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제도에는 역사적 유례가 있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최종 후보자는 11일 약식 기자간담회에서 회장 취임 이후 부회장체제를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시작했다.
▲ 양종희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최종 후보자가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금융지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양 후보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나왔다. KB금융이 과거 효율적 경영승계를 위해 부회장직을 둔 것이라는 점을 역사라는 거대한 개념에 빗대 설명한 것인데 국사학과 출신다운 답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양 후보자는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 전·현직 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에서 국사학을 전공했다.
학사 전공은 시간이 지나 세부내용은 잊혀 지더라도 학문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개념 등은 의식 속에 남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평소 말투 등에 녹아 나올 때가 있다.
4대 금융지주 전·현직 회장은 절반가량이 금융산업과 어울리는 상경계열 학과를 전공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각 금융지주는 저마다의 각기 다른 특성을 보였다.
12일 4대 금융지주 전·현직 회장의 학사 전공을 조사한 결과 KB금융은 4대 금융 가운데 역대 회장들의 학사 전공이 가장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은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나온 황영기 1대 회장을 시작으로 2대인 강정원 전 회장은 다트머스대학교 경제학과, 3대인 어윤대 전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4대인 임영록 전 회장은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직인
윤종규 회장은 광주상고를 나온 뒤 사회생활을 하며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법학으로 각각 학사 학위를 땄다.
윤종규 회장의 학사 전공을 법학으로 본다면 양 후보자 포함 회장 6명의 학사 전공이 무역학, 경제학, 경영학, 국문학, 법학, 국사학 등으로 모두 다르다. KB금융은 4대 금융 가운데 유일하게 유학파 회장(2대 강정원 전 회장)을 보유한 곳이기도 하다.
신한금융은 법학 전공이 대세로 나타났다.
전현직 회장 4명 가운데 2대인 한동우 전 회장이 서울대학교 법대, 3대인 조용병 전 회장이 고려대학교 법대를 나왔다.
라응찬 초대 회장은 선린상고를 졸업했다. 상고를 나온 다른 회장들이 늦게나마 학사 학위를 딴 것과 달리 라 전 회장은 최종 학력을 선린상고로 마쳤다.
현직인
진옥동 회장은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30대 초반인 1993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경영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하나금융은 지금껏 3명의 회장을 배출했는데 상경계열 전공이 2명이다.
김승유 초대 회장이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고 현직 회장인
함영주 회장은 강경상고 졸업 뒤 사회생활을 하며 단국대학교에서 회계학으로 학사 학위를 땄다. 2대인 김정태 전 회장은 성균관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우리금융은 4대 금융 가운데 가장 늦게 지주사 전환을 마쳐 역대 회장이 현직 포함 2명뿐인데 두 사람의 전공은 '주류'의 범주에 들었다. 손태승 초대 회장은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현직인
임종룡 회장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왔다.
▲ (왼쪽부터) 윤종규 KB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8월3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금융권 ESG 교육과정 개설 업무협약식에 참석하기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학사 전공이 직업 선택 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4대 금융 역대 회장들 역시 상경계열 전공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4대 금융지주는
양종희 후보자를 포함해 지금껏 모두 15명의 회장을 배출했는데 상경계열(경영, 경제, 무역, 회계)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단일 과로 가장 많은 곳은 경영학(김승유, 어윤대,
윤종규,
진옥동)과 법학(한동우, 조용병, 손태승,
윤종규)으로 나타났다.
경영학과 법학 전공 모두 각각 4명씩인데
윤종규 회장을 빼면 각각 3명씩으로 줄었다. 윤 회장은 경영학과 법학 학사 학위를 둘 다 가지고 있어 양쪽에 모두 포함됐다.
상고 졸업을 하나의 전공으로 본다면 양 후보자 포함 전현직 회장 15명 가운데 상고 출신이 4명(라응찬,
윤종규,
함영주,
진옥동)으로 가장 많았다.
윤종규,
함영주,
진옥동 회장 등 현직 회장 4명 가운데 3명이 상고 출신인 셈인데 금융업계에서는 향후 이 같은 상고 회장 전성시대가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것으로 바라본다.
교육체제가 변하고 시대가 바뀐 만큼 주요 임원진 가운데 상고 출신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4대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금융산업이 종합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최근 금융사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대부분 전공을 보지 않는다”며 “회장 선임 과정 역시 후보자가 어떤 커리어를 밟아왔고 어떤 비전을 제시하느냐가 주요 변수로 평가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