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쟁은 지난 5월22일 네이버 웹툰에서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라는 웹툰이 연재되면서 시작됐다. 일부 독자들은 이 작품의 일부 장면들이 부자연스럽다면서 생성형 AI로 제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네이버 웹툰 갈무리> |
[비즈니스포스트] 처음에는 그냥 웹툰 업계에서 벌어지는 인공지능(AI)를 둘러싼 가벼운 해프닝인 줄 알았다. 언론에서도 일회성 기사로 취급하고 넘어갔다.
그렇지만 네이버 웹툰을 비롯한 웹툰에서는 한 달 이상 ‘생성형 AI’를 둘러싼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여진이 계속된다.
논쟁은 지난 5월22일 네이버 웹툰에서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라는 웹툰이 연재되면서 시작됐다. 일부 독자들은 이 작품의 일부 장면들이 부자연스럽다면서 생성형 AI로 제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독자들은 ‘옷이나 사물의 세부적인 모양이 부자연스럽다’, ‘화풍도 컷마다 조금씩 변한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중학생이 대충 그린 그림체’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잇따랐다.
이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은 소위 ‘별점테러’도 가했다. 확인할 순 없지만 독자들 중에는 웹툰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나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돼 보였다.
이날 공개된 1화에 독자들이 매긴 별점은 10점 만점에 1.94점, 전체 별점도 2.40점을 기록했다. 필자가 글을 쓰는 현재는 1화는 2.68점, 전체평점은 5.04점으로 조금 올랐다.
네이버웹툰의 ‘요일별 웹툰’에서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9점대 이상이고 8점대도 거의 찾기 힘든 것을 고려하면 이 웹툰의 별점은 ‘테러’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오픈AI가 지난해 11월 챗GPT를 공개하며 전 세계에 ‘AI 혁명’이라 할 만한 충격을 준 생성형 AI는 이용자의 특정한 요구에 따라 결과를 생성해 내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즉, 웹툰작가가 ‘스토리에 맞게 그림을 그려줘’라고 생성형 AI에 명령하면 무수한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 AI가 밑그림, 채색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한다.
이 웹툰의 제작사는 즉시 “AI를 이용해 생성된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 아니며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AI를 이용한 보정작업을 했다”고 해명하며 ‘창작의 영역’에서 AI가 개입된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AI 보정을 한 부분을 삭제해 다시 업로드하고 앞으로는 AI 보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네이버의 아마추어 작가들의 웹툰 연재 장소인 ‘도전만화’ 섹션에는 AI를 활용한 웹툰 제작에 반대하는 ‘AI 웹툰 보이콧’ 엠블럼들이 집단으로 올라왔고 이 웹툰의 댓글창에서는 한 달여 이상 AI 웹툰 찬성파와 반대파간의 ‘대토론’이 벌어졌다.
첫 화에 9749개의 댓글이 달린 것을 시작으로 7화가 연재된 7주간 무려 1만7222개의 댓글이 달렸다. 어떤 댓글에는 100여 개의 답글이 달리며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인터넷 초기 대표적 토론장이었던 다음의 ‘아고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뜨거운 논쟁이다.
AI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세계 최정상 바둑기사였던 이세돌 9단을 꺾었던 2016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전 세계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떠올리며 충격을 받았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AI혁명’이 화두로 떠오르며 ‘AI가 변화시킬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우려가 교차했다. 그리고 뜨거운 감자가 된 인공지능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과 정책 과제들에 대한 논의가 ‘반짝’ 일었다.
일자리와 일의 미래, 설명 가능한 AI, AI와 윤리, 저작권을 포함한 법률 아키텍처, 그리고 AI를 기반으로 한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 등등. 필자 역시 당시 글로벌 기술회사의 정책담당자로서 ‘AI 혁명’의 사회적 법률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여러 모임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알파고 시대’에서 ‘챗GPT 시대’까지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정부와 학계와 법조계, 산업계에서도 논의는 하는데 계속 원점만을 맴돈다. 전문가들끼리 모여서 걱정하고 뻔한 이야기들을 재탕 삼탕 하고 끝난다.
