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3-11-07 15: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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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국회가 2024년도 예산안 심사를 진행하면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의 비효율성을 강조하며 방어에 나섰지만 공세 수위가 만만찮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R&D 예산 삭감 과정이 졸속이었다면서 '이권카르텔'로 볼 수 없는 사업들의 예시를 들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학계와 연구계에서 R&D 예산 삭감에 따라 어려워진 현실을 토로하는데다 예산안 공청회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일제히 정부의 예산 삭감에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월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서 예산심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R&D 예산 삭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R&D 예산은 25조9천억 원으로 전년대비(31조1천억 원) 16.6%가 줄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R&D 예산을 급격히 줄임에 따라 발생하는 부작용을 성토했다.
허영, 이소영, 양경숙, 김승원, 김회재, 진성준, 강훈식, 박재호, 조응천, 이영덕, 이수진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예결위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단 브라운백 미팅’을 갖고 이공계 청년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등 11개 대학 총학생회와 대학원생 대표단은 한 목소리로 정부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안 백지화를 촉구했다.
한정현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은 공동 입장문을 통해 “예산 삭감 과정에서 연구현장과 소통이 없었다”며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수많은 이공계 학생들은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강훈식 의원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은 뒤 “오늘 나온 의견을 예산심사에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 왼쪽) 등 민주당 에결위원들이 11월7일 국회 본관에서 이공계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갖고 R&D 예산안에 관한 의견을 듣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조승래 의원과 김두관 의원은 이날 전국공공연구 노동조합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의 R&D 예산 원상복구 촉구 서한을 제출에 뜻을 함께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부의 R&D 예산 조정은 과학기술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며 “예산 삭감을 원천 무효화하고 반드시 복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진행된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R&D 예산안 삭감이 핵심 쟁점이 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깊은 논의 없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국가의 미래인 R&D 예산안을 줄였다고 비판했다.
홍기원 의원은 "지난 6월29일 R&D 유관 부처에 내년도 주요 예산에 대한 부처별 구조조정 및 재투자안을 요청했고 제출 기한은 7월4일까지였다"며 "단 4일 만에 지출구조 조정안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제대로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조승래 의원은 "정부에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부처 간 R&D 예산 심의 내용과 업무 협의 내역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계속 제출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두 달간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확인이 돼야하며 만약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졸속으로 심의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 부총리는 "수 년 간 너무 방만하게 늘어나다 보니 비효율·낭비·중복적인 지출 사례가 많이 생겼다"며 R&D 예산의 효율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추 부총리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이 거듭되자 정부 예산안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R&D 예산을 고칠 수 있다며 다소 여지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추 부총리는 조승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학생 연구자 인건비 증액을 언급했다고 하자 “국회와 소통하고 지혜를 모아서 정부안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가겠다”며 “(인건비 증액) 구체적 방안은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설명하고 의견을 종합하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로서도 R&D 예산안이 대폭 삭감된 정부 원안을 고집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파악된다. 국회 심의에 앞서 예산안을 평가한 전문가들은 물론 산업현장에서까지 R&D 예산안이 부적절하다고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월7일 국회 소통관에서 R&D 예산 원상복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특히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방침을 바람직하다며 추 부총리와 유사한 시각을 보여온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조차 R&D 예산 삭감에는 반대했다.
석 교수는 2일 국회 예결위 예산안 공청회 자료에서 "단기적인 성과가 없다고 R&D 예산 삭감할 경우 오히려 장기 성장동력을 훼손할 가능성 있다"며 "한국경제 성장 동력을 훼손시킬 수 있으므로 재검토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도 이날 SK의 바이오·배터리·반도체 첨단산업 글로벌 경쟁력과 책임경영의 시사점 토론회에서 정부의 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결국 (바이오) 벤처기업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적정 투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기술 개발 못하고 후퇴하게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도 여론이 악화되자 R&D 예산 삭감에 관한 완고한 자세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추 부총리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2일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과학기술계가) 어려운 상황인 것을 전부 다 이해하고 있다"며 "잘 쓰일 수 있다면 (R&D 예산) 두, 세 배 증액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로서는 정부의 R&D 예산을 조정한다면 원안에서 어느 정도 규모로 증액해야 할지도 고민이 되는 대목일 것으로 보인다.
조승래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와 만나 R&D 예산 증액 폭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추 부총리가 (예결위 회의에서) 연구원들 인건비 부분은 증액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민주당은 지난 6월28일 재정전략회의 이전에 확정되어 있던 구 2024년도 R&D 예산안을 제출받아 비교해 본 뒤 증감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R&D 예산의) 원상회복은 아니다”라며 큰 폭의 증액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