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에서 '2023 아이디어 페스티벌'이 열렸다. 사진은 김용화 현대차·기아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이 개회사를 하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카페나 햄버거가게 등의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청각장애인이 쉽게 이용할 수는 없을까? 시각장애인이 혼자서도 특정 노선의 버스를 선택해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다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현대자동차·기아 임직원의 따뜻한 마음과 생활 속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 기술들이 대거 공개됐다.
22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에서 임직원들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물을 직접 제작해 발표하는 '2023 아이디어 페스티벌'이 열렸다.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창의적 연구문화를 조성하고 임직원들의 연구개발 열정과 창의력을 장려하기 위해 2010년부터 매년 진행되는 행사로 올해 14회째를 맞았다.
올해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세상을 바꾸는 마음 따뜻한 기술'을 주제로 개최됐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5월부터 미래 모빌리티 기술과 연계해 교통 약자 및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는 아이디어들을 공모했다.
그 가운데 참신한 아이디어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는 15개 팀이 본선 진출팀으로 선발돼 최종 경합을 펼쳤다. 남양연구소 설계1동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진행된 '선한 경쟁'의 현장을 직접 찾았다.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하는 '제작 부문'에 모두 9개 팀이,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제안하는 '시나리오 부문'에 6개 팀이 각각 발표를 진행했다.
현대차·기아는 본선에 오른 모든 팀에게 제작비와 실물 제작 공간 등을 지원했고 각 팀은 약 5개월의 기간 동안 각자의 아이디어를 실물 및 시나리오로 구현했다.
▲ 김용화 CTO 사장과 대상 수상팀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왼쪽부터) 시나리오 부문 대상(의좋은 오누이) 이동경, 김희철, 문선회 책임연구원, 김용화 사장, 제작 부문 대상(H-센스) 김혜리, 박재희 연구원. <현대차> |
제작 부문에서 H-센스팀은 시각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 편의를 돕기 위한 무선통신 측위기술 기반의 햅틱 내비게이터 '데이지'를 선보였다.
데이지 시스템은 지팡이와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크기의 납작한 원통형 비콘(위치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신호를 주기적으로 전송하는 기기)으로 구성된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에 원하는 버스 번호를 말하면 버스에 달린 비콘에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버스가 정류장에 가까워질 때 비콘이 응답 신호를 보내면 지팡이는 버스와의 거리와 방향을 계산한다.
시각장애인은 지팡이의 진동 패턴을 통해 버스에 바로 탈 수 있는 지점까지 갈 수 있고 버스 기사도 비콘으로 이번 정류장에 시각장애인이 탈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데이지 시스템은 실제 대중교통에 적용될 수 있도록 예산과 비용에 관한 구체적 고려를 반영한 점이 돋보였다. 비콘의 대당 가격은 약 10만 원으로 국내 시내외 및 고속버스(약 4만4천 대)에 모두 설치하는 데 44억 원가량이 소요된다고 한다.
제작부문 심오헌 모빌리티팀은 현대차그룹 전기차를 활용해 찾아가는 인공신장실 구독형 투석 서비스 '라이프 딜리버리'를 시연했다.
국내 투석환자는 10만 명 수준으로 주3회 4시간 이상 투석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지역 의료 불균형으로 인해 지방 거주 환자들은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때가 많다.
라이프딜리버리는 현대차그룹의 전용전기차가 평평한 바닥 위에 확보한 우수한 거주성을 바탕으로 환자가 누울 수 있는 치료공간과 의료 장비를 구성했다.
전기차 전력을 외부에 공급할 수 있는 V2L 기술은 투석 치료에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전기차에 적용된 커넥티비티 기술을 활용하면 지역 거점 병원과 연계해 본원과 환자 정보 및 치료상황을 공유할 수 있다. 영상회의를 통한 의료상담도 가능하다.
