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에 위치한 글로벌파운드리 반도체공장 건물 전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싱가포르는 전체 국토가 700km²를 소폭 웃도는 작은 도시국가다. 전체 면적이 약 605km²인 서울보다 약간 큰 정도로 2023년 기준 약 601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근교에 위치한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오는 서울 등 대도시와 달리 싱가포르는 대부분의 수자원을 자급체제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물 부족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는 글로벌파운드리와 마이크론 등 글로벌 대형 반도체기업의 생산공장이 다수 위치한 산업 중심지로 자리잡아 경제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반도체공장 특성상 생산 공정에서 제품 세척과 장비 냉각 등을 위해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싱가포르가 세계의 반도체 핵심 제조기지 가운데 하나로 거듭날 수 있던 배경에는 안정적인 수자원 공급 및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여러 노력이 있었다.
▲ 대니얼 스틸(Daniel Steele) 글로벌파운드리 환경, 안전, 보안 총괄 시니어디렉터. <글로벌파운드리> |
“우리는 싱가포르 정부와 긴밀하게 협업해 공장 설계와 건설 단계부터 물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런 협력은 수십 년 전부터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파운드리에서 환경과 안전, 보안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대니얼 스틸 시니어 디렉터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싱가포르 정부와 회사 차원의 여러 노력을 소개했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고 수자원 공급 경로도 제한적인 만큼 물 수급 및 관리와 관련한 대책을 선제적으로 수립해 왔다는 것이다.
글로벌파운드리는 현재 싱가포르에 모두 3곳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9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신규 공장이 가장 큰 규모로 건설됐다.
투자 금액은 40억 달러(약 5조4천억 원), 클린룸 면적은 2만3천 m²로 12인치 웨이퍼 기준 연간 4만5천 장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고용 예정 인력도 모두 1천 명에 이른다.
글로벌파운드리는 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 집계 기준으로 올해 1분기 전 세계에서 약 7%의 점유율을 차지한 대형 파운드리업체다. TSMC와 삼성전자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대형 반도체공장 신설 지역을 싱가포르로 결정한 것은 정부와 협업으로 물 부족과 같은 리스크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반영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대니얼 스틸은 “이제 반도체공장의 경쟁력은 단순히 생산 능력과 수율에만 있지 않다”며 “천연 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속가능하게 활용하는지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전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싱가포르 정부 산하 수자원 관리기관인 PUB(Public Utilities Board)와 오랜 기간 협업으로 수자원 수급량을 최소화하고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9월 가동을 시작한 새 공장에는 PUB의 산업용수 관련 부서와 공동으로 도입한 물 재활용 및 빗물 포집 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빗물은 건물 청소나 화장실에 쓰이는 물로 사용된다.
▲ 싱가포르 수자원 관리기관 PUB의 홍보자료에 공개된 반도체 산업용수 재활용 과정 안내. < PUB > |
싱가포르에서 글로벌파운드리 새 공장의 물 재활용률은 50%에 이르며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사용된 물은 정수 과정을 거쳐서 ‘뉴워터’로 다시 공급된다.
뉴워터는 싱가포르가 정부 차원에서 생산해 공급하는 재처리수를 브랜드화한 것이다. 처리된 물은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성이 보장되고 있다.
결국 글로벌파운드리의 반도체공장은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뿐 아니라 싱가포르 국내에서 소비되는 물도 만들어 공급하는 역할도 하는 셈이다.
대니얼 스틸은 “싱가포르 반도체공장에서 2020년부터 시작한 물 재생 프로젝트로 매년 1067만 톤 이상의 물을 절약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약 18만5천 가구가 사용하는 양이다.
이 과정에서 신형 세라믹 멤브레인과 탄소 촉매 시스템 등을 활용해 화학약품이 섞인 폐수를 정화하는 등 첨단 필터링 기술이 활용된다.
그는 “물 재사용 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도 도입해 꾸준히 물 사용량을 집계하고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 관리에 활용되는 워터테크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싱가포르 반도체공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는 의미다.
대니얼 스틸은 “지난 달 가동에 들어간 새 반도체공장은 글로벌파운드리에서 가장 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공장”이라며 “미래에 새로 개발되는 워터테크도 도입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물 부족 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찍이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워터리스크에 대응해 왔다.
▲ 글로벌파운드리 싱가포르 사업장 입구 전경. <비즈니스포스트> |
물 관리를 전담하는 PUB 조직을 설립해 해수 담수화 등 기술을 활용한 수자원 확보, 물 재사용 기술 개발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며 홍보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글로벌파운드리가 싱가포르를 주요 생산거점으로 삼은 뒤 꾸준히 시설 투자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점은 정부의 노력이 충분한 결실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1년 제시한 ‘그린플랜 2030’이라는 목표 아래 단계적으로 국가 전체의 탄소 배출량 및 수자원 사용량을 줄이고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파운드리도 목표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고 수자원 재활용률을 높여 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정부와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물 부족과 관련한 리스크를 덜고 반도체 생산 투자를 지속해 온 글로벌파운드리가 이제는 싱가포르의 경제뿐 아니라 환경에도 기여하는 방안을 찾고 있는 셈이다.
대니얼 스틸은 “글로벌파운드리는 지역 커뮤니티의 일부로서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반도체 생산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힘써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CDP한국위원회를 맡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국내외 주요 기업 및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대응사례를 발굴해 보도한다. 최신 동향과 해법 관련 기사들은 비즈니스포스트 워터리스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