▲ 한보형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8월30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생성형 AI가 선거에 미칠 영향 세미나에서 발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정부나 국회도 몇 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을 뿐 세미나만 열심히 한다. 그리고 또 그냥 별다른 ‘사회적 합의’나 ‘법률적 정책적 결론’ 없이 넘어간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왔다. 필자가 ‘반짝 논의’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논의’로 마무리되는 것이 일상화됐다. 정부에서는 흔히 말하는 무수한 ‘AI 이슈’를 총괄할 컨트롤타워조차 없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AI 웹툰 논쟁이 반갑다. AI에 관한 막연한 ‘걱정’과 공허한 ‘논의’가 지배하는 우리사회를 향한 작지만 큰 반란 같은 느낌이다. 소위 전문가들이 ‘독점’해 온 ‘AI 이슈’가 드디어 일반 사람들에게로 ‘하방’했다.
심지어 ‘웹툰’의 주이용자들인 10대~30대의 젊은 세대들이 논쟁의 주역이다. 그들의 대다수는 법률전문가도 정책전문가도 기술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논쟁을 통해 AI를 둘러싼 막연했던 이슈’가 자신의 생활, 자신의 미래와 아주 가까운 이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더욱 이 문제에 주목할 것이고 이는 정책과 입법 담당자들에게는 무형의 압력이 될 것이다.
이번 웹툰 AI 논쟁은 몇 가지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AI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집단화되고 공론화 된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웹툰 플랫폼이 공론장이 됐다. 사실 AI 웹툰을 가장 열성적으로 비판한 사람들은 아마도 웹툰작가들이나 지망생들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반발은 무엇보다 AI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란 우려를 깔고 있다.
미국에선 출판작가조합 소속 작가나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구글이나 오픈 AI, 구글 등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거나 파업을 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선 경우를 심심찮게 뉴스를 통해 접한다.
하지만 한 직역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AI’를 자신의 직역에 활용하는 것을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인 것은 우리사회에선 지금껏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일반 웹툰 이용자들이 대거 가세했다. 이들이 올린 댓글들 가운데 상당수는 ‘AI 자체를 향한 심리적 저항’을 깔고 있는 경우도 상당했다.
현재 국회에는 ‘AI 이미지 생성기의 무분별한 사용과 악용을 막기 위한 법적 규제에 관한 청원’이 계류돼 있다. 이 청원은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에 한 민원인이 (안성현, 왓챠피디아) 지난 4월 제기한 민원인데 현재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정식안건으로 회부됐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동일한 내용의 두 케이스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청원에 동의한 이들이 5만 명에 이른다는 것은 이 문제가 ‘웹툰업계’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 논쟁에 일반인들도 대거 참여했다는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의 이슈’가 아닌 ‘모두의 이슈’로 변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AI에 대한 또 하나의 이슈를 추가해야겠다. AI의 작업 결과물의 퀄리티다. 이번 사건은 아마도 우리사회에서 이용자들이 생성형 AI로 작업한 결과물의 ‘낮은 수준’을 문제 삼은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 AI 결과물과 관련된 주된 이슈는 저작권 등 법률 이슈를 제외하면 그다지 많지 않다. 몇 년 전 마이크로소트의 챗봇 ‘테이’나 최근의 ‘이루다’ 케이스처럼 잘못된 학습데이터 때문에 발생하는 혐오발언 등 편향성 논란 즉, AI 윤리 이슈 같은 것만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웹툰 사건은 이면에 있는 저작권 이슈나 일자리 이슈는 차치하고서라도 생성형 AI 결과물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때 발생하는 제품의 ‘수준’이 문제됐다.
우리에게는 알게 모르게 ‘AI가 사람보다 우수하다’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법률, 회계, 제조 등등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다양한 일처리를 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AI가 작업한 결과물의 질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이지 모든 영역에서 사람이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한 것보다 월등히 그리고 항상 우월하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창작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이러한 퀄리티 이슈는 데이터의 양과 기술의 진화속도에 비례해 개선될 것이다. AI가 인간의 능력을 완전히 뛰어넘을 때까지의 과도기적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로 보면 과도기에도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 당장 사람들이 ‘퀄리티가 떨어지는 AI 결과물을 어떻게 사람이 오랜 시간 공들여 직접 작업한 고품질의 것과 동일한 가격을 매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이 궁해진다.
더군다나 구매자가 AI가 만든 것임을 모르고 혹은 판매자가 이를 숨기고 자신의 온전한 창작물인 것처럼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창작의 영역에서 생성형 AI의 결과물을 상업화할 경우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번 AI 웹툰과 관련된 이슈는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웹툰 업체나 작가, 플랫폼은 물론 소비자들까지도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웹툰 작가나 지망생들은 생성형 AI가 자신의 일을 대체하는 ‘일자리 탈취’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또한 저작권 있는 작품들을 크롤링해 만들어진 웹툰은 특정 그림스타일을 완벽하게 모방해 원작자에게 재정적 피해를 줄 수 있다.
