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보다 이익규모뿐 아니라 수익성도 악화됐다. 지난해 분기별 영업이익률은 1분기 9.6%, 2분기 7.1%, 3분기 7.9%, 4분기 4.3%였는데 올해는 1분기 3.0%, 2분기 0.2%, 3분기 1.2%로 전반적으로 크게 하락했다.
전방 산업의 수요 둔화는 엘앤에프가 실적 부진을 겪는 가장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로 2차전지 셀 제조사들이 생산량과 생산일정을 조정함에 따라 셀의 핵심소재인 양극재 수요도 둔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방 고객사별로 업황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소 상이하지만 엘앤에프는 고객사의 수요 감소에 따라 제품 출하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엘앤에프는 3분기 양극재 출하량은 직전 분기보다 7% 감소했다. NCM523(니켈·코발트·망간 비율 5대2대3)과 NCMA90(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으로 구성된 양극재로 니켈 함량 90%) 제품 모두 출하량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원료금속 가격에 연동된 제품가 인하에 따른 마진 축소도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극재 제품 가격은 원료 금속인 리튬이나 니켈 가격에 연동되는데 올해 들어 원료 금속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탄산리튬 가격은 8일 기준으로 kg당 147.5위안으로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1년 전 무렵인 지난해 11월11일 581.5위안의 4분의 1토막 수준이다.
양극재기업들로서는 과거 비싼 값에 원료를 구매한 뒤 원료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팔게 되는 만큼 마진이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4분기에도 이런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엘앤에프도 제품의 평균 판매단가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NCMA90 제품은 판매가격이 3분기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있지만 NCM523 제품은 10% 넘게 하락할 것으로 바라봤다.
엘앤에프 측은 전방 산업의 수요 불확실성 지속과 고객사들이 연말 재고를 조정할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4분기에 20% 안팎으로 출하량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업계에서도 엘앤에프의 향후 실적을 향한 비관적 전망이 늘어나고 있다.
대다수 증권사들이 엘앤에프의 실적 추정치를 손익분기점 수준으로 하향 조정한 가운데 일부 증권사는 엘앤에프가 4분기에 영업 적자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엘앤에프가 올해 4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9597억 원, 영업손실 25억 원을 거둘 것이란 전망치를 제시했다.
업황 악화가 실적부진의 가장 큰 원인인 만큼 엘앤에프뿐 아니라 다른 양극재업체들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엘앤에프가 경쟁사보다 취약한 점들이 눈에 띈다.
경쟁사인 에코프로비엠도 엘앤에프와 마찬가지로 원료 금속 가격 하락에 따른 마진 축소를 겪었지만 엘앤에프와 달리 출하량 자체는 증가했다.
수익성도 더 좋은 편이다. 에코프로비엠의 올해 분기별 영업이익률은 1분기 5.3%, 2분기 6.0%, 3분기 2.5%다. 엘앤에프가 2분기와 3분기에 1% 안팎의 낮은 영업이익률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양호한 수치인 셈이다.
업황 악화 시점에 엘앤에프가 경쟁사보다 더 많은 타격을 입는 이유로는 고객 편중도가 높다는 점이 꼽힌다.
엘앤에프 글로벌 선두권 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전기차 선두업체 테슬라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엘앤에프는 LG에너지솔루션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형태로 테슬라와 간접적 거래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지만 테슬라에 양극재를 직접 납품하기도 한다.
이들이 각기 산업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엘앤에프는 확실한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기차시장이 다시 활황세로 돌아서게 된다면 전기차와 배터리 셀 수요는 이들 선두권 고객사들에 집중될 공산이 크다. 엘앤에프 역시 고객사들의 덕을 볼 수 있다.
반면 특정 고객사 의존도가 높은 탓에 이들의 영업성과나 경영상 결정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커질 위험도 안고 가야 한다. 고객사와 협상에서도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약점도 감수해야 한다.
다수의 고객사들과 폭넓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양극재기업들이 비교적 높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여력이 있는 것과는 달리 엘앤에프는 다소 불리한 위치에서 가격 협상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 엘앤에프가 경남에 양극재 수산화리튬 생산시설을 구축한다. 사진은 9월20일 오후 경남도청 도정회의실에서 최수안 엘앤에프 대표이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기업 관계자들이 경남도와 투자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경상남도>
이 때문에 최수안 대표이사 부회장은 고객사를 다변화하는데 경영 역량을 집중하며 매출처 확대와 더불어 실적 안정성 강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엘앤에프는 실제 다수의 잠재 고객사들과 제품 공급 계약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며 신규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엘앤에프는 10월 유럽 전기차·배터리 셀 업체와 대규모 양극재 공급계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엘앤에프 측은 “구체적 공급계약 대상, 규모 및 협정 체결 업체에 관한 내용은 고객과 기밀유지 계약 때문에 지금은 언급할 수 없다”며 “중장기 수십만 톤 규모의 공급계약이며 회사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고객사와 진행 중인 해당 공급계약건은 세부 조건에 대한 협의는 대부분 마쳤고 제도적 리스크를 점검하는 단계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수안 부회장은 양극재 생산과정의 앞 단계에 있는 원료와 중간소재 공급망 역량을 강화하며 원재료 조달 안정성과 수익성을 함께 강화해 나가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엘앤에프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원료와 중간소재 분야 공급망 역량이 다소 뒤떨어진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경쟁사들이 리튬과 같은 원료 금속을 직접 확보하거나 계열사를 통해 양극재 중간소재인 전구체를 생산하며 양극재 가치사슬(밸류체인) 내재화율을 끌어올린 것과는 달리 엘앤에프는 양극재 앞 단계의 원료와 중간소재를 외부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이는 유사시 원료 확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되는 동시에 수익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원료와 중간소재의 내재화율이 높을수록 양극재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다.
엘앤에프는 현재 LS그룹과 전구체 합작법인을 설립해 2025~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전구체 생산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엘앤에프는 LS그룹과 전구체 분야는 물론 황산니켈과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분야까지 양극재 사업 전반에 걸친 사업협력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엘앤에프는 6천억 원을 들여 경남 하동에서 수산화리튬 생산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최 부회장은 경상남도와 하공군, 광양만경제자유구역청과 직접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최 부회장은 카이스트 화학공학 박사를 거쳐 킴벌리클라크 IC 수석 부장을 지냈고 LG화학 배터리사업부문에서 일하며 2차전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2016년 엘앤에프 대표이사가 됐으며 올해 부회장에 올랐다.
최 부회장은 엘앤에프 주식을 매입하며 책임경영 의지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달 19일 엘앤에프 주식 62주를 992만6200원에 장내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평균 매입단가는 16만100원이다. 이에 따라 최 부회장이 보유한 엘앤에프 지분은 3562주로 늘어났다.
최 부회장은 2024년 9월까지 12개월 동안 1억 원 규모로 엘앤에프 주식을 매수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