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3-10-23 15: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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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국판 NASA(미국 항공우주국)인 우주항공청 설립이 난항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우주항공청의 연구개발(R&D) 직접 수행 여부를 두고 이견을 보이며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우주항공청 설립 관련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여야는 각자 주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를 국회로 불러 의견을 들었다. 향후 우주항공청 설립 근거법안의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따르면 우주항공청 설립 특별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가 이날 종료된다. 여야는 지난 7월 안건조정위를 구성하고 90일 동안 토론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여야는 네 차례 진행된 안건조정위원회 회의를 통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
우선 우주항공청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산하 외청으로 두기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 또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격상하고 부위원장에 민간 전문가를 따로 임용하기로 했다.
우주항공청장에 외국인·복수 국적자를 임용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청장은 국내 전문가가 맡도록 결정했다. 또 국가 우주 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국가우주위원회 부위원장을 민간인으로 임명해 우주항공청 감독을 맡기는 동시에 우주항공청 윤리위원회를 신설해 소속 관련 퇴직공무원들의 취업 승인 등의 업무를 담당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처럼 많은 내용에서 합의를 이뤘음에도 우주항공청 설립 특별법안이 안건조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는 우주항공청의 R&D 수행 여부 때문이다.
과기정통부와 국민의힘은 연구인력 200명, 행정인력 100명 등 300명으로 구성될 우주항공청에 R&D 기능을 넣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주항공청에서 연구기획·조정과 집행, R&D 수행 등이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 "기상청, 농촌진흥청 등 외청의 연구개발 수행을 의무화한 것은 현행 과학기술기본법에서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기본계획에 따라 맡은 분야의 국가연구개발 사업과 그 시책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는 조항에 근거한다"며 연구개발 기능을 원천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대로 된 우주정책전담기관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과학기술기본법의 조항은 각 중앙부처가 자기 소관에 따라 연구과제를 기획하고 평가하라는 의미지 외청이 직접 R&D를 수행해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참고할 모델은 국방부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 모델인 것이지 농촌진흥청의 모델이 아니다”라며 “방위사업청이 직접 R&D를 하느냐”고 반박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항우연 노조도 우주항공청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을 직속화해 흡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R&D를 수행하게 되면 업무중복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항우연과 천문연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신명호 항우연 노조지부장은 “우주항공청의 직접 연구개발 수행 문제는 우주항공청·항우연·천문연의 관계가 정립된다면 자동적으로 해소된다”며 “민주당이 문제삼는 이유도 항우연과 천문연을 우주항공청으로 직속화하지 않음으로써 중복과 옥상옥, 기본 연구기관의 형해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여당은 우주항공청의 R&D 기능이 기존 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이나 대학의 연구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초기 연구나 원천기술 연구에 한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11일 국감에서 “우주항공청과 출연연들이 함께 발전하려면 중복을 피하고 역할을 나눠 선제적 평가 연구를 진행하고 사업을 만들어야한다"며 "우주항공청과 항우연·천문연은 고유한 연구 영역을 갖고 협력하는 연구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항공청 설립 이후에도 항우연과 천문연의 역할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주항공청의 R&D 직접 수행 여부에 따라 우주항공청 입지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도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우주항공청이 R&D를 직접 수행하게 되면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경남 사천시에 우주항공청이 설립되고 연구인력 유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R&D 없이 정부 기능만 수행한다면 현재 연구 인력이 많은 대전에 설립돼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조승래 의원은 이날 대전시청 기자실을 찾아 “지난해 항우연과 천문연, 카이스트 등 연구·교육 기능을 갖춘 대전을 배제하고 우주 산업클러스터를 지정한다고 했을 때부터 항공 R&D 등을 모두 대통령 공약사항이던 경남 사천으로 들고 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며 “본질적으로는 입지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같은 날 열린 ‘우주항공청 조기 개청 토론회’에서 우주항공청 경남 설립에 힘을 싣는 발언을 내놨다.
유 정책위의장은 “우주항공청은 미국의 나사(NASA)를 모델로 하고 있는 만큼 우주개발에 관한 모든 것을 총괄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R&D 업무조정에 가로막혀 있다”며 “당 정책위 차원에서도 경남도민 여러분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는 우주항공청 설치가 완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간 열린 두 토론회의 참석자들도 명확한 대비를 보였다. 민주당이 개최한 토론회에는 이상률 항우연 원장, 박명득 천문연 원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이 대다수였던 반면 국민의힘 토론회에는 경남 사천 지역 주민들이 500여 명 참석했다.
정부여당은 우주항공청 연내 설립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지만 과방위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반대하면 뜻을 이루기 어렵다.
▲ 국민의힘 과방위 간사인 박성중 의원(사진 오른쪽)을 비롯한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이 10월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성중 간사를 비롯한 국민의힘 소속 과방위원들은 이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이번 달은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처리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간으로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민주당의 몽니로 안건조정위원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민주당은 법안소위에서 우주항공청 법안 통과를 위해 협조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반면 조승래 의원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여당은 틈만 나면 '골든타임'을 운운하면서 무조건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야당 탓을 한다"며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하지만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말했다.
이날까지 우주항공청 설립 특별법안이 안건조정위원회에서 합의되지 못하면 법안 관련 논의는 다시 국회 과방위 법안소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현재 과방위는 20명의 의원으로 구성돼있는데 민주당이 11명, 국민의힘은 7명이다. 무소속 의원은 여당 성향의 하영제 의원과 야당 성향의 박완주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