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이사가 주력 분야인 동박을 넘어 2차전지 핵심소재 사업의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2차전지 소재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롯데그룹 화학군의 장기적 비전에 발맞춰 리튬인산철 양극재를 비롯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31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김연섭 대표는 중국기업들이 장악한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에너지밀도를 높인 리튬인산철 양극재 생산체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2차전지의 음극재를 둘러싸는 음극집전체인 동박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롯데그룹 화학군 계열사다. 과거 일진머티리얼즈란 이름으로 사업을 해 오다 올해 롯데그룹에 편입돼 지금의 사명으로 바뀌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동박 사업 비중이 90%에 육박할 만큼 압도적이지만 일진머티리얼즈 시기부터 리튬망간산화물(LMO) 양극재 개발과 생산을 추진해온 만큼 양극재 분야와 관련한 사업경험도 지닌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보급형 전기차를 중심으로 리튬인산철 배터리 탑재가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해 전북 익산의 리튬망간산화물 생산공장 일부를 개조해 리튬인산철 설비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마련해 뒀다.
리튬망간산화물과 리튬인산철 양극재 공정은 유사한 측면이 많아 공정 라인의 일부만 개조하면 리튬인산철 양극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내년 상반기 1천 톤 규모의 리튬인산철 양극재 시험생산(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하반기에는 시제품 개발과 제품 생산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김연섭 대표는 리튬인산철 양극재의 단점으로 꼽히는 낮은 에너지밀도를 개선하기 위한 기술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한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와 비교해 낮은 생산원가 덕분에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낮은 가격의 보급형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로 리튬인산철 배터리 수요가 점점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역시 2025년 전후로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가 대량 출시될 것으로 예측하고 이와 관련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에너지밀도가 낮아 이를 탑재한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짧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성능을 높이는 것이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가장 큰 숙제로 꼽힌다.
김 대표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중국기업이 장악한 리튬인산철 양극재 시장에서 승산이 없다고 보고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맞출 수 있는 고성능 제품을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가 리튬인산철 양극재의 단점으로 꼽히는 낮은 에너지밀도를 개선하기 위한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리튬인산철 양극재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과 연구개발(R&D) 계약도 체결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리튬인산철 이차입자 조성 및 불순물 제어 기술, 이차입자 제조 및 카본 복합화 기술 등 리튬인산철 양극재와 관련한 기술 다수를 확보하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리튬인산철 양극재 사업을 진행하며 장기적으로는 주력인 동박 사업과도 시너지를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개선하려면 기존보다 더 얇은 동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리튬인산철 배터리에 적용할 고성능 동박 제품 개발·생산도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리튬인산철 배터리에 적용될 양극재와 동박 제품을 고객사 맞춤형으로 제작해 공동 마케팅을 통한 ‘패키지 영업’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연섭 대표는 한국자동차연구원과 리튬인산철 양극재 연구개발 계약 체결식을 통해 “리튬인산철 양극재 공동 개발을 통해 가격 경쟁력 있는 고성능 소재로 차세대 배터리 소재 산업에서 우위를 선점할 것”이라며 “특히 우리의 동박 사업과도 연계해 시너지 효과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추진하는 2차전지 소재사업 확장은 리튬인산철 양극재에 그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차세대 음극재인 실리콘 음극재로도 소재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스타트업 앤와이어즈(Enwires)에 지분투자를 통해 실리콘 복합물질(Si-C계열) 공동 개발을 진행한 뒤 고성능 실리콘 음극재 양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계 음극재를 대체할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단위 무게당 용량이 흑연계 음극재보다 10배 가량 높아 전기차 주행거리를 대폭 늘리고 충전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실리콘 음극재 규모는 2020년 6천 톤에 불과했지만 2027년 약 32만 톤까지 늘어나며 전체 음극재 시장에서 10.1%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 76.6%의 고성장세를 보이는 것이다.
김 대표가 소재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핵심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의 높은 성장성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전기차 전환과 함께 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따라 2차전지 소재 시장도 지금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올해 들어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전기차 전환율이 낮은 수준인 만큼 장기적으로 전기차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롯데그룹 차원에서 2차전지 소재사업이 중요한 성장동력이라는 점도 김 대표가 소재 포트폴리오 확장을 서두르는 배경으로 꼽힌다.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롯데그룹 화학군은 전통 석유화학기업 가운데 2차전지를 포함해 신사업 확장에 가장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화학은 일찌감치 2차전지사업에 뛰어들어 셀과 소재, 중간소재에 이르는 가치사슬(밸류체인) 내재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입지를 구축해 놓은 상태다.
반면 롯데 화학군은 이들과 비교해 뚜렷한 성과를 아직 보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오른쪽)와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장이 26일 충남 천안시 한국자동차연구원 본원에서 고 에너지밀도 LFP/LMFP 양극활물질 연구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그룹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당시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투자금융업계가 산정한 적정 기업가치를 다소 웃도는 인수 금액(2조7천억 원 규모)을 제시한 배경에는 화학사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변신을 꾀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동박 시장의 규모와 성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동박만으로는 롯데그룹 화학군이 추구하는 미래 먹거리로서 의미가 제한적일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2차전지용 동박 시장은 2021년 27만 톤에서 2025년 75만 톤으로 확대되며 약 10조 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40%의 성장률을 보이는 데다 시장 규모도 제법 큰 편이다.
다만 롯데그룹 화학군의 외형 수준을 고려하면 2025년 10조 원 규모의 시장이 결코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그룹 화학군의 중심 계열사 롯데케미칼의 매출은 20조 원을 웃돌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동박 시장 점유율(약 13%)를 고려하면 동박 시장에서 차지할 수 있는 매출은 2025년 1조 원대일 것으로 예상된다.
2차전지 가치사슬에서 가장 큰 규모인 양극재 시장만 보더라도 시장규모가 2025년 65조 원대, 2030년 100조 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그룹 화학군 차원에서도 동박 외에 양극재나 음극재 등 다른 소재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외형을 키울 필요성이 큰 셈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서도 그룹 화학군과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화학군은 알루미늄박, 동박, 분리막소재, 전해액 유기용매 등 리튬이온 배터리 핵심소재와 관련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이미 구축해 놓은 데다 관련 연구개발 역량도 축적하고 있다. 그런 만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그룹 화학군과 연구성과 공유와 인력 교류 등을 통해 시너지를 꾀할 여지가 많다.
김연섭 대표는 7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출범 뒤 처음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리튬인산철 양극재, 실리콘 복합 음극재, 고체전지 등 차세대 배터리소재 확장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롯데그룹 화학군과 연구개발 협력, 마케팅 공동 협업을 통해 고객사에게 기술 혁신과 토털 소재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