▲ 제작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심오헌 모빌리티'팀이 찾아가는 인공신장실 '라이프 딜리버리'를 시연하고 있다.<현대차> |
선행개발팀은 디지털사이드미러(DSM) 카메라와 모니터를 활용해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할 때 청각 장애인의 주문을 도울 수 있는 기술을 시연했다.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는 음성으로만 주문할 수 있는 한 커피업체의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언어·청각장애인 차별로 인정한 바 있다. 해당 업체는 필담보드를 비치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화상수어채팅 등 효과성 높은 수단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선행개발팀은 외부 음성 차량내 모니터로 자막화해 운전자에게 전달하고 운전자가 수어로 주문을 하면 외부로 음성을 전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DSM 카메라는 주문, 온도, 음료, 사이즈 등 모두 12개의 수어를 딥러닝 시스템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시나리오 부문에서는 H.P.C팀이 임산부 전용차량 렌트 서비스 '임-편한세상'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임-편한세상의 임산부 전용차량은 임산부들의 운전고충을 모아 다양한 맞춤형 기능들을 탑재했다.
웰컴맘 시트는 거동이 불편한 임산부가 차문을 열면 시트가 회전해 편안한 승하차를 돕는다. 배가 부른 상황을 고려해 스티어링 휠도 위아래로 회전할 수 있도록 했다. 주변 운전자가 차량을 배려할 수 있도록 뒷유리에 임산부 표시 조명을 달았고 어깨에서 당겨 허벅지쪽에 체결한 뒤 전자식으로 제어하는 무버블 시트벨트도 탑재했다.
아울러 임신 뒤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산부인과, 보건소 등 시설과 연계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의좋은 오누이 팀은 장거리와 단거리 이동수단 사이를 잇는 이동솔루션 '퀵요정'을 제안했다.
전동휠체어는 300~800만 원의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정부 구매 보조금은 중증 장애인에게만 지급되고 있다. 장애인 콜택시는 대기시간이 1~3시간에 이르고 당일에 배차가 취소되는 일도 종종 나타나는 상황이다.
수동 휠체어를 보유한 장애인이 퀵요정를 활용하면 주변 공유 킥보드 위치를 확인하고 휠체어 전용 이동경를 안내받을 수 있다. 공유 킥보드가 있는 곳에 도착해 휠체어와 킥보드를 연결하면 동력을 보조 받아 가까운 거리를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제작 부문에서는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수상 구조 모빌리티 '오빗' △초광대역(UWB) 통신 기반 '사각지대 보행자 사고예방 기술' △차량 공조시스템을 외부 환경에서 활용 가능하도록 하는 'V2GO' 등이, 시나리오 부문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 능동형 음주운전 예측 및 예방 시스템 '드렁크헌터'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 기술 등이 공개됐다.
▲ 제작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V2GO'팀이 외부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차량 공조시스템을 시연하는 모습. <현대차> |
각 팀의 발표가 마무리된 뒤 김용화 현대차·기아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심사위원단은 작품의 참신성과 완성도 등을 평가했다. 추가로 유튜브 '좋아요' 점수를 종합해 최종 순위를 결정했다.
그 결과 제작 부문에서는 데이지를 발표한 H-센스팀이, 시나리오 부문에서는 퀵요정을 발표한 의좋은 오누이팀이 대상을 차지했다.
제작 부문 대상을 차지한 H-센스팀에게는 상금 1천만 원과 내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2024 CES' 견학 기회가 주어졌다. 시나리오 부문 대상 의좋은 오누이팀에게는 상금 500만 원과 아시아 지역 해외기술 탐방 기회가 주어졌다.
현대차·기아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발굴된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는 단순히 경연대회 출품에 그치지 않고 특허출원 및 양산 적용, 스타트업 분사 등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출시된 신형 싼타페에 적용한 '양방향 멀티 콘솔(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수납공간을 1열과 2열에서 모두 열 수 있는 장치)'은 2021년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다기능 콘솔' 아이디어가 양산 적용된 사례다.
김용화 사장은 심사를 마치며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과 톡톡 튀는 창의력을 볼 수 있어 마음이 울컥할 정도로 좋았다"며 "오늘 경연에 참석한 분들과 근무하는 모든 분들이 생활 속에서 전문성을 활용해 사회를 향한 창의력을 한껏 발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