반면 웹툰 작가들 가운데 살인적 작업량에 지쳐 ‘휴재’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활용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아가 이현세 씨 같은 유명작가는 아예 자신의 작품이나 캐릭터들을 AI를 활용해 웹툰형으로 바꾸는 ‘이현세 AI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웹툰 제작사들의 입장에서는 편당 수백만 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생성형 AI는 음악, 소설, 영상 등 각 분야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유튜브에는 생성형 AI로 가수 목소리를 따 온 커버 영상들이 넘쳐난다.
AI 사용이 웹툰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지 강화시킬지 여부도 의견이 갈린다.
필자가 이 글에서 일자리 문제, 저작권 문제 등 AI를 둘러싼 많은 이슈들을 자세히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에 벌어진 AI 웹툰 논쟁이 일회성 논란에 그치지 말고 우리 사회 전체가 AI에 대한 제도적 규범적 아키텍처를 만들어가는 시발점이 되길 기원해 본다.
그 출발점은 앞서 소개한 국회계류 국민청원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5월에 문화관광위원회로 넘어간 뒤 아직까지 캐비닛 속에서 잠자고 있는 듯 보이지만 말이다.
웹툰 이용자들의 댓글들을 몇 개 소개해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전달하면서 이글을 마치고자 한다. (일부 표현은 칼럼 문체에 맞게 ‘약간’ 수정했다.)
“정말 웃기네. 왕관모양이 계속 바뀌네. 그림 그릴 줄 모르고 딸깍이만 하니 왕관이 휘는지 모양이 계속 바뀌는 지도 모르지.”(딸각이는 딸깍딸깍 마우스 클릭하면서 웹툰을 만든다는 비아냥.)
“그림 진짜 뿌옇네. 중간중간에 옷 마감 디테일도 그렇고 AI티 너무 남. 수정 대충한 것 같은데…딸깍이는 ‘작가’가 아닙니다.”
“AI가 고작 그림 소설 등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근시일내로 당신 또는 당신의 부모님의 일자리까지 다 대체 가능하다. 이번에 AI로 인해 자기 일 아니라고 알빠노 거리면 먼 훗날 당신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빠노’는 내가 알바 아니라는 의미의 신조어)
“난 그림으로 돈 벌려고 독학한 게 아닌 데도 허탈할 정도인데 자기 청춘 바쳐서 미대 나오고 피땀 흘려 연습해온 사람들은 얼마나 허무할까.”
“AI 웹툰은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는데 냉동 소고기로 구운 스테이크가 나오는 거랑 똑같은 것임.”
“그래도 건강하고 합법적으로 AI가 발전해서 웹툰업계 혁명 일어나면 좋을 거 같긴 함. 그림으로 보고 싶은 웹소설들 고퀄리티 그림체로 웹툰화 돼서 1일 1화씩 올라온다 생각하면 미칠 것 같긴 해.”
“AI는 모작이 아니라 학습입니다. 우리가 그림을 배우기 전 다양한 작가의 그림을 보고 배우면서 본인의 그림체가 생기는 것과 비슷해요. …(중략)… 공간디자인 등에서도 이런 AI기술을 활용하고 자신의 작품을 기술을 활용해서 발전시켜 나가는데 왜 유독 그림계만 반발이 심한지 모르겠습니다. AI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고 기술이 등장했으면 ‘일자리를 잃을 것에 대한 분노와 걱정’보다는 이 뛰어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서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지’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발전을 거부하는 행위자체는 이성적이라고 볼 수 없음. 한 국가에서 밥그릇 지키겠다고 러다이트 운동 성공시켰어봐. 그 국가는 이제 산업 망친 것임. 도태되는 거라고.”
“AI 쓰는 게 왜 문제지. 좀 더 내용에 더 충실하면서 퀄리티 좋은 작품 볼 수 있는데. 시대에 역행하지 마세요. 도태됩니다.
“AI 택시 나오면 기사님 일자리 뺏긴다고 발작하겠네. 그냥 시대의 흐름 아닌가?” 이태희 CUE코리아 대표
대학 졸업 후 30년간 언론(한국일보)과 공무원(방송통신위원회), 국제기구(TEIN), 글로벌 기업(마이크로소프트) 등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의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해왔다. 2020년부터 글로벌 마케팅·테크놀로지 기업인 CUE Group의 한국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변화의 지향-사상의 자유시장과 인터넷의 미래'(나남, 2010)이 있으며, 몇 권의 공저와 학술논문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