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차 미국기후평가보고서(The Fifth National Climate Assessment)를 발표하는 아라티 프라바카르 미국 대통령 과학고문. <백악관>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기후변화로 자국 식량 생산력이 급감하고 있다며 2050년경에 세계적 식량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세계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추세대로 기후변화가 이어진다면 인류의 주식인 쌀, 밀, 콩, 옥수수 등 주요 작물의 생산량 급감이 곡물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14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산하 미국지구변화연구프로그램(USGCRP) 제5차 미국기후평가보고서(The Fifth National Climate Assessment)를 발표하며 미국이 연간 1500억 달러(약 195조 원)가 넘는 극심한 기후피해를 입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지구변화연구프로그램은 미국 의회 산하에 설치된 기관이나 연방정부 산하 국방부, 에너지부, 농무부, 미연방항공우주국 등 14개 기관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구성한 부처간 태스크포스(TF)다. 보고서의 발표는 미국 백악관에서 맡았다.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연방 정부가 매해 197조 원에 달하는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보고했다. 3주 마다 1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기후변화가 미국의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보고서는 미국 중서부의 농업, 동부 해안의 어업은 물론 스키 리조트 등 관광업까지 전체 경제활동이 기후변화로 타격을 피할 수 없다면서 세수 감소 가능성도 제기했다.
기후변화가 식량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다룬 보고서 제2장은 미국 내 식량 생산량 감소 문제가 미국을 넘어 세계 식량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했다.
이미 미국의 농업 생산량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1961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이 누렸어야 할 식량총생산(TFP) 성장세를 12% 감소시켰다.
같은 기간 미국 식량총생산 연간 성장률은 평균 1.4%였는데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누적 성장률은 70%를 넘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이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에는 식량총생산이 1980년대 이전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와 비교해 미국밀 생산량은 36%, 쌀은 61%, 콩은 19%, 옥수수는 5.5%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량 감소의 주요원인으로는 토양환경의 변화, 폭염, 가뭄, 작물 재배가 가능한 지역의 변화 등이 지목됐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주요 식량 생산지대인 중서부 일대의 토양 환경 변화가 생산량을 크게 줄일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중서부 식량 생산자들은 대부분 기업형 농장들이다. 이들은 주요 작물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재배하는데 이와 같은 생산 방식은 토양 환경 변화에 따라 생산량이 급격하게 달라진다.
이미 미국 중서부는 최근 극단적으로 변한 가뭄과 홍수로 인해 토양 내 이산화탄소나 질소 농도가 크게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농부들이 신형 농기계나 비료를 도입해 농업 생산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농업 생산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 효율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그래프. 온실가스 배출(갈색)은 증가하는데 온실가스 배출 대비 농업 생산량(붉은색)은 줄어들고 있다. <미국지구변화연구프로그램(USGCRP)> |
주요 작물 재배 가능 지역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바뀌고 있는 현상도 밀 생산량에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농무부(USDA)는 식량 생산자들이 작물 재배에 참고할 수 있는 ‘식물 내한성 지역(plant hardiness zone)’을 매년 발표한다.
지역별 최저 기온에 따른 특정 식물의 재배지역 적합도를 평가한 것인데 보고서를 통해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밀의 생산 지역은 매년 북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2065년이 되면 밀은 주요 생산지대인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 등 일부 지역에서는 생산될 수 없다.
밀 생산 가능 면적은 늘지만 새로운 생산지의 생산 역량이 늘기 전에 기존 생산 지역의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밀 생산량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됐다.
주요 곡물 가격 역시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2020년 대비 2050년 가격은 콩이 30%, 밀과 옥수수가 26%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쌀 3.1%로 상대적으로 상승 압박이 낮았다.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미국의 식량의 생산부터 소비까지 식량 수급 체계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아가 기후변화에 따라 미국 식량 보급망의 붕괴되면 북미 지역은 물론 세계 식량 수급 체계에 이상을 초래해 식량 위기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농무부의 ‘2022년 농업 수출 연보’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1위의 식량 수출국가다. 2022년 연결기준 미국 식량 수출액은 1960억 달러(약 254조 원) 이상을 기록했다. 미국의 식량 생산량 감소와 판매 가격 증가는 곧 세계의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 식물 내한성 지역 변화 추이. 연한 노란색(7a)부터 짙은 주황색(10b)까지가 밀 생산 가능 지역으로 분류된다. 2050년까지 밀 생산 가능 지역은 늘어나지만 생산량은 기존 주요 생산지의 생산력 감소로 인해 2020년 대비 36%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지구변화연구프로그램(USGCRP)> |
미국지구변화연구프로그램은 보고서를 통해 “다양한 친환경 농법 도입을 통해 토양환경 개선과 비료 효율성 극대화 등을 통해 농업 생산성은 일부 보존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이러한 농법을 통한 농업 생산은 다양한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반영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따라 점점 그 효과가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기후변화로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세계적 식량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관측은 미국 정부만 내놓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2035년을 기점으로 세계 농축수산물 생산은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적 있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수출입경로를 통한 해외 기후변화 물리적 리스크의 국내 파급영향’ 보고서였다.
기온상승은 농업이 일정 수준까지는 농업 생산 가능 지역을 늘리고 생산 효율을 증대시키지만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작물 생산 능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
아라티 프라바카르 미국 대통령 과학고문은 보고서를 발표하며 "우리의 분석 결과가 각 지방 정부가 기후변화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지 미리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이번 보고서가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에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