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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6년 8월4일 체코 노소비체 지역에 위치한 현대차 체코공장을 방문해 투싼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
현대차가 상품성 위기에 빠졌다.
실적과 주가가 모두 부진한데 그 근본원인이 상품성에 있기 때문이다. 상품성 때문에 판매가 부진해지고 결국 이를 만회하기 위해 마케팅비를 늘리다 보니 실적도 저조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가 품질 위기에 몰릴 때마다 뚝심으로 극복해 왔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극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후발주자다 보니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부담도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상품성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류연화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4일 현대차가 상품성 위기로 실적과 주가가 부진하다고 진단하며 그 위기의 원인으로 SUV 라인업의 부족과 쏘나타 아반떼 등 주력차종의 판매량 감소를 꼽았다.
현대차는 SUV 라인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다. 특히 기아차와 비교했을 때 현대차의 SUV 공백은 더욱 커보인다.
현대차는 상반기 매출 41조273억 원, 영업이익 3조1042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매출은 7.5%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7% 감소했다.
반면 기아차는 상반기 매출 27조994억 원, 영업이익 1조4045억 원을 거둬 지난해 상반기보다 매출은 14.7%, 영업이익은 20.8% 늘었다.
RV의 판매비중이 실적을 가른 것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RV 판매비중은 현대차는 25.6%, 기아차는 38.4%였다. 현대차는 RV 판매비중을 늘리는 데 성공했지만 기아차보다 여전히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세계적으로 SUV가 성장하는 가운데 기아차는 SUV 라인업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현대차는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쏘나타, 그랜저, 아반떼 등 그동안 현대차 판매실적을 주도하는 주력모델의 판매량도 줄고 있다.
올해 상반기 쏘나타 내수판매량은 4만4548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1.5% 감소했다. 그랜저는 3만188대로 27.4% 줄었다.
미국에서도 주력차종들은 힘을 못 쓰고 있다.
아반떼는 지난해 미국에서 22만2576대가 팔려 현대차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27.5%나 줄었다.
쏘나타의 경우 올해 상반기 판매량이 지난해 상반기 보다 9% 늘긴 했지만 2분기 들어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현대차는 주력모델의 미국 판매량이 감소세를 보이자 지난 7월부터 신형 아반떼와 신형 쏘나타 구매 고객에게 최대 60개월 동안 0.9%의 초저리 할부를 제공하고 구매 뒤 첫 6개월 동안 할부금 납입을 유예해주는 등 파격적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또 두 차종에 각각 2000달러, 3500달러의 현금할인도 제공했다.
이 덕분에 현대차는 미국에서 시장점유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류연화 연구원은 “미국시장의 실적은 표면적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월별 판매증가율은 경쟁사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제품의 상품성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제품 믹스가 좋지 못하고 주력차종인 LF소나타와 올해 초 출시한 신형 엘란트라의 판매가 부진해 재고처리를 위해 판촉판매를 진행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엔화강세, 신흥국 턴어라운드 등 외부환경은 현대차에 우호적”이라면서도 “그러나 내부요인인 주력차종들의 상품성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해 판매비가 여전히 증가하는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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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3일(현지시각)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현대차 러시아 공장을 방문해 소형 SUV 크레타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
◆ 정몽구, 어떻게 극복할까
현대차는 지난달 열린 실적발표회에서 RV와 제네시스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공급물량을 늘려 경쟁심화에 따른 인센티브 상승 가능성을 줄인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구자용 현대차 IR 상무는 “하반기 G90와 G80의 미국판매를 시작해 브랜드 인지도를 강화하고 중국과 미국에서 불어나는 SUV 수요에 대응하겠다”며 “러시아는 신흥국 전략형 RV 차량인 크레타를 투입하고 조지아공장에서 생산하던 싼타페는 앨라배마공장에서도 연 5만대 수준으로 공급량을 늘려 승용차 부진을 만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신형 그랜저를 올해 하반기에 조기출시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상품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이다. 그런 만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어떻게 대응할지 더욱 주목된다.
정 회장은 2000년 회장으로 취임한 뒤 줄곧 ‘품질경영’을 강조했다. 현대차 품질유지를 위해 수시로 해외공장을 돌면서 생산라인을 점검했다. 특히 미국에서 ‘10년 10만 마일 보증 서비스’를 내놓아 현대차의 품질 신뢰도와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정 회장은 지난달 현대기아차 해외법인장 회의에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최대한 공급할 수 있도록 생산과 판매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연구개발, 생산. 판매, 서비스 전 부문에서 업무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의 변화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시스템을 강화해 시장변화를 먼저 이끄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제는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다시 후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포드를 시작으로 BMW, 볼보, 폭스바겐그룹 등 세계 완성차회사들은 최근 2021년까지 완전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까지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완전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은 2030년으로 잡고 있다. 다른 경쟁사에 비해 10년이나 상용화 시점이 늦다.
완전자율주행차, 친환경차, 커넥티드카, 수소차 등 미래차시대에 대비해 세계 완성차회사들은 미래차 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세계 완성차업계 5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경쟁사에 비해 뒤쳐져 있다.
토요타는 올해 연구개발에 1조700억 엔(약 12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BMW도 올해 상반기에만 21억 유로(약 2조7천억 원)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해 1분기 각각 4211억 원, 3020억 원을 연구개발에 썼다. 2분기 들어 연구개발 투자 규모를 대폭 늘렸지만 올해 상반기까지 투자 규모는 각각 1조55억 원, 7900억 원에 그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