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RE100의 대안으로 원전에너지를 활용하는 CF100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고리1호기 전경.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우리는 원자력 전기로 만든 제품을 판매합니다.’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100% 전환하겠다는 RE100은 전 세계적인 대세가 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무탄소에너지원인 원자력을 기업의 이미지나 제품 홍보에 활용하는 경우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형 CF100
산업부가 최근 CF100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4/7 CFE Compact (실시간 무탄소에너지 콤팩트)’는 2021년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에너지 부문 목표 달성을 위해 설립한 ‘SEforAll’과 구글이 주도하여 만들어진 이니셔티브다.
기업이 연간 사용하는 전력의 전체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과는 달리, 원자력 등 생산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무탄소에너지를 추가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이를 실시간으로 수급해야 한다(Time-matched procurement)는 점이 차이다.
다만 무탄소전기의 실시간 조달이 우리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실시간 조달은 제외한 ‘한국형 CF100’ 제도가 도입될 전망이다. 실제로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24/7 CFE’의 엄격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산업부는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CFE(Carbon Free Forum)포럼’을 출범했고 조만간 의장을 선출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원전전기 인증 수단 및 기업 구매 제도 마련도 검토 중이며 한국형 CF100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해외 정부의 동참을 설득하는 등의 외교적 노력도 병행하겠다고 한다.
최근 애플, 볼보 등 다수의 해외 고객사로부터 RE100 이행을 요구 받는 국내기업이 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자원이 부족하고 가격이 높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무탄소에너지원인 동시에 가격도 저렴한 원전 전기를 포함하는 CF100이 우리 현실에 더 적합하다. 정부가 밝힌 CF100 추진의 핵심 요지다.
정부가 기업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지원하겠다니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례를 비춰보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항상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부의 지원이 오히려 기업에 추가적인 부담이 되거나 우리 기업을 고립시키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진단 없이는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현실에 바탕을 둔 원인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
과학적 사실: 원자력은 무탄소에너지원이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온실가스다. 온실가스 대부분은 에너지 생산을 위한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발생한다. 인류는 아직 에너지 없는 발전은 상상할 수 없기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 없는 대체에너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만을 활용해야 한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무탄소에너지원인 원자력도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자력발전이 무탄소에너지원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과학적 사실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사회적 논쟁이 많은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초상식에 해당한다. 정부의 말처럼 ‘탄소중립'을 위한다면 에너지원을 꼭 재생에너지로만 사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원자력은 논쟁이 많은 에너지원이라는 점과 이 논쟁이 끝나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발전 및 핵폐기물 처리과정의 위험성이 높은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나 아니냐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첨예하게 대립되는 쟁점이다.
보통 원자력 논쟁은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이 과장되었다거나 혹은 축소되었다는 과학적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더 과학적이라는 (다시 말해 상대방의 주장은 비과학적이라는) 주장과 서로 간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체, 아무런 결론 없이 끝나게 마련이다.
원전논쟁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의 투명성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위험’에 대한 이해차이일 것이다.
위험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사실에 더해 그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애초에 각자가 ‘인식’하는 관점 자체에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아무리 과학적 사실에 대한 주장을 지속해도 쉽게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RE100은 과학이 아니라 경제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 국내 침대시장 점유율 1위를 만들어 준 광고카피다. 동일한 사물이나 현상이라도 각자가 서 있는 위치나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
침대의 심미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업은 디자인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많은 자원을 투입할 것이고, 침대의 기능적 측면에 주목하는 기업은 최적의 수면 환경을 구현하기 위한 매트리스 개발에 내부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RE100이나 CF100 모두 표면적으로는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근간에는 기업의 경제적 이익이 깔려 있다. 기업들이 모인 이니셔티브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매출을 높이고 비용을 줄여야 한다.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RE100에 가입하고 공급망 기업에게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비용이 일부 상승하더라도 재생에너지의 사용이 궁극적으로 자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더 많이 또는 더 비싸게 팔아 매출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전체 전력의 70% 이상이 원전에서 생산된다. 프랑스 기업은 누구보다 손쉽게 원전 전기를 조달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한 번도 별도의 원자력 전기 사용 목표를 수립했다거나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프랑스 기업을 본 적이 없다.
원전이 탄소중립에는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를지언정 기업의 매출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RE100과 CF100을 이야기할 때, 에너지는 과학이나 공학이 아닌 경제다. 그리고 경제는 심리다.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고자 시작한 일이라면 경제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해외 정부를 상대로 외교전을 펼칠 게 아니라 어떻게 우리기업에게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해외 소비자와 기업이 원전을 수용하도록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돈의 연결고리 끝에는 소비자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 자체가 가능할 지는 큰 의문이다. 우리는 다원화된 민주·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 해외 정부를 움직인다고 해서 해당국가의 소비자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북한 등 극히 일부 전체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국가가 개인의 소비 의사결정을 통제할 수 없다. 정부의 국정홍보가 실제 개인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이 원자력 이슈라면 더욱 비관적이다. 이미 숱한 사회적 논쟁을 치러왔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전히 상당수 시민은 원전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의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우리기업에 대한 해외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글로벌 기업은 장기적으로 이익을 위해 단기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리더십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정부가 나서서 우리기업은 비용 부담 때문에 ‘실시간 수급’이 빠진 CF100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를 호의적으로 바라볼 소비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잘못하면, 정부가 앞장서서 우리기업의 ‘편법’을 홍보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가 시장의 흐름을 조종할 수 없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명확하다. 정부가 진정 우리기업의 수출경쟁력을 걱정한다면, 어떻게 재생에너지의 공급을 확대하고, 우리기업이 저렴한 가격에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수석연구원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2011년부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재직 중이다. 국민연금법, 자본시장법, 전기사업법 등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및 기후변화 대응 정착을 위한 정책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환경정보공개 플랫폼인 CDP와 RE100, SBTi, PCAF 등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한국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100대 기업 ESG 담당자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을 공저했다. |