지 못하고 지분매각도 실패한다면 재무적투자자(FI)들은 드래그얼롱(동반 매도 청구권)을 통해 자신들의 11번가 지분과 함께 SK스퀘어가 보유한 지분까지 시장에 팔 수 있다. 즉 SK스퀘어의 의지와 상관없이 11번가의 강제매각이 진행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11번가의 새로운 인수 후보로는 미국 아마존과 중국 알리바바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아마존은 11번가와 해외 직구 서비스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운영하며 전략적 협업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11번가 인수 후보자로 꼽혀왔다.
게다가 SK스퀘어는 최근 아마존과 11번가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아마존과 11번가의 협업이 아직까지 유의미한 거래액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 시너지 부분에서는 아직 확신을 갖기 어려운 시점이다.
중국 알리바바도 최근 해외 직구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를 통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어 11번가에 관심이 큰 것으로 파악된다.
▲ 11번가 로고.
알리익스프레스는 올해 10월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 613만 명으로 쿠팡, 11번가에 이어 이커머스 애플리케이션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가격과 상관없이 모든 상품을 무료로 5일 내에 배송하는 전략으로 국내 고객들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알리바바는 큐텐이 11번가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적극적으로 11번가 인수 의지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SK스퀘어가 11번가 인수자를 찾는 데 끝내 실패한다면 콜옵션을 행사할 수도 있다.
SK스퀘어는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지분 18.18%를 5천억 원에 연이율 3.5%의 이자를 적용해 5938억 원으로 다시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을 올해 12월까지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SK스퀘어는 올해 들어 잉여현금흐름(FCF)이 순유출 상태인 만큼 6천억 원에 가까운 자금을 단기간에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SK스퀘어는 이미 다른 인수후보자들과 접촉하며 빠르게 ‘플랜B’를 가동하기 시작했다”며 “시간이 촉박한 만큼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